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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 홍문화 교수님의 미국 유학일기-1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2020-05-20 10:27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필자는 ‘대한민국 약학박사 1호 대하 홍문화(2020, 서울대 약학역사관)’란 이름의 평전(評傳)을 편찬하면서 홍 교수님의 막내 따님으로부터 손바닥 크기의 수첩 한 권을 기증 받았다. 홍 교수님(당시 만 39세)이 1955년 9월 17일 미국 퍼듀대학교로 유학을 가시면서 적은 메모였다.

유학은 겸직하고 있던 중앙대의 주선 및 후원으로 성사된 것이었다. 수첩에는 여의도에서 출발하여 비행기를 다섯 번이나 갈아타며 퍼듀에 도착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여러모로 감동적인 그 내용을 세 번에 나누어 소개하고자 한다. 

1955년 9월 17일(토요일)

새벽에 눈을 뜨니 비바람이 요란하다. 하필 출발 날이 이 모양이어서 못 떠나게 될 것을 자못 근심하면서, 그래도 기상하여 행장(行裝)을 차리노라니 비도 차츰 부슬부슬해지고 환송객 수삼(數三) 인이 찾아오니 이제는 참말 가게 되는가 보다 실감을 가지다.

9시 30분 중앙대 차로 우선 AKF에 들러 Dr. & Mrs. Frasers 부처(夫妻)에게 하직을 고하면서 금으로 된 넥타이핀과 산법통종(算法統宗) 한 질을 기념으로 증정하니 나도 기분이 가뜬하고 받는 이도 기분이 좋아하신다. 놀란 것은 고(高)박사(고주석 중대 약대 학장, 필자 주)가 돌연 Visa 관계로 출국이 연기되었다는 소식이다.

아무튼 나만이라도 떠나야 할 것이므로 반도호텔로 오니 수십 명의 약학 친구 선배 후배들이 전송을 나와서 맞아 준다. 금지환(금반지)을 오른손 약지(藥指)에 꼈더니 악수할 때마 다 옆의 새끼손가락이 압박되어 심히 아파 나중에는 물집이 생기려고 하므로 부득불 좀 헐겁긴 하지만 왼손에 갈아 끼우지 않을 수 없었다.

CAT 회사 버스로 비행장 (여의도)으로 나오는 도중에 입국 관계 서류를 집에다 놓고 나온 것이 생각나 대경실색. 삼각지에서 차를 내려 마침 뒤 따라오는 중앙대 짚차를 타고 흑석동으로 왔다가 부랴부랴 비행장으로 나오다.

몽매(夢寐)에 그리던 미국이다. 기쁜 출발이긴 하나 막상 노부모님을 비롯하여 가족 일동, 친지 여러분과 작별하려 하니 기분이 그리 좋지 못하다. 오후 1시 30분 지나 이륙. 다행히 비도 멎고 운해(雲海) 위를 두둥실 떠서 여정 만리의 길을 떠나니 유쾌한 마음과 감상적인 기분이 교대로 일어남을 금할 수 없다.

기상(機上)에서 편지를 두 장, 아버님과 주안(장남) 모(母)에게 내다. 처음 타 보는 비행기라 두고두고 신기해야 할 텐데, 타고 몇 분 지나니 벌써 상식이 되어 버리니 이 어인 일인고.

오후 4시 30분경 동경 착. 동경 국제공항은 깨끗하고 아담하다. 출영(出迎) 나온 김영은(金泳垠, 당시 동경대학 유학 중, 후에 서울대 약대 교수, 필자 주) 씨, 노(盧)씨와 더불어 기내에서 서로 알게 된 학생을 데리고 노씨 댁에 일박하며 여로(旅勞)를 풀고 밤 가는 줄도 모르고 김영은 선생과 이 이야기 저 이야기에 꽃을 피우다. 피곤은 하면서도 잠을 이룰 수가 없으니 과로의 탓뿐일까?

9월 18일(일)

흐리고 저녁때는 약간 빗방울이 뿌리다. 김영은씨, 나, 학생 3인은 동경대학을 비롯하여 동경 시내를 대략 일주하고 “아버지는 사람이 좋아”라는 영화도 구경하고 책도 몇 권 구하노라니 어느덧 시간이 되어 Station Hotel에서 부랴부랴 샌드위치로 요기를 하고 하네다(羽田) 비행장으로 나오다. Station Hotel에서 생후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보았는데 가부끼(歌舞技)와 야구의 방송이 있었다.

비행장에서 다시 P.A.A. 기를 갈아타는데 Baggage가 정량 초과로 136불이나 운임이 부과된 데는 눈깔이 나올 지경이고 밤새도록 기분이 좋지 않다. 물건 자체의 가치도 136불은 못 될 텐데 책이 들어 있는 손가방은 맡기지 말고 들고 오를 것을 등등 우치(愚痴)가 나오나 사실 초과(超過)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

돈이 사람의 마음을 이다지도 크게 지배할 줄은 여정에 오르기 전에는 그다지 몰랐던 것이다. 비행기 여행은 딴 것이 아니라 기선 (機船) 항해와 흡사하며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두통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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