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재규 교수의 'From San Franci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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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중복처방

신재규 교수

기사입력 2020-01-02 09:55     최종수정 2020-01-02 10:05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형, 항응고제를 과다 복용하면 어떤 문제가 생겨?”

얼마전, 한국에 있는 친척동생이 문자를 보내왔다.

“왜?”
“아버님이 숨차고 힘들어하셔서 대학병원 응급실에 왔어.  그동안 드시고 계신 약들을 내가 알아 보다가 아버님이 지난 8일 동안 프라닥사와 엘리퀴스를 이중으로 복용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출혈은 없으시고?”
“응, 없어.  그런데, 항응고제를 이중으로 복용하셔서 걱정이 되어서.”

친척동생의 아버님은 연세가 여든이 넘으셨고 심방세동의 병력을 가지고 계시다.  심방세동이 혈전에 의한 뇌경색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혈전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항응고제가 심방세동의 치료로 쓰인다.  

프라닥사 (Pradaxa) 와 엘리퀴스 (Eliquis)는 모두 항응고제이다.  우리나라의 일반명으로 다비가트란 (dabigatran; 영어로는 대비가트란이라고 읽는다)이라 불리는 프라닥사와 아픽사반 (apixaban; 영어로는 애픽사반이라고 읽는다)이란 일반명을 가진 엘리퀴스는 모두 비교적 최근에 출시된 항응고제들로 모두 심방세동을 적응증으로 갖고 있다.  

비록 두 약이 약간 다른 방법으로 혈전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지만, 두 약을 같이 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출혈의 위험을 크게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항응고제를 고위험약 (high risk medications)으로 따로 분류해서 처방과 조제과정에서 좀 더 주의를 기울인다.

“신경외과, 심혈관센터, 환자간 커뮤니케이션이 엉망이 되어서 8일동안 과다 복용하셨어; 기존에 드시던 엘리퀴스가 남아서 복용하고 계셨는데, 심혈관센터에서 프라닥사를 또 처방한 거야.  아버님은 그걸 모르고 다 복용하셨고.  그래서, 내가 응급의학과 의사한테 물었더니 좋을 건 없는데 자기는 확실히 모르겠다라고 하더라고.  그 의사는 그냥 기존에 드시던 엘리퀴스만 폐기하라고 했어.”

친척동생의 아버님은 금년 초에 뇌경색으로 입원하신 적이 있다.  아마 그 때 신경외과에서 엘리퀴스를 처방한 모양이다.  그런데, 심장질환 때문에 심혈관 센터를  방문하셨는데 그 때 프라닥사가 처방된 것 같다.  그러면서 환자에게는 처방이 바뀌었다는  것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위험한 약 두 개를 동시에 복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대략 두 가지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중복처방이다.  이처럼 중복처방이 일어나는 데에는 약의 처방, 교부, 복용 과정에서 틈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사가 새로운 약을 처방하기 전에 환자가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하지만 이 과정이 생략되었을 수 있다.  또는, 환자가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확인했더라도 환자에게 뚜렷하게 지시 – 엘리퀴스는 더 이상 복용하지 말고 프라닥사만 복용 - 가 전달되지 않았을 수 있다.  특히, 노인의 경우, 이해력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새로운 지시사항을 말로만 전달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지시사항을 글로도 함께 적어 주어야 한다.  또, 환자에게 지시 사항을 말로 되풀이 하도록 해서 환자가 지시사항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 (이를 teach-back이라고 부른다)이 생략되었을 수 있다.  

약국에서 처방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항응고제의 중복처방이 있다는 것을 놓쳤을 수 있다.  또는, 중복처방을 확인했더라도 환자에게 다시 확인하는 과정 - 엘리퀴스는 더 이상 복용하지 말고 프라닥사만 복용하시도록 – 을 거치지 않았을 수 있다.  

중복처방은 전산 시스템으로 비교적 쉽게 발견할 수 있으므로 충분히 방지할 수 있는 문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병원과 약국 컴퓨터가 심평원에 직접 연결이 되어 환자의 약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즉, 의사가 새로운 약을 처방하려고 입력하거나 약사가 약을 청구할 때, 지난 1년간 비슷한 계열이나 적응증을 가진 약이 처방되었으면 경고 화면을 뜨게 해서 의사와 약사로 하여금 다시 확인하게 한다면 중복처방을 많이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환자가 의사를 방문할 때 복용하고 있는  약을 모두 가지고 오게 한 다음, 새로운 약을 처방할 때 기존에 복용해 오던 중복되는 약을 아예 환자로부터 뺏어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두번째 문제는 약의 선택에 관한 것이다.  비록 엘리퀴스와 프라닥사의 적응증이 같기는 하지만, 적어도 미국에서는 엘리퀴스를 선호하고 있다.  먼저, 임상시험 결과를 보자.  두 약이 직접적으로 비교된 적이 없기 때문에 와파린 (warfarin)과 비교한 두 임상시험 결과만을 보기로 하겠다.  

와파린은 두 약이 허가받기 전에 심방세동에 널리 쓰이던 항응고제다.  심방세동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두 약은 모두 와파린보다 출혈의 위험을 더 낮추었기 때문에 두 약의 출혈 위험은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엘리퀴스는 중풍이나 혈전증의 위험을 와파린보다 더 낮춘 반면 프라닥사는 용량에 따라 그 결과가 달랐다.  

친척 아버님이 처방받은 용량인 프라닥사 110 mg의 효과는 와파린과 비슷한 정도였으므로 엘리퀴스의 중풍과 혈전증에 대한 예방효과가 더 좋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엘리퀴스는 출혈외에 특별히 다른 부작용이 없는 반면, 프라닥사는 출혈외에도 속을 거북하게 하는 부작용이 더 있기 때문에 부작용 측면에서도 엘리퀴스가 유리하다.  두 약 모두 하루에 두 번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 편의성은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친척 아버님이 엘리퀴스에서 프라닥사로 바꾸어야 할 이유가 뚜렷해 보이지 않는다.

그 이후, 그 친척 동생으로부터 다시 문자가 왔다.

“형, 아버님이 최근에 새로운 처방전을 받았는데 너무 약을 많이 드시고 계신 것 같아.  약을 좀 봐 줄 수 없을까 해서 연락해.”

처방전을 살펴 보니 다음과 같은 두 약이 있었다.

트라린 정 50 mg (설트랄린; sertraline)
졸로프트 50 mg (설트랄린; sertraline)

또 다른 중복처방.  친척동생에 따르면 하나는 신경정신과에서, 다른 하나는 심혈관 센타에서 처방받은 것이라고 한다.  한 달전에 일어났던 항응고제 처방과 똑같이, 다른 과에서 같은 계열 또는 같은 약을 중복처방해서 벌어진 일이다.  환자의 안전을 위해 의사회, 약사회, 정부가 함께 중복처방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빨리 마련해야 할 것 같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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