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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 착각

편집부

기사입력 2020-10-21 16:4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칠십 노인이 아주 오랜만에 친구 부부를 만났는데, 글쎄 그 친구가 자기 부인을 ‘자기야!’ 하며 부르는 게 아닌가? 젊었을 때는 ‘순자야!’ 하고 소리 지르던 친구가 어쩌다가 이렇게 변했을까 안타까워서 물었다. “이 보게 친구야, 애들도 아니고 다 늙어서 남사스럽게 ‘자기야’가 다 뭔가?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던 자네의 기개는 다 어디로 갔는가?”

그러자 친구는 귀속말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쉿 조용히 하게, 실은 마누라 이름이 생각이 안 나서 할 수 없이 ‘자기야’라고 부르는 거야”. 비웃던 친구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 친구가 일견 남사스럽게 변한 데에는 다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 때 그는 깨달았다고 한다. ‘남을 함부로 착각하고 비난해서는 안되겠구나’.

이번에는 다른 집 영감님 이야기이다. 영감님이 어디선가 들었는데 여자가 나이를 먹으면 가는 귀를 먹는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30미터 떨어진 곳에서 아내를 불러봐서 잘 못 알아 들으면 약간 귀가 먹은 것이고, 20미터 떨어진 곳에서의 소리를 못 들으면 제법 많이 먹은 것이며, 10 미터 거리에서도 못 들으면 심각한 상황이니 병원엘 데리고 가봐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영감님은 집에 와서 마나님의 청력을 테스트 해 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30미터 떨어진 소파에 앉아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마나님을 향해 소리쳐 물었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는 뭐예요?” 그런데 아내로부터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영감님은 ‘아하 이 사람이 정말 귀가 어두워 졌나 보다’ 생각하고 가슴이 시렸다. 그래서 20미터 떨어진 식탁으로까지 가서 다시 한번 물어 보았다. “여보, 오늘 메뉴가 뭐예요?”

아 그런데 이번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게 아닌가?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은 영감님은 몇 발 더 걸어나가 싱크대 옆 마나님 곁에 바짝 붙어 섰다. 그리고는 마나님 귀에 대고 한번 더 물었다. “여보 오늘 메뉴가 뭐냐구?” 그러자 이 말이 절반도 끝나기 전에 마나님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아이구, 귀 떨어지겠네! 김치찌개라고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들어? 제발 보청기 좀 해 이 영감텡이야!” 그제야 영감님은 마나님이 아니라 바로 자기 귀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이 아닌 내게 문제가 있으면서도 나는 늘 옳고 남은 늘 그르다는 선입견(착각)을 갖고 사는 사람에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기회는 오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세종대왕 때 황희 정승에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가 젊었을 때 유람 중 남쪽 어느 지방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란다. 늙은 농부가 누렁소 한 마리와 검정 소 한 마리를 교대로 부려가며 논을 갈고 있었다. 이를 구경하던 황희가 큰 소리로 농부에게 물었다. “누렁 소와 검정 소 중에서 어느 소가 논을 더 잘 가나요?”

그러자 농부는 일손을 놓고 일부러 황희가 있는 곳까지 오더니 황희에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누렁 소가 더 잘해요”. 황희는 “뭐 그 얘기를 그냥 거기서 하시지, 일부러 나와서 귓속말로 하시나요?” 물었다. 그러자 농부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두 마리가 다 힘들여 일하고 있는데, 어떤 소가 더 잘한다고 내가 소리치면 일을 못하는 소는 기분이 나쁘지 않겠습니까?”. 농부의 말에 황희는 큰 가르침을 받았다.

황희 정승의 일화를 하나 더 소개한다. 황 정승의 집안 노비 두 사람이 서로 다투다가 그를 찾아 와 서로 상대방의 잘못을 일러바치자, 먼저 온 종의 말을 듣고는 “네 말이 옳다”라고 하고 다음에 온 다른 종의 말을 듣고는 “네 말도 옳다”라고 하며 돌려 보냈다. 이를 지켜보던 부인이 어찌 이 말도 옳고 저 말도 옳다고 하냐고 나무라자 그는 “부인의 말도 옳소”라고 하였다. 18년간이나 영의정을 지낸 황희가 바보라서 이처럼 무정견(無定見)한 말을 했을까? 

젊었을 때 농부로부터 교훈에 따라 소보다 천만 배 귀한 사람(종)들의 싸움에서 함부로 어느 편을 정죄(定罪)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때로는 무정견이 섣부른 착각이나 맹신에 따른 정죄(定罪)보다 오히려 훌륭해 보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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