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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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황진이(黃眞伊) <제20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7-04-19 09:38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봄의 송도가 아름답고 수줍은 소녀 모습이라면 만추의 송도는 칠보단장한 설중매 같다. 꽃과 벌 나비가 아울리듯 명월관은 진이가 없어도 옥섬이모의 장사수완이 뛰어나 한량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명월관은 송도 장안에서도 빼어난 경치를 뽐내는 자남산을 낀 자남동에 자리 잡았다. 자남산(子南山)은 남산·용수산(龍首山)이라고도 불리는데 서편에 영웅호걸을 키운다는 젖을 머금은 바위가 있어 붙여진 산명(山名)이다.

송도엔 자남산의 정기를 받아 유명인이 많다. 왕건·서경덕·정몽주·최충헌·함유일·이성계·정도전 등도 이곳에서 태어났거나 자라며 생활을 했던 인물들이다. 여자지만 황진이도 빼어 놓을 수 없는 여중호걸(女中豪傑)이다. 진이는 뼛속까지 송도여인임을 자임하고 있다.

그녀는 이생을 떠나보내고는 며칠 동안 후원을 맴돌며 마음을 정리하더니 말을 타고 아침에 나갔다 해질 무렵에 들어오곤 하였다. 그때마다 진이는 전설적 인물 전우치(田禹治)를 떠올렸다. 지금 그가 곁에 있으면 북간도 등에 가서 활을 쏘며 말 달리기를 했으리라고 황당한 상상을 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우치는 서경덕과 도술경쟁을 하다 패하자 자취를 감추고 송도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소문엔 한양에 가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을 뿐이다.

이때 한양에는 절조(節操)높은 사대부로 종실의 벽계수(碧溪水·이종숙 세종 17번째 아들 영해군 손자)가 있었다. 그런데 벽계수에게 황진이 애기가 들려왔다. 벽계수는 허봉과 절친한 관계다. 또한 허봉과 이달과는 막역한 관계로 황진이를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아 허봉이 이달을 벽계수에게 소개하여 주었다.

이달은 삼당(三唐)시인으로 미모·노래·기예 뿐 만이 아니라 시(詩)에도 능한 진이의 마음을 얻을 계책을 귀띔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벽계수는 진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묘책을 이달에게 사사 받았다.

한편 송도에 있는 진이는 벽계수의 절조 있는 사대부란 소문을 들었다. 그는 왕실의 후예로서 진이의 유혹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뿐 아니라 혼을 내 쫓아 버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였다. 오기가 발동한 진이가 벽계수를 송도로 유인하기로 마음먹었다.

남자와 여자의 소위 성(姓) 대결이다. 진이는 지인을 한양으로 보내 벽계수에게 송도의 아름다움을 속삭여 벽계수가 오도록 교사시켰다. 벽계수는 말로만 듣던 색향(色香)에 경치까지 빼어나다는 속삭임에 넘어가 송도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마침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다. 진이는 벽계수가 경치가 빼어난 천수원에 와 있음을 알고 그곳 근처에 가서 자신의 시 《청산리 벽계수》를 거문고 음률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 하니 쉬여간들 어떠리’ 벽계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지금까지 한양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천상의 목소리에 시 또한 자신을 비웃는 듯 한 내용에 놀라 그만 말에서 떨어졌다. 진이가 벽계수에게 다가가 왜 나를 쫓아 버리지 못했느냐고 묻자 멋쩍은 듯 멍하니 명월(明月)의 밤하늘을 쳐다만 보았다.

진이는 명월관으로 벽계수를 안내하였다. 벽계수는 한양에서 벌레처럼 사대부의 체면에 먹칠을 할 그녀를 쫓아버릴 수 있다고 호언했던 말이 허언이 됐음을 깨달았다. 사랑채에 마주 앉은 벽계수와 진이 사이엔 눈치 빠른 옥섬이모에 의해 술상이 놓여졌다.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어요. 송도는 한양에 비해 생기가 없어요. 이 술(태상주 太常酒)이 독합니다. 오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조금씩 마시세요!” 진이는 말과는 다르게 벽계수가 단숨에 잔을 비우자 잔 가득히 태상주를 따랐다.

말로만 듣던 진이를 앞에 앉히고 술을 마시는 벽계수는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못하고 있다. 그는 술상 밑으로 손을 내려 여의봉처럼 일어난 옥경(玉莖)을 힘껏 쥐어 보았다. 현실이 분명하다. 밤이 이슥할 때까지 그들은 술병을 비웠다. 벽계수는 진이의 술 상대가 못되었다.

진이를 당대엔 대적할 술꾼이 없다. “술 그만 드시고 주무시죠! 오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진이가 손수 술상을 치웠다. 벽계수는 진이가 따르는 술잔을 거침없이 비워 인사불성이 되었다. 진이는 다시 거문고 음률에 맞춰 서경덕의 《봄날》인 ‘성곽 밖이라 속된 일 없고/ 산빛 짙은 창 안에 자니 늦게 일어나네/ 봄 찾아 골짜기 시냇물가 거닐면서/ 예쁜 꽃가지를 눈에 띄는 대로 꺾어 보네’를 타면서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가득하다.

잠결에도 거문고 소리를 들었는지 “이제 잡시다.”라고 말하면서 벽계수가 두 팔을 벌려 진이를 찾았다. 진이는 술상을 치우고 알몸이 되었다. 어차피 자기를 보러 온 벽계수는 자신을 품을 것이니 스스로 사내를 품으려는 속내다.

벽계수 가슴은 뜨거웠다. 소세양과 이사종의 가슴과는 또 다르다. 뜨겁고 따스한 가슴을 보자 딴 마음이 생겼다. 엄마가 되고 싶은 것이다. 지금 진이는 배란기다. 종실(宗室) 후예인 벽계수와 관계에서 2세가 탄생되면 얼마나 훌륭한 아이가 나올까 생각에 이르자 한시라도 빨리 사내를 맞이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비몽사몽 상태가 되면서 어머니가 나타났다. 생생한 생시 모습으로 “그것은 아니 될 생각이다! 기생 후손은 너로 족하다. 진이 너는 기적에서 나와 자유로운 영혼의 여자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너를 기생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서우니라... 법적 문제보다 도덕적 굴레가 더 무서우니라.” 라고 말을 하고 어머니는 사라졌다. 벽계수의 뜨거운 사타구니에서 불두덩을 지나 가슴으로 올라오면서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지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진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만이요! 화장실에 좀 다녀올게요...” 신육복의 미인도에서나 볼 아름다운 나부의 뒤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벽계수는 불타는 욕정을 자제하느라 애를 쓰고 있다. 벌거숭이 진이는 화장실의 거울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며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여자의 마음은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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