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기사입력 2010-06-16 09:40     최종수정 2010-06-16 09:44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이찬운 강남구약사회 총무위원장▲ 이찬운 강남구약사회 총무위원장

지난 8일 행정안전부가 시장형 실거래가제도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건강보험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을 공포했다. 10월 1일부터 구입 계약을 체결한 의약품부터 시장형 실거래가제도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 차원에서 준비해 온 시장형 실거래가제도가 약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이 계속돼 왔지만 이러한 의견은 단지 의견으로 그칠 뿐 정부는 강력한 의지로 이를 밀어붙이는 모습이다.

무척이나 아쉬운 것은 수개월 전부터 이에 대한 논란이 계속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은 대한약사회의 모습이다. 대한약사회는 시장형 실거래가제도와 관련해 '원칙적 찬성' 입장을 서둘러 발표했다. 시장형 실거래가제도로 인해 약국의 행정업무가 상당히 늘어나고, 본인부담금 차이로 인한 혼란이 극에 달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있고, 제약사에서 의약품 저가공급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약국가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다.

대한약사회는 낙관론을 주장한다. 물론 대한약사회 생각대로 이 시장형 실거래가제도가 약국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정말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만에하나 다들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약국가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며, 약사직능에 대한 위협으로 확대될 것이다. 이런 우려를 반영하듯 16개 시도 지부장과 서울시 24개 분회장들이 시장형 실거래가제도에 대한 우려와 재검토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미 제도 시행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이제서야 시장형 실거래가제도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한다는건 버스 떠난 뒤에 손흔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이제서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대한약사회는 제도 시행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나 대책에 대해 아직까지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

관보 게재로 제도가 공포되면서 문전약국은 무한 생존경쟁에 돌입하는 양상이고, 동네약국은 별다른 대책 없이 속수무책으로 제도 시행으로 인한 영향을 감수해야 할 상황이다.

많은 약사 관련 현안을 돌파하기 위해 어느 정도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얻을 것은 얻어야 한다는 입장에는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약가차액 발생시 환자와의 갈등을 예고하고, 폭주하는 행정업무를 회원들이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회원의 목소리는 외면한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산하 조직인 시도 약사회와 시군구 약사회가 앞다투어 제도 도입에 대한 불안감과 영향을 걱정하는 마당에 대표성을 갖고 있는 대한약사회가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은 옳지 않다.
발등의 불이 될 제도 도입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외면하고 모든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은 회원의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회장을 중심으로 꾸려지는 집행부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대한약사회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 더 이상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아닌 회원의 밑바닥 정서를 이해하고, 이를 반영하는 대책을 제시하여야 회원들과 소통하는 집행부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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