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재규교수의 'From San Francisco'

약업닷컴 홈 > 팜플러스 > 약대·약학

<65> 환자들의 거짓말

신재규교수의 'From San Francisco'

신재규교수

기사입력 2019-10-01 09:39     최종수정 2019-10-01 09:47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교수님, Ms. T의 혈압약을 더 센 것으로 바꿔야 할 것 같아요.”

내 클리닉에서 외래 실습 (ambulatory care advanced pharmacy practice experience)을 하고 있는 UCSF 약대 4학년 학생이 혼자 Ms. T를 진찰실에서 먼저 만난 다음 내게 보고했다.  77세인 Ms. T는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데, 주치의 (primary care provider)가 고혈압 조절을 도와달라고 협진의뢰를 요청한 여성 환자다.  원래는 3주전에 내 클리닉으로 초진이 예약되어 있었지만, 그 때 나타나지 않아서 (no show라고 부른다) 다시 예약이 잡힌 환자다.  

차트에 따르면 Ms. T는 세 가지 고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베나제프릴 (benazepril) 40 mg 하루 두 번, 펠로디핀 (felodipine) 10 mg 하루 한 번,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 (hydrochlorothiazide 또는 HCTZ) 25 mg 하루 한 번.  베나제프릴의 경우 환자의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자 주치의가 한 달 전에 40 mg 하루 한 번에서 하루 두 번으로 용량을 올린 것이었다.

“혈압은 다시 재 봤니?”

오늘 학생이 Ms. T를 보기 전, 간호사가 혈압을 두 번 측정했었다.  혈압 측정치가 162/82와 158/80으로 목표혈압인 140/90미만보다 높았기 때문에 학생에게 혈압을 다시 측정해 보라고 지시해 놓았었다.  환자들이 클리닉 약속 시간을 맞추느라 서둘러 오게 되면 혈압이 높아지기 때문에 간호사가 측정한 혈압이 높은 경우 진찰실에서 환자를 안정시킨 후 혈압을 다시 측정한다.

“예, 152/80으로 여전히 높았어요.”
“집에서 측정한 혈압수치들도 봤니?”

차트에 따르면, Ms. T는 집에 혈압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클리닉에 오면 긴장이 되어서 집에서 측정한 혈압보다 클리닉에서 잰 혈압이 높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집에서 측정한 혈압수치들을 가지고 오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집에서는 혈압이 138/76 이었다고 해요.”
“그 정도면 괜찮은데…  그런데, 왜 혈압약을 더 센 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니?”
“Ms. T는 금년에 병원을 6번 방문했는데, 2월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혈압이 목표혈압보다 높아서요.” 
“집에서 측정한 혈압이 클리닉에서 측정한 것보다 환자의 혈압을 좀 더 잘 알려주기 때문에, 난 집에서 측정한 혈압을 가지고 혈압약을 조절하는 것을 선호해.  하지만, 매번 클리닉에 올 때마다 혈압이 높았으니 약을 바꾸거나 더하는 것을 한 번 고려해 보기로 하자.”

고혈압 환자들의 혈압이 조절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혈압약을 처방에 따라 복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혈압약을 바꾸거나 더하기 전에 혈압약을 처방대로 복용하고 있는 지 꼭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Ms. T는 약을 처방한 대로 복용해 왔니?”
“베나제프릴은 40 mg 하루 한 번 저녁때만 복용하고 있다고 했고, 다른 두 혈압약 펠로디핀과 HCTZ는 처방대로 하루 한 번 복용하고 있다고 했어요.”
“베나제프릴은 왜 하루에 한 번만 복용하고 있다니?”
“약을 너무 많이 먹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랬대요.”
“그런데, 리필 날짜와 수량도 확인해 보았니?”
“아, 그걸 확인해 보지 않았네요!”

