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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불천위(不遷位) 종가(宗家)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2019-05-22 09:38     최종수정 2019-05-22 10:17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지난 4월 6일, 경주 김씨 충암공파 17대 종손(宗孫)이자 서울대 약대 동기인 김응일의 초청을 받아 대전에 있는 충암(冲菴) 김정(金淨)선생의 종가를 방문하였다. 충암 선생은 중종(中宗) 반정(反正) 이후 순창 군수로 재직 시, 반정으로 폐서인(廢庶人)이 되어 생을 마감한 왕비 신씨의 복위를 상소하다가, 보은(報恩) 지방으로 귀양을 갔다.

9개월 뒤 정암 조광조 등의 신진사림(新進士林)의 구원에 힘입어 방면되었으나 정치에 염증을 느껴 속리산과 금강산에 칩거하였다. 그러던 중 중종 14년(기묘년)에 조광조의 끈질긴 권유로 34세의 나이에 형조판서에 올랐다.

형조판서에 오른 충암은 위훈삭제(僞勳削除)를 추진하였는데, 이는 중종 반정 때 허위로 공신록에 이름을 올린 가짜 공신과 그 친인척을 가려내어 이들에게 준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자는 것으로, 반정의 공신인 혁명세력의 전횡을 막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개혁 작업이었다.

그러나 중종의 우유부단 함으로 인하여 오히려 충암이 혁명세력의 역공을 받아 역적으로 몰리게 되었다. 이것이 “주초위왕(走肖爲王)”으로 유명한 기묘사화(己卯士禍)이다.

겨우 목숨을 보전한 충암은 1520년 8월 35세의 나이로 금산(錦山)및 진도(珍島)유배를 거쳐,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에 충암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제주도로 모여들자 불안감을 느낀 조정은 제주도 유배 14 개월만인 1521년 10월 그믐에 충암에게 사약(賜藥)을 내렸다.

충암이 죽은 후 제주민들은 자제(子弟)의 교육을 위해 김정의 배소(配所) 자리에 현 제주명문 오현고등학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귤림서원(橘林書院)을 세웠다. 충암은 제주 유배 중에“제주 풍토록(風土錄)”과 “우도가(牛島歌)”를 남겼는데, 지금도 우도에 가면 “우도가시비(詩碑)”를 볼 수 있다.

충암은 사약을 받은 지 24년 뒤인 1545년 (인종 원년)에 복권(復權)이 되었다. 1576년에는 선조 임금으로부터 문간(文簡)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고, 마침내 1790년 정조로부터 불천위(不遷位)의 윤허를 받았다. 불천위란 국가에 큰공을 세웠거나 학식이 풍부하여 백성의 본보기가 되는 자에게 임금이 내리는 은전이다. 충암의 사후 충암이 불천위를 받을 때까지 약 270년 간 상소를 올린 사림(士林)들의 끈기가 경이롭다.

일반적으로 사대부(士大夫) 양반 집에서는 돌아 가신 4대 조상까지만 사당(祠堂)에 위패 (位牌, 神柱)를 모시고 돌아가신 날에 방안에서 제사를 지낸다. 이를 기제사(忌祭祀) 또는 방안 제사라고 한다.

5대 이상의 조상에 대해서는 신위(神位)를 사당에서 묘소 앞으로 옮겨(遷位) 땅에 묻고, 돌아가신 날이 아닌 정해진 날에 묘제(墓祭)를 지내는데 이를 시향(時享), 시제(時祭) 또는 세일사(歲一祀)라고 한다. 그러나 불천위를 받으면 4대가 넘어도 신위를 묘소 앞으로 옮기지 않고 (不遷位), 후손이 끊어질 때까지 돌아가신 날에 방안 제사를 지낸다.

종가(宗家)란 원래 적장자(嫡長子)로 이어온 가문중에서 "불천위"를 받은 집안을 말하고, 이런 종가를 지키는 장손을 종손(宗孫)이라고 부른다. 단순히 장남 집안을 종가라 부르지 않는 것이다. 또한 불천위란 원래 국가로부터 받는 국(國)불천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조 말기에는 불천위가 남설(濫設)되었다. 즉 지역 유림의 공론을 거쳐 지정하는 향(鄕)불천위, 해당 문중의 중론을 모아 추대하는 사(私)불천위, 집안사람들이 합심하여 추대하는 가(家)불천위 등도 생긴 것이다. 조선시대에 국불천위를 받은 집안은 전국에서 200여집, 향불천위와 사불천위를 받은 집은 도합 280여집이라고 한다.

종가의 최대 덕목은 봉제사접빈객이다. 훌륭한 어른의 제사를 잘 받들고(奉祭祀), 찾아오는 손님을 극진히 대접(接賓客)하는 것이 종가의 사명이라는 뜻이다. 빈(賓)이란 초대받은 손님을, 객(客)이란 예고 없이 방문한 나그네 손님을 말한다. 빈에게만 하루 전부터 곶감을 넣고 우려내야 하는 수정과를 대접한다고 한다. 내가 그날 수정과를 대접받으며, 종가가 무엇인지 확실히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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