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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혼동치 말아야 할 포도와 자몽 이야기

정재훈 약사

기사입력 2018-10-10 09:40     최종수정 2018-10-10 14:20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정재훈 약사▲ 정재훈 약사
약에 대한 잘못된 정보 중에서도 유독 잘 사라지지 않고 계속 돌고 도는 이야기가 포도와 음식의 상호작용이다. 포도 또는 포도주스와 약을 함께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불량 지식이 왜 대한민국에서 계속 회자되는 것일까? 번역 오류 때문이다.

자몽은 포르투갈에서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생각되는 단어이다.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용어자료집(1997)에서는 자몽을 일본어투 생활 용어로 간주하여 그레이프푸르트로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7음절에 영어단어 그대로와 다를 바 없는 그레이프프루트를 실생활에서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전히 자몽을 많이 쓴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기는데, 그레이프프루트라는 말과 생소하다보니 이 단어를 보면 grape fruit, 즉 포도와 과일을 붙여써야 하는 걸 띄워쓴 걸로 착각하는 실수를 범하는 사람이 종종 나오는 것이다. 영어자료를 읽다가 grapefruit이 나오면 포도 과일로 생각하고는, ‘아하 포도에 대한 이야기구나’라고 짐작하는 식이다.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킨 원죄는 영어권 화자들에게 있다. 그들이 애초에 자몽을 영어로 Grapefruit로 부른 게 자몽과 포도가 닮은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지에서 하나하나 떼어 마트에 진열된 자몽에서는 포도와 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자몽을 멀리서 보면 과일 여러 개가 나무에 달린 모습이 마치 포도송이처럼 보인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그레이프프루트이다. 이름의 유래는 이해할만한데 문제는 이게 헷갈린다는 거다.

영어로 된 자료를 번역하다보면 누군가는 Grapefruit를 포도로 착각하여 옮기는 사람이 나오고 그러다보니 약과 음식의 상호작용에 대한 글 중에는 자몽과 약의 상호작용을 포도와 약의 상호작용으로 잘못 쓴 것들이 종종 눈에 띈다.

면역억제제 타크로리무스 예전 약 사용설명서에는 이 약을 투여받는 동안 포도주스를 먹지 말라는 주의사항이 있었다. 다행히 최근에는 포도주스가 아니라 자몽주스로 정정되었지만 아직도 인터넷에는 예전 버전의 복약정보가 돌아다닌다.

식약처마저 가끔 잘못된 자료를 내놓는다. 포도주스를 고지혈증약(스타틴 계열), 고혈압약(칼슘 채널 차단제)와 함께 복용하면 부작용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물론 번역 오류다. 포도주스가 아니라 자몽주스의 상호작용이다.

식약처에서 2011년에 발간한 자료집 <약물의 효능에 영향을 미치는 과일주스>에는 제대로 나와있다. “포도주스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인 플루비프로펜의 CYP2C9을 통한 대사를 저해한다는 일부 연구결과들이 보고되고 있으나, 인체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서 인지할만한 변화가 나타났다는 보고는 없으며, 국내 의약품 허가사항에서 포도주스와의 병용투여에 대한 규제사항이 현재까지는 없다.” 정확한 설명이다.

포도주스도 드물게 약과 상호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정도나 종류면에서 비교적 가벼운 수준이다. 나는 캐나다에서 약사로 일하는 동안 한번도 포도주스와 약의 상호작용에 대해 환자에게 주의를 준 적이 없고, 다른 약사가 그렇게 설명하는 것도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자몽주스에 대해서는 자주 이야기한다.

자몽 또는 자몽주스는 일부 약과 심각한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자몽 주스 속 나린긴, 나린게닌과 같은 플라보노이느 성분이 장에서 약물분해효소인 CYP3A4를 억제하여 약의 혈중 농도를 높이며, 이런 효과는 주스를 마시고 나서도 72시간까지 지속된다.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기 위해 일부 스타틴 계열의 약을 복용 중이거나 고혈압 때문에 일부 칼슘 채널 차단약을 복용 중일 때는 자몽이나 자몽주스를 피하는 게 좋다. 이런 권고사항을 무시하고 자몽주스를 과하게 마셨다가는 스타틴으로 인한 근육 독성과 같은 약의 부작용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

참고로, 다른 과일 중에서는 라임, 포멜로의 경우도 주의가 필요하지만, 포도, 레몬, 크렌베리에는 임상적으로 유의할 만한 CYP3A4 관련 약물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없다.

반대로 펙소페나딘과 같은 일부 항히스타민제는 자몽주스 또는 오렌지주스로 인해 흡수가 저해되어 약효가 떨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끝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면 이 모든 이야기는 포도가 아니라 자몽 즉 그레이프프루트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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