미국에서는 처방약 리필 제도가 있다.  이는 처방약을 다 복용한 뒤 의사를 따로 만나 다시 처방전을 받을 필요없이, 한 달에서 석 달 단위로 의사가 지정한 기간동안 (보통 1년) 약국에서 받아갈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약국에서 교부한 약병에는 약 이름 외에 리필한 날짜와 수량이 적혀 있기 때문에 이를 환자가 처방약을 처방대로 복용하는 지에 대한 평가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Ms. T가 있는 진찰실에 함께 들어 갔다.

“Ms. T.  약병들을 좀 볼 수 있을까요?”

펠로디핀은 지난 5월말에 약국에서 리필을 했지만 다른 두 약은 작년 12월에 석 달 수량을 리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약병에는 20-30개 정도 약이 남아 있었다.

“Ms. T, 이 약병들이 약국에서 가장 최근에 받은 것들인가요?”
“맞아요.”
“약병을 보니 작년 12월에 HCTZ와 베나제프릴을 3개월치 받으셨습니다.  오늘이 6월말이니 약을 다 드시고 다시 리필을 받으셨어야 하는데, 아직도 약이 많이 남아 있네요.  약을 매일 복용하고 계신 것이 맞습니까?”
“…”
“저희는 잘잘못을 가리려는 것이 아니라 약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그냥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는 것 뿐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Ms. T께서 약을 다 드시고 계시지 않은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저희가 약을 더 센 것으로 바꾸거나 새로운 약을 더하고 Ms. T께서 모든 약을 다 드시게 되면 갑자기 혈압이 크게 떨어질 수도 있어요.”
“….  실은 펠로디핀만 복용해 왔어요.”
“왜 다른 약들은 복용하지 않으셨나요?”
“그냥 약을 너무 많이 먹는 것 같아서요.  또, 약을 많이 먹으면 간에 안 좋다고 듣기도 했고.”

내가 처음 클리닉을 시작할 때, 같은 클리닉에서 20년이상 환자를 봐 온 선배 약사 교수가 내게 이런 조언을 주었다.

“You will learn to appreciate patients’ lies.”

처음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클리닉에서 환자를 본 경험에 의하면 많은 환자들이 거짓말을 한다.  특히, 처방대로 약을 복용하고 있는 지에 대해.  환자가 의사나 약사에게 거짓말을 할 때는 악의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의사나 약사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의사와 약사의 입장에서는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를 위해서 환자의 처방약 사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환자가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리필 날짜와 수량을 확인하는 등 환자의 말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다른 정보를 함께 얻으려 노력한다.  

환자에게 화를 내거나 꾸지람을 하게 되면 환자가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또,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를 위해 필요한 환자와의 원만한 관계가 구축되기 어렵다.  그래서, 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처방약이 환자에게 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여 환자가 정확한 정보를 주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환자에게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추궁해야 하는 상황은 참 난감하다.  나도 사람인지라, 환자가 그동안 내가 추천한 대로 따르지 않았으면 실망을 좀 할 것이다.  하지만, 환자도 이유가 있어서 그랬을 터이니 이를 공유하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면 대안을 마련할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환자들에게 간곡하게 부탁드리고 싶다:  

약을 안 드셨다고 해도 좋으니 본인의 건강을 위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기사공유   트위터   페이스북   싸이공감   구글
독자 의견남기기

독자의견쓰기   운영원칙보기

(0/500자) 로그인

리플달기

댓글   숨기기

독자의견(댓글)을 달아주세요.

뉴스홈으로    이전페이지로    맨위로

인기기사    댓글달린기사    공감기사

실시간 댓글 더보기

구인    구직   매매

사람들 interview

"복지부 정책,'내 브랜드'보다 '좋은 컨설턴트'역할 최선"

문재인케어 완료 및 공공의료·의료지역격차 등 문...

더보기

오피니언 더보기

의약정보 더보기

약업북몰    신간안내

한국제약기업총람 2018년판 발간

한국제약기업총람 2018년판 발간

2018년판 한국제약기업총람은 상장(코스닥/코스피/코넥...

이시각 주요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