김복동 할머니 언급이 불편해진 영국 화장품 러쉬(LUSH)

일본 눈치 보기 …인권 보호 아이덴티티 흔들

기사입력 2019-02-09 11:26     최종수정 2019-02-09 11:3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위안부 강제 동원 관련 내용과 2015년 3월 1일, 2016년 3월 1일 게시물 (출처=러쉬코리아 페이스북 페이지)▲ 위안부 강제 동원 관련 내용과 2015년 3월 1일, 2016년 3월 1일 게시물 (출처=러쉬코리아 페이스북 페이지)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브렉시트)를 놓고 영국에서는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결과는 찬성 51.89%, 반대 48.11%. 근소한 차이로 영국 국민들은 EU 탈퇴를 지지했다. ‘프레쉬 핸드메이드’라는 콘셉트를 표방하는 러쉬(LUSH) 영국 본사는 글로벌 사업의 제조와 유통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러쉬는 자사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 시설을 언급할 때 '키친(kitchen)'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한다. 그 배경에는 '핸드메이드'라는 브랜드의 태생적인 아이덴티티를 강조하고, 체내로 섭취되는 음식의 차림처럼 인체에 이롭고 신선한 요소들을 사용한다는 의미가 자리 잡고 있다.  

러쉬가 보유한 모든 제품 라인을 생산하는 공장을 '풀 키친(full kitchen)'이라고 하며, 전 세계적으로 본사가 위치한 영국을 포함한 6개 국가에서 7개의 '풀 키친'이 현재 가동 중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만이 유일하게 풀 키친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설립 가능성이 거론됐으나 본사가 철회한 바 있다.

2015년 초에 국내 영자매체가 다뤘던 러쉬 한국판매법인의 CEO 인터뷰 기사를 보면 "본사의 신뢰(trust of the head office)"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해당 기사에서는 2016년 초에 한국에서도 풀 키친이 설립될 예정이라는 한국 법인장의 기대감이 다뤄졌다.  하지만 본사가 보여주는 신뢰의 최고 정점이라는 풀 키친의 국내 설립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브렉시트 찬성이라는 충격적 결과로 인해 영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과 통관기간 연장이라는 글로벌 유통의 암초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정황들을 고려해서, 러쉬 본사는 한국판매법인의 제품들을 영국산에서 일본산으로 대체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러쉬코리아는 2018년 3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국내 매장에서 일본산 제품을 선보인다고 알렸다. "더 신선한 제품을 전하기 위해 가장 가까운 제조공장인 일본에서 제품을 수입하게 됐다"는 원론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이 시기를 전후로 전 세계 글로벌 시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응원한다는 러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한국법인 설립 초기부터 러쉬코리아는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독립운동기념일인 삼일절과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게재물을 정기적으로 올리면서 일본의 식민지배로 인해 침해 받은 한국 국민의 인권을 잊지 말고 상기하자는 메시지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했다.

예로 2015년에는 위안부 피해자였던 고 최금선 할머니, 고 김연희 할머니, 고 이효순 할머니의 별세를 전하고 명복을 비는 게재물을 공식 페이스북에 올렸다. 아픈 기억으로 점철된 일제 강점기 시절에 철저히 유린됐던 여성 인권을 상기하자는 러쉬 본사의 철학이 반영됐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1월 28일 고 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했을 때 러쉬코리아는 그에 대해 아무런 공식적인 표현을 하지 않았다. 삼일절에 대한 정기적인 표현도 2017년 3월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일본을 자극할 만한 표현들을 자제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러쉬 한국법인은 영국 본사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했다. 예로 지식재산권 보호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국과 한국은 영국 본사의 신뢰를 얻지 못했고, 그 대신 일본의 풀 키친이 아시아 시장에서 더 크고 많은 역할을 부여받게 되었다. 러쉬 특유의 제품 제조에 대한 지식재산권 및 노하우를 보호하는 동시에 '메이드 인 재팬'이라는 품질적인 이득도 취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

BBC는 지난 3일(현지시간) '김복동, 한국의 '위안부'' 제목의 부고 기사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고 김복동 할머니가 걸어온 삶을 자세히 다뤘다. 영국의 핸드메이드 화장품 브랜드인 러쉬는 '손에 묻히기 싫은 불편함'을 그 대신 드러냈다.
2017년 3월 1일과 2018년 3월 1일 게시물 (출처=러쉬코리아 페이스북 페이지)▲ 2017년 3월 1일과 2018년 3월 1일 게시물 (출처=러쉬코리아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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