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재규교수의 'From San Franci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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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우리나라 의료경험기 15 – 환자 중심으로 개선되어야 할 현행 의약분업제도

신재규교수의 'From San Francisco'

신재규 교수

기사입력 2018-08-01 10:14     최종수정 2018-08-01 10:29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약국에서 약을 타는 동안 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오빠, 나 상가앞 길에서 기다리고 있어.’

암병원은 삼성서울병원 안쪽 깊숙히 위치해 있는데 비해, 약국들은 병원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 떨어진 아파트 상가내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주차가 쉽지 않은데다 어머니는 기운이 없으셨기 때문에 나 혼자 약을 타러 가고 동생은 어머니를 모신 차를 몰고 주변을 배회하곤 했다.  그래서, 문자나 전화로 서로의 위치를 알려 주어야 했다.

약 타는 것이 너무 불편해서 처음에는 동네 약국에서 약을 받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어 불편하더라도 대학병원 근처의 약국을 이용하기로 했다.  첫째, 동네 약국이 대학병원에서 처방된 약을 모두 구비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둘째, 제너릭 약이라도 의사가 “대체조제 불가”를 적으면 동일 성분, 용량, 제형의 다른 약으로 바꿀 수 없는 우리나라의 기이한 대체조제가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처방전에 무슨 문제가 있으면 병원과 교류가 더 많은 병원앞 약국이 해결하는 데 편하지 않을까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미국에서는 어느 약국에 가든지 처방된 약을 받을 수 있다.  물론, 흔히 쓰이지 않는 약은 약국이 따로 주문을 하든지, 이런 약을 따로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약국 (전문약국: specialty pharmacy)을 통해서 받을 수 있다.  전문약국에서만 취급하는 약의 경우, 의사가 이런 약국으로 처방을 보내고 우편으로 약이 배달되기 때문에 환자가 약이 구비된 약국을 찾아 돌아다니는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된다. 반면, 우리나라 동네약국은 주변 의원들이 주로 처방하는 약을 위주로 구비해 놓기 때문에 환자는 멀리 떨어진 대학병원에서 처방된 약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대형 체인 약국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 동네 약국들은 상대적으로 소규모이기 때문에 흔히 쓰이는 약들을 모두 구비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일 수 있다.  또, 의사의 개인적인 선호 때문에 처방된 약과 같은 계열중에서 임상적 효과가 다르지 않은 약으로 바꾸기 힘든 현실도 한 몫 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차단제들은 임상적으로 서로 효과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우리학교 병원 약국에서는 단 2 종류만을 구비하고 있다. 하지만, 몇 년전 만난 서울대 병원의 약사에 의하면, 과와 의사마다 선호하는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 억제제가 다르기 때문에 서울대 병원 약국은 허가 받은 20여종의 모든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 차단제들을 구비하고 있다고 한다. 약의 구매와 관리에 드는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병원 자원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제너릭에도 상품명을 부여할 수 있는데, 현행 대체제도 하에서는 처방전에 이 상품명과 함께 ‘대체조제 불가’와 임상적 사유를 쓰면 다른 제너릭약으로 바꿀 수 없다.  미국의 동네 약국은 동일성분, 용량, 제형의 약의 경우, 일반적으로 단 한 회사의 제너릭 약만을 구비해 놓는다.  아스피린 81 mg 일반 제형의 예를 들자면, 허가받아 판매되는 수없이 많은 회사들의 제품중에서 자기 약국에 가장 싸게 공급하는 회사의 제품 하나만을 비치한다.  반면, 우리나라 동네 약국은, 동일성분, 용량, 제형이더라도, 주변 의원들이 선호하는 회사의 제품들을 모두 구비해 놓아야 한다.  그렇지만 다양한 성분, 용량, 제형의 모든 약들을 구비해 놓을 수는 없다.  

의사에게 처방받고 약국에 가서 처방된 약을 받아야 하는 의약분업은 원래 환자에게 좀 불편한 제도이기는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의약분업제도는 환자 중심이 아닌 처방자 중심으로 짜여져 있어 환자에게 더욱 불편하게 만들어져 있다. 병원이나 의원에서 바로 약을 탈 수 있었던 예전의 제도가 환자에게 가장 편리하겠지만 난 이 제도도 환자 중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의원에서 약을 타게 되면 바쁜 의사보다는 간호사가 복약지도를 할 가능성이 큰 데, 안타깝지만 간호사는 이 직능을 위해 수련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또, 처방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다.  

특히, 앞서 글들을 통해 여러 번 지적했듯이, 동네의원이 발행했건 대학병원이 발행했건 처방자의 사고과정에 의문이 들거나 실수가 많은 처방이 우리나라에는 이상하게도 많다.  따라서, 처방자가 약을 직접 주게 되면 이런 실수와 의문점들이 걸러지지 않게 되어 환자에게 해가 일어날 수 있다.  환자가 어떤 약을 그동안 사용해 왔는지에 대한 정보 – 약력(medication history) - 는 약을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 중 하나다.  그리고, 이 정보는 한 곳에서 관리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이다.  그런데, 환자가 여러 의원과 병원으로부터 약을 받는 경우에는 환자의 약력이 통합적으로 관리되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약이나 중복된 약을 쓸 수도 있어서 효과적이고 안전한 약의 사용이 어렵게 된다.

의약분업에 따른 환자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통합적인 약력관리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은 동네약국이라고 생각한다.  환자 집과 가까워 접근이 용이하고 환자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네약국에서만 약을 받는 경우, 환자가 그동안 사용한 약에 대한 정보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어 약력관리가 통합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일하는 저커버그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Zuckerberg San Francisco General)에서는 환자가 원하는 약국에 온라인으로 처방을 보내 주고, 환자의 약력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면 그 약국으로 전화해서 알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어느 병원에서 처방을 받든지 동네약국에서 약을 불편없이 받을 수 있는 환자 중심적인 의약분업제도로 개선해야 하겠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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