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재규교수의 'From San Franci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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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우리나라 의료시스템 경험기 1 - 검사 수치가 아닌 환자를 치료해야

편집부

기사입력 2017-09-07 10:04     최종수정 2017-09-07 14:46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날벼락이야.”
어머니 말씀이다.  건강하시던, 아무런 만성 질환이 없으시던 어머니가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췌장암 4기의 진단을 받았으니 필자 역시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다.  

필자는 학교로부터 장기휴가를 받아 진단 직후부터 한국에서 어머니와 지내며 병원, 약국에 가실 때마다 환자 보호자로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고 있다.  그런데, 한때 익숙했던 의료시스템이었지만, 2001년에 미국으로 떠난지 16년만이라 그런지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또, 전혀 다른 미국 의료시스템에 익숙해져서 더더욱 그렇다.  

이 시리즈를 통해 미국 의료시스템하에서 활동하고 있는 약사이자 약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의 관점으로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접하게 된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소화가 안된다고 느끼기 시작한 때는 3월말 쯤이었다.  속이 쓰리거나 아픈 것은 아니었으나 평소에 즐겨 드시던 음식들의 소화가 잘 안되는 것이 1주일 이상 지속되자 동네 병원을 방문하셨다.  위염의 진단을 받으시고 위산 억제제인 라베프라졸 (rabeprazole) 등이 처방된 약을 받으셨다.  4주를 드셔도 별 차도가 없으시자 의사의 권유로 위내시경을 하셨다.  결과는 심하지 않은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  그래서, 같은 약들을 4주 더 복용하셨다.  하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으며 등이 불편한 새로운 증상이 시작되었고 체중도 6 kg이 감소하자 의사는 어머니에게 큰 병원에 가 보시도록 진료의뢰서를 써 주었다.

5월말, 어머니는 서울대병원 소화기 내과 김모 교수와 처음 만났다.  이때, 어머니와 동생은 진료의뢰서 외에도 내시경 필름과 복용했던 약들의 리스트도 준비해 갔다.  

필자는 그 때 아직 미국에 있었으므로 어머니와 동생이 김 모 교수를 만나고 온 뒤에 연락했다.

필자: “ 어머니, 의사가 뭐래요?”
어머니: “소화 기능 저하래.”
필자: “그래서 무슨 약 주었어요?”
어머니: “이게 받은 약이야.”
       
        약 리스트
포리부틴 서방정 (trimebutine) 300 mg 하루 두 번: 위 운동 촉진시켜 음식물을 빨리 내려 가게 함.
복합파자임이중정 (Phazyme complex) 하루 세 번: 소화 효소제
에트라빌정 10 mg (amitriptyline) 하루 두 번: 진통제
알비스디정 (ranitidine 84 mg/tripotassium bismuth dicitrate 100 mg/sucralfate 300 mg)  하루 두 번: 위산 분비 억제제/위벽 보호제

필자: “아니, 진짜 이렇게 줬어요?”
어머니: “응.  위내시경 필름을 보더니 위염이 약간 있다면서 의사가 이거 4주만 먹으면 낫는대.”
동생: “그래서, 아무 다른 검사도 안했고 재진 예약도 안 해 줬어.”
필자: “복용했던 약 리스트는 보여주셨어요?”
동생: “응. 그냥 훓어보더니 그게 끝이었어.  뭐 이런 거 가지고 대학병원에 오냐는 투였어.”

무엇보다도 놀랐던 것은 위산 분비 억제제의 처방이었다. 어머니가 동네 병원에서 받아 복용했던 라베프라졸은 위산 억제제 중 가장 강력한 계열인 수소 펌프 억제제 (proton pump inhibitor)에 속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라베프라졸을 하루에 한 번 복용하셨으므로 만약 위염이나 소화불량이 원인인데 차도가 없었다면 하루에 두 번 복용하도록 처방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치료방법이다.  

