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훈의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약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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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약과 공감

정재훈 약사

기사입력 2018-03-14 09:40     최종수정 2018-03-14 09:57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정재훈 약사▲ 정재훈 약사
약은 음식과 다르다. 음식은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다. 맛, 향, 식감, 모양새 등의 여러 관점에서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쉽다. 약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의 약에 대한 느낌이나 경험에 대해서는 공감하기가 참 어렵다. 약사로 일한 지 벌써 21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항우울제로 사용되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를 복용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직접 체험해 본 적이 없다.

항고혈압약, 이뇨제, 고지혈증 치료제나 당뇨병 치료제를 복용해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 약들이 작용하는 원리와 부작용을 배우고 약을 복용해본 환자들을 상담해본 게 고작이다.

약을 복용한 뒤에 이런저런 느낌이 있었다며, 혹시 약 부작용인지 물어올 때마다 되새겨보는 사실이다. 나는 그 약을 복용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우선 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들어보아야 한다. 공감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용설명서에는 약 부작용이 깨알같이 적혀있지만, 환자가 호소하는 부작용이 리스트에 빠져있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이 때는 약이 작용하는 기전에 대한 지식이 환자의 경험을 잘 듣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드름이 많이 난 10대 청소년이 알레르기 비염 복합제를 먹고 얼굴에 피지가 늘어났다며 약 부작용인지 물어본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약이 음식과 같다면 그냥 약을 한 알 먹고 몇 시간이 지나면 얼굴이 기름지게 되는지 여드름 면포 수가 늘어나는지 볼 수도 있겠지만, 약 부작용이 누구에게나 나타날 가능성도 낮을뿐더러, 부작용이 있는지 보겠다고 알레르기비염이 없는 사람이 약을 먹어볼 수도 없는 일이다.

약성분과 작용기전을 알면 추론이 가능하다. 복합제 속에 들어있는 슈도에페드린은 교감신경 흥분제이다. 수용체에 직접 작용하기도 하지만 저장된 노르에피네프린을 밀어내는 간접적 방식으로 작용한다. 약으로 교감신경이 흥분되면 땀 분비가 촉진되고 땀구멍도 커진다.

약 복용 후에 거울을 보면 땀구멍이 유난히 커 보인다는 이야기가 간혹 들리는 이유다. 드물지만 약 복용 뒤에 식은땀이 나는 것도 비슷한 기전이다. 하지만 피지 분비는 주로 성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 피지분비가 늘어난 건지, 아니면 땀구멍이 커져서 그렇게 보이는 건지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약의 작용기전은 부작용을 이해하는 데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다.

전립선 비대증 증상완화를 위해 알파차단제를 복용 중인 환자가 눈에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이 경우에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단 부작용 리스트 상에 시력 감소 또는 흐려보임과 같은 시각이상 증상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눈에 느낌이 이상하다는 식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약사로서 우리의 역할은 나열된 부작용 중에서 환자가 이야기하는 증상을 찾는 게 아니다. 우선 귀담아 들어야 한다. 정말 약의 부작용인지, 그냥 느낌인지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은 나중 일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약리에 대한 이해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전립선비대증에 사용되는 알파차단제는 홍채에 있는 알파수용체에도 작용하여 홍채의 수축을 방해하는 홍채긴장저하증후군이라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환자가 호소한 불편감이 홍채 근육이 느슨해진 것과 관련되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일단 눈에 부작용이 보고된 바 있는 약이라면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새로운 약이 정부에서 신약 승인을 받고 시장에 출시되기까지 많은 임상시험과 연구를 거쳐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의 효과가 아닌 부작용을 모두 알기에는 임상시험 참여자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효과는 100명 중에 절반 이상에게 나타나는지 보는 것이라면 부작용은 만 명, 십만 명 중에 한 명에게만 나타나도 부작용이다. 부작용에 대한 지나친 걱정으로 약 복용을 기피하는 환자들이 걱정될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약을 열심히 복용 중인 환자가 약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이야기를 할 때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약을 상담할 때 약사는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기억해야 한다. 상담의 기본은 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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