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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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황진이(黃眞伊) <제23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7-05-17 09:34     최종수정 2017-05-17 09:35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아침밥을 먹고 그들은 상원암(上元庵)을 향하였다. 지리산은 장엄하나 수려하지 못하고 금강산은 계절마다 산명이 바뀌면서 아름답고 수려하지만 장엄하지 못하다. 하지만 묘향산은 수려함과 장엄함을 동시에 갖추었다.

진이와 벽계수는 발길을 재촉한다. 상원암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오려는 계획이다. 장관인 만폭동 폭포도 구경하고 바위 위에 절묘하게 건립된 상원암에서 하룻밤의 꿈을 꾸고 정자 인호대(引虎臺)에서 장엄 수려한 묘향산의 절경을 만끽 하려는 속내다.

벽계수는 따뜻한 진이의 손에서 무한한 행복감을 느낀다. 상원암으로 가는 길은 험하다. 스님들이 이따금씩 오가는 길은 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나마 낙엽이 덮여 있어 전인미로(前人未路)상태다. 넘어지고 자빠지길 수십 여번 끝에 오후가 한참 지나서야 상원암에 도착하였다.

노 주지승과 동자승 둘뿐이다. 점심을 해결하고 잠자리까지 약속받은 진이와 벽계수는 인호대를 향하였다. 인호대는 글자 그대로 호랑이가 사람을 안내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향암 마을에 사는 어느 효자가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100년 된 산삼을 캐려고 산을 헤매고 있을 때 소만한 호랑이가 나타나 효자를 업어 인호대까지 올려다 주어 산삼을 캐서 병석의 어머니에게 효도를 했다는 전설이 있었다.

또한 용연 폭포 밑의 절벽 앞에서 상원암으로 가려던 길손이 길을 잃고 헤맬 때 역시 소만한 호랑이가 나타나 꼬리로 낙엽을 치우고 길을 안내하여 상원암까지 안내했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가을해가 짧으니 빨리갔다 오라는 말을 뒤로하고 진이와 벽계수는 끌어주고 밀어주며 인호대에 올랐다.

발 아래 펼쳐진 오색단풍의 바다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이 불가능하여 입을 모아 ‘야호!’ 소리만 외쳤다 "서방님 저기 저 폭포는 산주 폭포와 용연 폭포이고 저기 저것은 천신 폭포입니다. 이곳 인호대외엔 세 폭포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즐기는 것을 인호관폭이라 하여 묘향산팔경이라 해요... 지금이 늦가을이라 단풍밖에 볼 수 없으나 봄엔 두봉화(철쭉꽃)가 장관이에요! 해가 짧아졌어요. 이제 빨리 내려가야 되요! 서둘러도 늦을 것 같아요...“ 둘은 서두르다 상주암에 이르러 진이가 바위에 깔린 낙엽을 밟고 넘어져 발목을 접질렸다.

벽계수에게 업혀서 상주암에 도착했을 때는 보름달이 창공에 두둥실 떴다. 주지스님과 동자승이 나와 맞았다. “내 뭐라 했소이까. 늦지 않게 서두르라 했지 않소!” 업혀오는 진이를 보고 호된 책망이다. 방에 들어가니 동자승이 저녁상을 가져다주었다.

서둘러 저녁을 먹은 진이는 거문고를 땡겼다. 그리고 조용조용히 《창부타령》(倡夫打令)을 불렀다. “응향각 들어가서 오동향로 구경하고/ 심검당과 관음전, 동림헌과 미타전 망월주를 차례로 구경하고/ 유산길 찾아가서 안심사 돌아드니/ 무수한 부도비는 도승의 유적이라/ 명월은 교교하고 청풍은 소슬이라/ 녹수청산 깊은 곳에 상원암을 찾아가서/ 대해포 구경하니 정신이 쇄락하여 이층철사 휘어잡고/ 인호대 올라가니 송풍은 거문고요 두견성은 노래로다./ 얼씨구절씨구 지화자 좋네. 아니는 못하리라. 창부타령 63곡 중 한곡입니다.”라며 진이는 거문고를 벽에다 세우고 일어나 살포시 절까지 하였다.

