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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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김삼의당(金三宜堂) <제13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7-11-08 09:26     최종수정 2017-11-08 09:28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햇살이 따갑다. 가을 햇살이 따갑고 일조량이 풍부해야 곡식알이 잘 영글고 작황이 넉넉해진다. “올해엔 추수가 풍부할 것 같아요!” 삼의당이 피를 뽑다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하립을 쳐다보며 말했다. 삼의당의 손엔 피가 한 옴큼 들렸으나 하립의 손엔 네댓 개의 피가 들려 있을 뿐이다.

초보 농부 하립은 아직 피를 구분할 줄 몰라 삼의당이 뽑는 것을 보고 따라 하기 때문에 성적이 좋지 않다. “여보 당신은 천천히 하세요! 농부도 되기가 쉽지 않아요. 저는 십 수 년 걸려 배운 농부 모습이에요. 당신은 제 곁에 계셔주시는 것만으로 저는 행복하답니다. 당신이 등과하면 한양 기생 년들이 그냥 놔뒀겠어요? 제겐 당신의 과거 낙방이 전화위복이에요.” 하립은 삼의당의 말이 허언이란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이 더 아프다.

금지옥엽으로 커온 삼의당이 시집와선 농부가 되었다. 결혼할 땐 온 근동의 처녀들이 부러워한 혼처였었다. 그러나 결혼 후 생활은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과거등과에 한없이 매달릴 수는 없다.

어느새 불혹을 지나 지천명(知天命:50)이 가까워지는 세월이다. 삼의당의 말이 남편 하립을 위로 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덜컥 등과하여 한양에 머무르게 되면 향처로 독수공방이 두렵기도 한 것이다.

하립은 옥골선풍에 헌헌장부다. 여자가 하립을 한번 보면 샘물에 버들잎 빨려들 듯 빠져드는 사내를 방치할 수 없는 삼의당의 여심이다. 삼의당의 솔직한 속내다. 삼의당이 하립으로 정혼이 결정되기 전엔 근동의 모든 처녀들의 관심이 온통 쏠렸다. 그러자 삼의당이 결정되자 축하와 질시가 동시에 폭발하였다.

양가 집안의 형편으로 보면 입신양명이 목숨보다 더 절박한 현실이다. 하지만 삼의당의 속내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결혼 첫날 약속한 조상의 옛 영화 재현을 위해 십수년 사실상 과부나 다름없었던 생활이 더는 겁부터 났다.

이젠 여자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태도다. 더욱이 늦둥이 걱정이 태산 같다. 이제 등과하여도 벼슬길이 그리 길어 보이지 않은 것도 작용하였다. 그럴 바에야 착실한 농부가 되어 탄탄한 향반집안을 늦둥이한테 물려주고 싶은 것이다. 마음을 그렇게 정하고 나니 부부는 날마다 동창이 밝아야 뜨거운 살이 떨어졌다.

늦정에 불이 붙었다. ‘서봉촌(봉서방)에서 낳고 자라/ 내 동산 밑에 자리 잡고 사네./ 초가 몇 칸을 깨끗이 치우고/ 상에 가득한 시(詩 )서를 즐겨 읽네.’ 《시골에 살며 짓다》다. 사실 삼의당의 마음이 당시 그러했으리라....

하지만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꽃을 보면 꽃처럼 아름다워지고 싶고 오색찬란한 무지개를 보면 무지개 같이 화려하게 되어 뭇사내들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싶은 것이 여심이 아니던가! 삼의당도 그런 여심이 틀림없었으리라... 그러나 양가 집안의 현실이 너무 가라앉아 있어 삼의당으로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조선에선 여자가 과거에 응시할 수 없었다. 아마 여자에게 과거 응시권이 있었다면 삼의당이 직접 양가 희망인 옛 조상의 영화 재현을 단번에 실현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는 여자에겐 철저한 남존여비 사회였었다.

아침저녁 하인들의 돌봄으로 시작하여 해떨어지면 자리끼까지 챙겨 주는 사대부 댁의 꿈을 실현하리라 당찬 포부를 가졌었던 것을 지천명이 가까워서야 부질없는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무정하게 흘러간 세월이 너무 아까웠던 것이다. 그들 부부생활이 어느새 한 세대가 가까웠으나 실제 뜨거운 살을 섞으면서 산 생활은 불과 7~8년에 지나지 않았다.

하립은 입신양명을 위해 한양을 오가는 길과 주막에서 황금 같은 세월을 보냈고 삼의당은 삽과 괭이를 들고 논밭에서 보냈던 것이다. 또 다시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싶지 않은 게다. ‘밤이 차츰 기울어 새벽이 가까워 오는데/ 뜨락에 가득한 가을달이 더욱 밝구나./ 이불에 기대어서 억지로 꿈꾸다가/ 님 곁으로 이를 무렵에 놀라서 잠 깨었네./ 새벽의 밝은 달이 서편 성을 비추는데/ 성 위에서 그 누군가 피리를 불며 가나./ 가여워라 깊은 규방의 외로운 촛불이여/ 시름에 겨운 이 몸은 꿈도 이룰 수 없네.’ 《가을밤 규방에서 지은 노래》다. (시옮김 허경진)

이젠 남편과 뜨거운 살을 마음껏 부딪칠 수 있어도 잠결에 헤어져 살았을 때의 꿈을 꾸었다. 그럴 때마다 삼의당은 숨이 턱에 닿도록 뜨거운 호흡을 토해내며 쌓이고 쌓였던 정욕을 마음껏 채우고 깊은 잠에 빠진 하립의 아랫도리를 움켜잡아 보았다.

현실이다. 그때서야 삼의당은 알 수 없는 한숨을 조심스럽게 토해내며 잠을 청했다. 잠을 청하면서도 깊은 생각에 빠졌다. 과거포기를 사당에 가서 선조님들에게 말씀드려야 하는데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서다. 삼의당은 남편이 당당히 등과하면 친정에 가서도 사당에 입신양명을 화려하게 신고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꿈을 과감히 포기해야한다. 산 시간보다 살 세월이 그리 많지 않아서다. 늦둥이에게 다정한 부모 모습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이젠 한날한시에 태어나 부부가 되었으니 죽을 때도 한날한시에 이승을 떠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하여 부모를 잃은 설움을 한 번에 끝내주고 싶은 게다.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는데 그 꿈은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이제 남은 꿈은 한날한시에 이승을 떠나는 기대다. 18세기 향촌 아낙의 희망·좌절·욕망·시련·체념을 삼의당은 온몸으로 겪었다.
 남편의 등과 포기를 현실로 받아들인 삼의당의 건강이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다.

꿈을 포기한 여인의 심신(心身)이다. 남편과 함께 지은 농사는 어느 해보다 풍성하다. 하지만 가을걷이를 마친 삼의당은 결국 자리에 누웠다. 부자의 극진한 간호에도 별효과가 없다. 자리 보존하고 누운 지 이십일 만에 삼의당은 미라가 되었다. 물을 겨우 넘길 뿐 곡기를 넘기지 못했다.

늦둥이 영진은 약지를 깨물어 뜨거운 피를 어머니 입에 넣었다. 삼의당은 늦둥이 효성으로  생명을 일주일 더 연장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한 54세의 이승 삶을 정리하였다. 남편 하립은 삼의당보다 6년 더 살고 전북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 부인 곁으로 갔다. 또한 마이산 입구 광암바위에 마주보는 곳에 시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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