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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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황진이(黃眞伊) <제25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7-05-31 09:36     최종수정 2017-05-31 10:3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초하루에 시작된 고려미인의 화장은 보름이 되는 날에 절정을 이룬다. 벽계수와 헤어진 후 송도팔경을 유람하고 진이는 고려미인 화장에 열중이다. 그동안 소세양·이사종·이생 등과 뜨거운 살을 섞으면서 몸이 다양하게 속물화 된 것을 정화하려는 속내다.

기생의 몸이 돈이 되는 사내라면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음이나 진이는 여느 기생과는 다르다. 몸은 청루가 즐비한 청교방 거리에 있으나 영혼은 선계(仙界)에 있다. 진이가 기생이 된 것은 사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신분이 바뀌면서 출발되었다.

아버지 황진사 집에서 호의호식하는 어느 날 사대부 집에서 청혼이 들어왔다. 하지만 본래 서녀였으니 사대부집 며느리는 당치않은 일이라며 동생에게 양보하라는 압력을 못 이겨 포기하고 집을 나와 기생이 되었다. 진이가 기생이 된 사연은 또 있다. 이웃집 총각이 상사병에 걸려 죽었는데 그의 상여가 집 앞에 와 멎어 옴짝달싹 하지 않아 남녀칠세부동석의 사회에 속곳으로 상여를 덮어주어 상여를 떠나보냈다. 영혼이지만 처녀가 총각의 여자가 되었다.

진이는 그 후 더럽혀진 몸으로 기생이 되어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삶으로 갔다. 기구한 삶이다. 지금 고려여인으로 곱게 몸단장과 화장을 하는 것은 천마산 지족암서 30년 벽면 수행을 하는 생불(生佛) 지족선사(知足禪師)를 품으려 하는 것이다.

동그랗고 아담한 얼굴, 자그마한 아래턱, 다소곳한 콧날과 긴 코, 약간 통통한 뺨과 작고 좁은 입, 흐리고 가느다란 실눈썹과 쌍꺼풀 없이 가는 눈에 정적인 얼굴.... 지금 진이가 그렇게 화장을 하여 30년 벽면 수행하는 지족선사를 보통의 세상으로 데려오려는 속내다.

그 동안 진한 화장으로 하루하루를 세상 남자들을 황홀하게 해주었으나 지족선사는 사람 자체가 다르다. 청정 인간이다. 진이는 청정 인간이 원할 여인이 되려고 벌써 열흘째 몸을 꾸미고 승무(僧舞)까지 익히고 있다. 진이의 승무는 환상적이다. 남색치마에 흰 저고리, 흰 장갑, 흰 고깔, 붉은 가사, 양손엔 부채를 들어 마치 선녀의 학춤 같은 춤새다.

송도엔 여전히 고려의 향기가 짙게 남아있다. 도성에서부터 고을고을마다 사람들의 풍습과 언행이 아직까지 억불승유(抑佛崇儒) 정책이 착근되지 못한 상태다. 진이가 지금 고려여인이 되어 승무를 추면서 지족선사를 뜨겁고 화려하게 품으려 한다. 쉽지 않은 목표다. 이번엔 아름다운 여인의 승무가 무기다. 이 전략이 통하지 않으면 청상과부로 변장하여 유혹하려한다. 두 계획이 모두 불교와 연이 닿는다.

천마산의 봄은 아름답다. 천하의 명산인 금강산엔 못 미치나 천마산도 계절마다 절경이다. 오늘 진이는 거문고를 메고 천마산 지족암으로 향하였다. 지족선사를 뜨겁고 아름답게 품으려는 속내다. 진이 옆엔 옥섬이모가 따랐다. “천천히 걷자! 이 늙은이는 숨이 차서 못 걷겠다!” “길이 멀어요... 자칫 가기도 전에 날이 저물면 어떻게 해요?” 진이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지족선사는 오후 늦게는 매일 지족암 연못가에서 산책을 즐긴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때 산책하는 지족선사 앞에서 승무를 추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진이가 손을 내밀어 거부한 사내는 없다. 지족선사도 그러하리라 믿고 지금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산사의 오후는 짧다. 진이 일행이 지족암에 도착했을 때는 지족선사가 산책을 마치고 선방(禪房)으로 들어가려는 찰나다. 진이는 넙죽 큰절을 하고 제자로 삼아 달라고 애원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자 준비한 대로 옥섬이모의 거문고에 맞춰 승무를 추기 시작하였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냥 하고// 이 밤사 귀뚜리도 지새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 나빌레라.’ 40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그린 조지훈(趙芝薰·1920~1968)의 《승무》다.

당시 진이가 지족선사 앞에서 추었을 《승무》는 더 고혹적 춤새일 것이다. 술에 장사 없다 하듯이 미녀를 막무가내로 손 사례를 칠 사내가 있을까? 더욱이 천하일색 진이의 고혹적 유혹을 30년 벽면수행의 지족선사인들 마지막까지 석남(石男)인 냥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런데 당나라 헌종 때 위와 같은 역사가 있다. 대 문장가 한유가 불교를 배척하는 불골표(佛骨表)를 올렸다가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그곳(潮洲)의 영산 축융봉에 태전선사가 있는데 고명한 학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한유는 대학자답지 않게 울화가 치밀어 명기(名妓)로 이름난 홍련(紅蓮)에게 10일 내에 태전선사를 파계 시키면 큰상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소위 미인계(美人計)다. 하지만 미인계는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다. 홍련의 치마폭에 태전선사가 써 보낸 시는 이러하다. ‘십년동안 축융봉을 내려가지 않고/ 색(色)을 관(觀)하고 공(空)을 관리하니, 색이 공일 뿐이네/ 어찌 조계(曹溪)의 한 방울을/ 홍련의 한 잎새에 떨어뜨리겠는가!’ 이 시를 본 한유는 감탄하여 태전선사에게 불법(佛法)의 요지를 되려 배웠다는 아이러니 한 역사다.

아무튼 진이는 위의 역사를 틀림없이 떠올렸을 것이다. 그녀는 사내가 자신을 가지고 주인행세 하는 것을 어느 것 보다 싫어한다. 아니 저주한다고 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진이는 사내가 자신의 불두덩 위에서 씩씩대며 황홀경에 빠져 있어도 어머니 품에 안긴 젖먹이 정도의 재롱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해도 그녀는 자존감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속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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