발목을 접질려 업고 온 감사의 표시다. 벽계수는 진이의 거문고에 맞춘 창부타령에 취해 주지스님의 방으로 가는 것도 잊고 잠에 빠졌다. 사내는 역시 사내다. 진이가 옆에 있는데 그냥 잘 벽계수가 아니다. 비몽사몽이라지만 생시같이 진이의 남자노릇을 하려 덤빈다.

진이도 피곤하지만 사내가 싫지가 않았다. 진이의 몸은 사내를 밥 먹듯이 맞았던 것이 아닌가! 허리띠를 풀고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바지를 내리니 비릿한 사내 물건이 뱀처럼 꿈틀대며 들어와 목이 마르면 냉차를 마셨던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진이는 2~3년 기생으로 화대(花代)를 받고 송도를 넘어 한양과 두만강 건너 중국 사신들까지 품어보았다.

조선의 수도는 서울이고 서울이 조선의 중심이지만 송도는 중국의 문물이 들어오는 관문으로 나라가 바뀌어 수도의 기능은 잃었으나 문화의 화려함은 살아있었다.

진이가 이젠 기계(妓界)일선에서 물러났으나 한양의 지체 높은 문객(文客)이나 중국의 묵객(墨客)들은 송도 명월의 달빛아래 하늘의 소리인 거문고 가락에 송도 명주인 태상주를 마셔 보기를 평생의 소원인 소위 버킷리스트의 하나로 꼽고 있었다.

진이는 사내들의 욕망의 온도계를 가지고 있다. 중국인들은 황하(黃河)를 허풍을 떨어 강 이름을 붙였듯이 통큰 척 하지만 실제 화대는 짜다. 사신들이 대부분이지만 조선정부의 접대비는 넉넉히 화대를 주며 환대를 부탁받으나 제 돈으로 잠자리를 할 땐 되놈의 본색을 드러냈다. 잠든 사이 화대를 떼먹고 줄행랑을 친 되놈도 진이는 겪었다.

손이 크기로는 조선의 중인(中人)들이다. 북경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중인(역관)들은 떼돈을 벌었다. 그들이 송도에 오면 청교방 거리는 불야성을 이루고 거문고 소리와 교성이 거리를 메웠다. 북방민족의 독특한 대륙기질의 본색이다.

송도엔 개성상인이 있다. 고려인삼을 연경에 가서 비단과 보석으로 교환해와 떼돈을 번 백부자(白富子)가 대표적이다. 그는 남산동에 고래 등 같은 집을 짓고 왕실도 부러워하는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진이한테 첩이 되어 달라는 제의를 여러번 해왔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그런 제의가 있은 후론 명월관 출입도 막았다. 자유인의 자격에 흠이 되는 어떤 제의도 진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혼의 자유를 위함이다. 진이도 한 사내에게 마음을 주면 일편단심 목숨을 걸었다.

지금 벽계수와 관계가 그러하다. 밤마다 뜨겁게 살을 섞고 나니 봄볕처럼 따뜻한 정이 들기 시작하였다. 오늘밤이 새고 내일이 되면 벽계수는 다시 한양으로 간다. 그에겐 사대부의 풍모도 있고 패기도 보였다.

이제 헤어져야 하는데 강렬한 인상을 주고 싶다. 지금 벽계수는 진이의 몸뚱이에서 욕망을 만끽하고 코를 벌름 거리며 깊은 잠에 빠졌다.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팽창되었던 물건은 오뉴월 엿가락같이 축 늘어진 채 삐죽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장관이다. 진이도 벌거숭이인 채다. 그녀는 살포시 일어나 학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사랑하는 정인을 떠나 보낼 때만 추는 춤이다. 양곡 송세양과 헤어질 때 마지막 밤에 추고 이번이 두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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