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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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황진이(黃眞伊) <제19話>

기사입력 2017-04-12 09:10     최종수정 2017-04-12 09:10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봄의 금강산에서 한 계절이 훌쩍 지나 가을이 되었다. 유점사에서 시작된 금강산 유람은 시계사와 표훈사를 거치는 동안 장안사(長安寺)에서 풍악의 계절 가을을 맞았다. 졸기한 진이의 역마살이 절정에 이르렀다. 숱한 사내들의 뜨거운 가슴을 드나들었던 석녀(石女)의 태도에서 팔도유람을 통해 본래 여심(女心)을 찾았다.

 

봄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이 지나가는 바람에 낙화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어느 날이다. 장안사에서 점심을 먹고 오수를 즐기고 있을 때다. 이생이 저잣거리에 나갔다 들어오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두 주먹으로 훔쳤다. “왜 그러느냐? 무슨 일이 생겼느냐?" 진이는 이생의 처음 보는 행동에 궁금증이 폭발하였다.

이생은 입을 떼지 않고 돌아앉아 통곡을 끊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니까? 내 말이 우스워?“ 앙칼진 진이의 폭언이다. ”아버님이 돌아가셨데요!” “아버지와 결별했다면서 울긴 왜 울어?” 진이는 문을 탕 닫고 밖으로 나왔다. 실컷 울라는 배려다.

이생이 진이 곁을 떠나가려 한다. 사내는 자기 성(姓)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진이는 이생을 보고 새삼 깨달았다. 본인도 진이란 본명과 기명을 동시에 쓰고 있으나 아버지 황씨(黃氏)성의 굴레를 성(姓)을 바꾸지 않는 한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았다. “지금 당장 한양으로 떠나가려무나. 사내대장부가 일구이언이냐? 나도 사대부집 천재 신동에서 서녀(庶女)신분으로 떨어져 장님기생의 딸이 되자 청천벽력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 그날로 황진사와 결별하고 기생이 되었으니 내 몸엔 황진사의 피가 흐르고 있어 그런지 문득 떠올랐느니라. 그렇거늘 넌들 별수가 있겠느냐? 내 생각 말고 어서 떠나가려무나...” 진이는 그렇게 속 시원히 말해놓고 걱정이 태산이다.

사실 혼자 무전걸식이란 어렵다. 하늘아래 의지할 때 없는 여자인줄 알면 향기와 꿀이 있는 벌 나비가 날아들 듯 비렁뱅이 사내들이 달려들기 때문이다. 비록 문전걸식하는 신세지만 사내들이라 생리현상을 어찌 할 수 없어서다.

그래서 당장 떠나가라고 소리쳤으나 막상 떠나가면 어쩌나 가슴 졸이고 있다. “아니에요. 아씨 아버지께서 이미 돌아가셨고 소인이 아씨를 송도 명월관까지 모셔다 드리고 가렵니다. 지금 당장 간들 임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서둘러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만 그 분의 피가 뜨겁게 흐르고 있어 이 이생은 그 분의 자손이 분명하니 늦게라도 찾아가 절을 하고 상청에 술 석잔을 올리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닌가 생각에서입니다. 소인 한양에 갔다 다시 와서 진이아씨 하인노릇을 계속하렵니다.” 말을 마친 이생이 진이를 억세게 끌어안았다.

진이 속내도 같다. 훌쩍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었는데 되돌아온다니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삼남(충청·전라·경상)과 지리산을 연리지 모양 붙어 다니는 동안 속 깊은 정이 들었던 것이다. 밤에는 부부 아닌 부부로서 남녀관계를 수도 없이 해오지 않았던가! 지금 당장 떠나가면 진이도 닭똥 같은 눈물을 쏟지 않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다.

그날 밤은 더욱 뜨거워졌다. 장안사의 가을밤은 낭만적 분위기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아 창문으로 신비스런 달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산사의 밤은 물속처럼 조용하여 고양이 울음소리가 더욱 크게 울렸다.

발정 난 고양이 울음이다. 영락없는 아이 울음소리 같다. 오늘따라 발정 난 고양이가 대웅전 뒷방 근처에 와서 목청을 높였다. 진이는 이생이 한양으로 가겠다는 말이 귀에 거슬려 그가 몸을 달라면 서슴없이 내어주었다. 여자로서 먼저 얘기 할 수는 없으나 눈치를 보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순한 양이 되었다.

막상 몇 년을 부부같이 붙어 다니다 보니 계약결혼을 했었던 소세양과 이사종에게선 찾아보지 못했었던 어떤 사내다운 믿음과 멋까지 느꼈던 것이다. 지금은 단 하루도 곁에 이생이 없으면 못살 것 같다. “그래 너는 한양에 갔다 이 진이 곁으로 다시 오겠다는 것이냐?” 이생은 진이 배 위에서 감정이 고조된 상태다.

여자의 자궁내로 들어온 사내는 이성을 잃은 상태라는 것을 진이는 소세양과 이사종을 겪으면서 터득하였다. “흐흐흥... 물론이죠!”이생의 방사(房事)격동은 더욱 거칠어졌다. 진이도 서서히 달아올랐다. 날이 새면 헤어질 남녀가 깊어가는 밤이 아쉬운 듯 점점 더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떨어졌다 다시 결합되길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공교롭게도 발정한 고양이가 상대를 부르는 울음에 진이와 이생의 고조된 교성이 묻혀버렸다. 진이는 문득 자작시 《무제》(無題)를 떠올렸다.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 모르던가/ 있으랴 하드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그랬다.

소세양과 이사종도 떠나가지 못하게 붙들었다면 아마 그들도 진이 곁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이는 잡고 싶었으나 떠나보냈다. 지금 이생한테도 똑같은 마음이다. 한양에 갔다가 금방 돌아오란 말이 혀끝까지 나왔으나 다시 삼켜버렸다.

전례 없이 뜨겁고 격렬한 방사였다. 진이는 거액을 받고 초야권을 주었을 때 봉선화꽃 빛깔의 선혈까지 비쳤다. 처녀성 보증이다. 지금도 그때처럼 그곳이 아리고 쓰리고 아프다. 밤이 아무리 깊어도 아침 해는 어김없이 떴다. 산사의 아침은 산새들의 노래 소리가 인기척 보다 빠르다.

장안사에도 진이는 어머니를 모셨다. 유점사·표훈사·신계사, 그리고 장안사까지 진이는 정성껏 시주를 올리고 일만 이천 봉에 모두 기도를 부탁하였다. 극락왕생 기도를 부탁할 때엔 꼭 진학금과 황진이란 이름을 밝혔다.

진이는 장안사를 떠날 때 비교적 마음이 홀가분하였다. 그리고 이생이 고마웠다. 이생이 동행하여 주지 않았으면 팔도유람은 불가능했으며 금강산의 4대 명찰에 어머니 극락왕생의 일만 이천 봉에 기도도 엄두도 못 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이는 명월관에 도착하자 이생을 떠나보낼 준비에 들어갔다. 옷도 새로 해 입히고 일주일을 밤마다 잠자리를 해 주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신뢰와 속 깊은 정까지 들었다. 사실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으나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하여 여우도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로 향한다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자기 성을 찾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이다.

이생은 일주일 내내 동창이 밝을 때까지 진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도 진이가 아쉬운지 예성강을 건널 때는 강 건너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 까지 흔드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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