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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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김삼의당(金三宜堂) <제8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7-09-27 09:36     최종수정 2017-09-27 10:17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꿈은 이루어져야 아름답고 후세에 멋지고 훌륭한 역사가 된다. 그것은 개안이나 국가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삼의당의 화촉동방에서 잉태된 화려한 꿈이 아름답게 실현되리란 기대가 점점 멀어져 가는 상황이다.

농업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상공업의 번성으로 상업자본의 축적이 이뤄져 중인(中人)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양반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소위 신분세탁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때문에 실력 없는 기존의 사대부들은 3대에 걸쳐 벼슬을 하지 못하면 향반(鄕班)으로 신분이 하향되고 재력 있는 중인들은 속속 사대부 대열에 들어왔다.

상전벽해 되는 시대다. 삼의당이 삶의 모든 것을 받쳐 양가의 영광스런 옛 영화를 부활시키려는 때가 바로 그런 시대적 배경이다. 양반들의 상징인 족보도 이때 양산되기 시작했다. 이는 사대부가 되어 상민(常民)의 신분을 벗어나면 군역 등 각종 노역에 징발되지 않는 위치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문에 중인 등 상업자본이 왕성하게 발달한 조선말기인 18세기엔 비정상적으로 족보를 만들어 양반이 되는 사례가 비일비재 했었다.

이 같은 세태에 영의정 등 고관대작에 올랐던 경반(京班)들이 벼슬을 몇 대에 걸쳐 하지 못하여 향반으로 신분이 하향되었을 때 부귀영화를 누렸었던 과거의 향수로 잠을 이루지 못했었을 것이다. 
 삼의당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을 분위기다. ‘봄바람이 큰 길 위에 불자/ 백마가 꽃잎 밟으며 달리네./ 복사꽃 오얏꽃 다투어 피니/ 집집마다 봄꽃이 가득하구나./ 한식 날 동풍 불며 비가 내려서/ 꽃향내가 큰길가에 깔렸구나./ 자류마 함부로 밟지 않으니/ 떨어진 꽃잎을 아껴서겠지.’ 《큰길》이다.

사실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꿈을 성취하려는 야망을 기대하는 사람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뜬 눈으로 밤을 새기가 예사다. 지금 삼의당의 심사가 딱 그러하다. 더욱이 성리학으로 똘똘 뭉친 남성 중심 시대에 여성이 야망을 핀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꿈이다. 그것도 본인이 직접 뛰지 않고 남편을 통하여 대리만족을 느껴야 하는 처지에선 석달 열흘 통곡을 해도 속이 풀리지 않을 한(恨)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조선시대 여성들이 처해 있었던 현실의 한계였을 게다. 남녀칠세부동석과 삼종지덕의 굴레에서 인형처럼 살아야 할 숙명이지만 그 운명을 벗어 내려는 피눈물 나는 투쟁적 삶의 현장이 삼의당의 삶이다. ‘하늘 끝 가신님은 소식도 없네./ 사립문은 언제나 쓸쓸히 닫혀 있네./ 긴긴밤 오동잎은 흐느껴 울고/ 처마 끝에선 낙숫물 소리만 나네./ 처마 끝에 물 듣는 소리/ 밤새도록 창 너머서 우는 듯해라./ 금병풍 속에서 혼자 베개를 베고/ 차디찬 등잔 아래 잠 못 이루네.’ 《가을밤 비가 내리네.》다. (시옮김 허경진)

삶이 무섭다. 낮엔 일에 치여 잠자리에 들거나 일하다 허리가 아파 잠시 허리를 펴고 명징한 가을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때엔 문득 잊고 있었던 사람이 떠오른다. 화촉동방에서 큰 꿈을 공동으로 세우고 산사에 또는 한양에 있을 사랑하는 이를 떠올릴 것이다. 삼의당은 당연히 남편 하립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뜨거운 살을 섞고 일심동체가 된 부부일지라도 떨어져 있으면 강물처럼 생각이 같이 흐르지 않는다.

지금 삼의당과 담락당(湛樂堂·하립 호)의 관계가 꼭 그러하다. 금지옥엽 곱고 예쁘게 자라 향반 집으로 시집와 온갖 고생을 하며 옛 영화  부활에 노심초사하고 있지만 하립은 생각이 좀 다르다. 우선 하늘에서 방금 내려온 선녀같이 예쁜 아내가 그립고 보고 싶은 욕망이 앞서 책장을 넘겨도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아 밤마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날이 비일비재하다.

불타는 젊은 욕망이다. 사실 여자의 야심과 남자의 야망은 같은 듯 다르다. 여자는 긴 호흡이 이어져 분위기까지 조성된 안정된 꿈이 이뤄지길 희망한 반면 남자들은 순간순간 충동되는 감정을 처리가 돼야 긴 호흡이 가능한 동물의 왕국에서나 벌어지는 육식동물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여자는 육식동물을 조율하는 입장에서 초식동물로 사내들의 충동적 행동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체질적 한계가 어른거린다.

삼의당과 하립의 관계가 그러했으리라... 아내의 소개로 한양에 올라와 심상규(沈象奎) 집에 기식하면서 공부를 했으나 번번이 과거에 낙방하는 것도 순간순간 충동(아내 생각)으로 공부는 사실상 하는 척만 했을지도 모른다. 욱일승천하는 신진들의 기개에도 밀렸으리라...

심상규의 집엔 책이 많기로 조선에서 으뜸이었으나 하립에겐 별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삼의당이 심상규를 소개했을 때는 깊은 뜻이 있었으나 하립은 그 뜻을 알아채지 못했다. 심상규는 한 번에 다섯줄을 읽는 총명함을 가졌던 명재상이었다.

삼의당과 하립의 화촉동방에서 탄생시킨 위대한 영광의 부활은 끝내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가세는 더욱 기울어졌다. 19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으나 남원의 봄 풍경은 그래도 옛 모습 그대로였다. 가을에 과거보러 한양으로 올라갔던 하립은 달랑 괴나리봇짐 하나를 메고 남원 집으로 내려왔다.

이듬해(1802) 봄이다. 남원의 봄은 화창하다. 동백·철쭉·진달래 꽃 들이 마치 금의환향이 아닌 하립을 위로하듯 어느 해 봄보다 화려하고 아름답고 아름답다. 삼의당도 2년 만에 만나 남편에게 집안일은 숨기고 즐겁고 뜨겁게 맞았다.

하립은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에 집에 도착하였다. 삼의당의 모녀는 괴나리봇짐을 지고 초라한 모습으로 들어오는 하립을 금의환향하는 주인공처럼 맞았다. “아버지 건강하게 돌아오셔서 반가워요!” 맏딸 하경(河敬:가명)의 반기는 모습이다. “경이가 어느새 숙녀 티가 나는구나! 시집가야겠구나...” 부녀의 대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삼의당은 돌아서서 어깨를 들썩이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참았던 회한이 한꺼번에 밀물처럼 밀려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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