하지만, 의사는 수소 펌프 억제제 대신 이보다 위산 분비 억제 효과가 약한 히스타민 수용체 2형 길항제 계열인 라니티딘 (ranitidine)을 처방했다.  뿐만 아니라, 용량도 150 mg 하루 두 번씩 쓸 수 있음에도 약 반 정도의 용량을 처방했을 뿐이다. 강한 약을 썼는데도 효과가 없었는데 더 약한 약을, 그것도 적은 용량으로 처방하다니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Don’t treat the number but treat the patient.  
검사 수치를 치료하지 말고 환자를 치료하라는 말이다.  임상에서 검사를 많이 하다 보니 검사 수치가 이상하면 여기에 치료의 촛점이 맞춰진다.  비정상인 검사 수치를 정상으로 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실 환자다.  많은 경우, 환자의 증상, 환자의 상태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아마도 서울대 병원 의사는 내시경 필름상으로 보이는 약한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에 맞는 약을 처방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어머니가 아무런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면 히스타민 수용체 2형 길항제 계열의 약을 쓰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더 센 약을 8주동안 복용하고도 호전되지 않았지 않은가? 또 체중이 6 kg이나 감소하였고.  그러면, 아무리 내시경 필름 상으로는 심하지 않은 위염이라 하더라도 환자의 증상과 그간 어떤 약을 복용했는지 등을 고려해서 다른 질환을 의심해야 하지 않았을까?  미국에서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이런 실수를 하는 것은 보았지만 경험이 풍부한 교수가, 그것도 국내에서 가장 좋다는 대학병원의 교수가 검사 결과만 의존하고 환자를 고려하지 않다니 참 믿기 어려운 일이다.

처방해 준 약을 3주 동안 복용했음에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자 어머니는 다시 진료 예약을 했다.

필자: “의사가 뭐래요?”
어머니: “이상하다 그러면서 약을 바꿔 줬어.”

      새 처방전
포리부틴 서방정 (trimebutine) 300 mg 하루 두 번: 먼저 방문때 받은 약과 같음.
복합파자임이중정 (Phazyme complex) 하루 세 번: 먼저 방문때 받은 약과 같음.
에트라빌정 10 mg (amitriptyline) 하루 두 번: 먼저 방문때 받은 약과 같음.
스토가정 10 mg (lafutidine) 하루 두 번: 위산 분비 억제제
글립타이드정 200 mg (sulglycotide) 하루 세 번: 위산 제거와 위점막 보호

스토가정은 다른 종류의 히스타민 수용체 2형 길항제 계열의 약이다.  만약 위염이 원인인데 히스타민 수용체 2형 길항제 계열의 약으로 호전되지 않았다면 더 센 약 – 수소 펌프 억제제 – 로 처방해 주어야지 같은 계열의 약으로 바꾸다니?  너무 궁금해서 임상 시험 논문을 찾아 보았다.  그런데, 먼저 쓴 약으로 잘 듣지 않은 환자들에게 새로 처방한 약이 더 효과가 좋았다는 임상 시험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동생: “내가 엄마가 체중이 계속 줄고 등이 아파서 잠도 못 주무시고 호전되지않으니까 무슨 검사라고 하는게 좋지 않겠냐고 하니까 의사는 등이 아픈 것과는 크게 상관없어 보이지만 확인차원에서 복부 초음파를 하자고 했어.  그래서, 내일 복부 초음파 하기로 예약했어.”

초음파 검사 결과 어머니는 췌장과 간에 종양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었고 CT와 조직검사를 통해 간으로 전이된 췌장암으로 확진되었다.  만약 어머니의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걱정되던 동생이 무슨 검사라도 하자고 부탁하지 않았다면 췌장암 진단이 이루어지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이처럼 환자를 고려하지 않고 검사결과에만 의존하면 임상적 판단이 일반인보다도 못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약력>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
-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본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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