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약학' 망라한 역사기록, 이제야 첫술 떴다"

서울대 심창구 명예교수 …'한국약학사' 발간의 주인공

기사입력 2017-11-16 06:00     최종수정 2017-11-17 11:27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중요한 일이 역사에 남는 것이 아니라, 기록에 남는 것이 역사에 남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약학사는 그 기록이 없다"

서울대학교 심창구 명예교수는 약업신문과 만나 최근 발간한 '한국약학사' 발간동기에 대해 밝히면서 역사 기록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심창구 교수는 지난 2012년 한국약학대학교육협의회(약교협)의 약학사 요청을 받고 보고서작업부터 책 발간까지 전 과정을 주관한 주인공이다.

심 교수가 2013년 완성된 해당 보고서를 토대로 올해 9월 30일 발간한 '한국약학사(약교협 약학사발간위원회)'는 처음으로 약학교육과 제약산업, 신약개발까지 우리나라 100여 년의 약업사를 총망라한 서적이다.

그 구성은 크게 단군에서 현대 약학까지: 시대별로 보는 한국약학의 발자취(제1장), 약학교육 및 연구 활동(2장), 한국약업 100년(3장), 신약개발의 역사(4장)로 이뤄져 있다.

심 교수는 "우리나라의 약학과 약업은 지금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는 느낌이다. 이러한 변화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약학 및 약업계가 처해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미래의 발전 방향이나 변화의 속도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시대 상황의 파악을 위해서는 국내외 약학사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심 교수는 우리나라 약학사 정리의 부끄러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고조선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먼 과거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의 크고 작은 사건들(의약분업, 한약 분쟁, 약대 6년제, 약사국가시험의 역사 등)마저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다는 것.

심 교수는 "이 같은 기록의 부재는 약계 스스로 안타까운 일이고, 대외적으로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며 "앞서 1972년 서울대 약대 홍문화 교수가 약학사가 없는 것을 개탄하며 '한국약사학 연구회'를 만들었으나 '약학의 역사를 정리해놓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이제라도 연구회를 만들겠다'는 발기문의 상황과 지금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단적으로, '약학사를 연구한다'는 표현조차 심 교수에게는 와닿지 않는 말이다. 100여 년이라는 약학의 역사는 기록을 보는 단계이지 연구를 할 만큼 층위가 쌓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때그때 쌓인 기록의 역할이 중요한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만큼 기록의 중요성을 체감·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움으로 남는다는 심 교수의 설명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약학사 발간의 본격적인 시동을 건 인물은 2012년 11월 약교협 김대경 이사장이었다. 심 교수는 "약학사 발간은 감당하기에 매우 벅찬 일이었지만, 사명감으로 수락하고 발간위원회를 구성해 집필에 착수했다"고 회고했다.

약학 역사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심창구 교수는 올해 1월 서울대가 발간한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100년사'의 편찬위원장으로 중추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오늘날 35개에 이르는 전국의 약학대학의 설립에는 모두 조선약학강습소와 경성약학전문학교 등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서울대 약대 100년사 정리가 우리나라 약학대학 공동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된 바 있다.

그러나 '약학'을 단지 약대와 약대 교육의 범위로만 규정하는 것은 편협하고 위험한 시각이라는 것이 심 교수의 지론이다.


심창구 교수는 약학사를 정리하면서 우선 '약학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의문과 만나게 됐다. 결국 약학을 좁은 의미, 즉 약대를 중심으로 수행된 학문연구만으로 정의하는 것보다는, 제약기업에서의 신약개발 연구는 물론 약과 관련된 모든 제도와 기술 및 연구까지를 포함해 정의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선행연구로는 故 김신근 교수의 '한국의약사(韓國醫藥史)(2001, 서울대학교출판부)'와 심 교수 직접 '한국약학사(약학회지, Vol 51, No6, 2007)', 대한민국학술원이 발간한 '한국의 학술연구-약학편(2007)' 등이 있어 '한국약학사'의 바탕이 됐지만, 약학사 범위를 확장하면서 좀 더 다양한 자료수집과 집필자가 필요하게 됐다.

이에 심 교수는 서울대 김진웅 교수와 약학사발간위원회 전반적 작업을 운영하고, 주승용 박사까지 포함해 편집작업을 추진하는 동시에 40여 명의 필진을 섭외해 작업에 들어갔다. 

김대경 약교협 1대 이사장이 한국약학사의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실제 내용을 작성하게 해 심 교수로부터 가장 큰 공로자라고 평가받은 인물이라면, 하드웨어로 발간할 동기를 부여한 인물은 이범진 약교협 3대 이사장이었다.

2015년 이 이사장이 보고서 형태의 한국약학사를 기록물인 '책'의 형태로 발간하는 것을 추진했는데, 이는 갑작스러운 추진이어서 아쉬운 부분도 많았지만 책 발간의 시동을 걸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심 교수는 "2013년 11월에 약교협에 제출한 '한국약학사' 보고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점이 적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손 볼 부분이 많았다"며 "역사서란 단순히 과거 자료를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시대정신을 읽고 미래에 대한 방향을 제시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해당 보고서는 역사적 사실도 제대로 정리해 놓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되짚었다.

이어 "2017년 갑자기 보고서를 책으로 발간하게 된 점은 갑작스러운 발간으로 최근 4년간의 약학사가 비어 있고 편집과 교정 등에 최대한 공들여 진행했음에도 집필자의 집필 양식이 충분히 통일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며 "약학사 내용적 측면에서도 최대한 넓은 범위로 망라하기 위해 애썼으나 개국가에 대한 역사, 병원약제부 등의 이야기 등 다루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고 밝혔다.

심 교수는 "그럼에도 앞으로 완벽한 약학사 책자가 발간될 때까지 우리나라 약학사 정리에 조그만 징검다리 역할을 감당해줄 수 있는 첫 시도가 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면서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이 약학사를 보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심창구 교수는 "비행기가 왼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꼬리를 오히려 오른쪽으로 바꾸는 것처럼, 과거가 미래의 방향을 결정지어준다"며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과거로 되돌아가기 위함이 아닌,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잡기 위한 것이다. 한국약학사를 계기로 약학 기록의 중요성을 새기면서 5~10년 단위의 추보작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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