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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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김삼의당(金三宜堂) <제12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7-11-01 09:03     최종수정 2017-11-01 09:04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하씨 집안의 영광 재현의 꿈 실현은 다음 세대로 넘어가게 되었다. 하립의 향시(초시) 합격이 본시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의당은 하늘이 무너지고 갑자기 장남이 된 듯이 앞이 캄캄하지만 헛기침으로 자신을 지키려 애쓴다.

지금 무너지면 늦둥이 꿈마저 잃을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다. 하지만 입맛이 떨어지고 시르시름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파오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경재가 사망하자 손자 영진(榮進)이 제일 슬피 운다. 설움이 북받쳐 정신을 잃기도 하였다. 삼의당은 낳기만 했지 키우기는 할아버지가 키웠다. 삼의당은 철저한 농부가 되었다. 늦둥이였지만 비교적 순산을 해 하루 이틀 쉬고 논밭으로 나갔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고 했는데 삼의당은 그 말을 철저히 지켰다. 봄에 씨 뿌리고 가을에 추수할 때까지 삼의당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지 않는 한 논밭으로 나갔다. 논밭으로 나가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농작물을 보면 세상시름에서 밀려났다.

어쩌다 집에 있으면 여자의 욕망이 꿈틀댄다. 화려하게 꽃단장하고 광한루로 나가 옛 친구들을 만나 얘기꽃을 피우고도 싶고 남편들에 대한 불만도 풀어놓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삼의당은 그럴 때마다 허벅지를 꼬집어 재빨리 현실로 돌아왔다. 부질없는 허망한 욕망에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늦둥이 영진이를 출산하고는 마음이 더욱 바빠졌다. 삼의당은 늦둥이를 낳고는 이틀 밤을 소리 없는 울음으로 날을 샜다.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했는데 늦둥이에겐 언덕이 없다.

하립은 삼의당의 성화에 떠밀려 마지막으로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부부 농부가 되었다. 부부는 옛 조상의 영화를 재현을 위해 최선을 다 했다. 그러나 결과는 초라하다. 사반세기에 걸쳐 얻어낸 것이 고작 향시였다. 삼의당은 더 이상 옛 영화 재현에 매달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하립은 꾀죄죄한 괴나리봇짐 하나는 메고 어둑어둑한 저녁에 귀향하였다. 하지만 삼의당은 목욕재계하고 술상까지 준비해 놓고 기다렸다. 하립은 주막에서 이미 전작이 있는 상태다. “미안하오! 나는 벼슬 할 재목이 못되나 보오...” 울음이 섞인 목소리다. “아니에요! 당신은 훌륭했어요... 세상이 당신을 알아주지 않았을 뿐이에요. 우리는 최선을 다 했어요. 후회가 없는 과거에요! 이제부터는 훌륭한 농부가 되어 영진이한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 단호한 삼의당 목소리다. “어느새 밤이 깊었네요. 이 술은 당신이 귀향할 때 대접해 드리려고 제가 손수 담은 삼의당주(酒)에요... 드셔 보세요...” 삼의당은 두 잔에 가득 부어 서로 권하였다.

주거니 받거니 한 술자리는 금방 새벽이 되었다. 꼬끼오 새벽을 알리는 닭울음소리에 부부는 새벽이 옮을 알았다. 얼큰한 술기운에 아스라하게 잊었던 화촉동방을 떠 올리며 그들은 한 덩어리로 뭉쳤다. 서로 더 뜨거워지려고 깊이 넣고 더 깊이 받았다. “당신 몸놀림이 이상해요... 한양에 가서 과거 공부는 하지 않고 기생집에만 다녔어요?” “그게 무슨 소리요?” “당신 몸놀림이 예전 같지 않아서요!” 하립은 대답 대신 엉덩이에 힘을 한껏 넣어 디 깊이 더 강하게 사랑을 주었다.

삼의당도 만족한 몸놀림이다. 부부는 동창으로 여명이 들어올 때까지 한 몸이 되었다. ‘문 앞에 돌아온 백마는/ 낙양의 구름을 밟고 왔겠지/ 아이 불러 소식을 물어야지/ 누가 요순임금을 만났느냐고’ 《과거시험 뒤에 스스로 읊다.》다. 그랬을 것이다. 삼의당은 남편이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임금에게 어사화를 받아 머리에 꽂고 금의환향하기를 학수고대했을 터다.

하지만 그 꿈은 꿈으로 끝이 났다. 지금 자신의 배 위에서 욕정을 채우고 있는 하립은 한양의 사대부가 아닌 향시에 머문 향반이다. ‘노을은 비단 되고 버들은 안개 같으니/ 인간세상 아니라 별천지일세./ 서울에서 십년동안 분주하던 나그네가/ 초당에 오늘은 신선같이 앉으셨네.’ 《초당에서 낭군을 모시고 읊다》다.  (시옮김 허경진)

삼의당은 기가 막힌다. 머리 잘라 팔고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패물까지 처분하여 과거 뒷바라지를 했으나 고작 향시였다. 하지만 현신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삼의당은 현실을 부정할 만큼 현실을 모르지 않았다.

부부는 이튿날 나란히 논밭으로 나갔다. 하립은 즐거운 표정이다. 입신양명이란 멍에를 벗어던져 오히려 마음이 후련하다. 가난한 향반의 논은 평지에 있지 않고 산골짜기에 있다. 벼가 제법자라 불어오는 바람에 하늘하늘 푸른 물결을 이루었다.

“올해엔 풍년이 될 듯해요...” 삼의당의 표정이 퍽 밝아보였다. “저는 사실 당신이 정작 과거에 등과하면 어쩌나 걱정했었어요...” “그게 무슨 소리요?” “당신이 만약 장원급제하여 승승장구하면 한양에다 경처(京妻)를 두면 저는 향처(鄕妻)로 전락되지요. 그러면 저는 뭐에요? 머리 자르고 패물 팔아 과거 뒷바라지를 했는데 단물은 한양에 있는 경처가 빨아먹잖아요! 그렇게 되는 것을 은근히 걱정했단 말이에요....” 부부는 땡볕에서 일을 하다 잠시 나무그늘에 앉아 얘기꽃을 피웠다. 과거를 포기한 하립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삼의당의 내면에서 나오는 자식을 대하는 어머니 같은 속내다.

하립은 구름 한 점 없는 청자 빛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초점 없는 표정이다. 삼의당의 말이 편한 마음으로 들렸을 리가 없다. 그대 밤나무 위에서 후드득 꾀꼬리 한 마리가 날아갔다. “덥지요? 조금 더 올라가며 차디 찬 샘이 있어요. 그곳에 가서 점심을 먹어요. 제가 감자떡을 만들어 가지고 왔어요...” 삼의당은 남편 하립이 과거에 등과하지 못해 의기소침해 있을까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한마을에서 같은날 같은시에 태어나 온동네 사람들의 부러움 속에 부부가 되었는데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삼의당 마음 같지 않다. 시아버지 경재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도 하립의 계속 된 낙방과 무관하지 않다. 시아버지는 이제나 저네나 하고 초하루와 보름엔 과거공부가 시작되고부터는 빠지지 않고 사당에 가서 기도를 올렸다. 삼의당의 정화수 기도와 시아버지의 사당의 기도도 효과 없이 화려했었던 조상의 옛 영화 재현은 향시로 만족해야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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