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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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김부용(金芙蓉) <제9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04-04 09:36     최종수정 2018-04-04 09:39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봄의 평양은 색향(色香)이기도 하지만 자연풍광이 조선팔도에서 으뜸이다. 송(宋)나라 사신 서긍(徐兢·1091~1153)은 평양을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마치 무릉도원 같다’ 서술하였다.

고려는 고구려의 역사와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 받았다. 고구려에서 ‘구’자만 빼서 국호로 정했다. 대륙으로 뻗어 나아가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려는 정복욕과 고려청자를 만들어 내는 세련미에 서긍은 넋을 빼앗겼다.

부용은 서화담과 황진이 관계를 자신과 연천의 관계로 비유하기도 한다. 황진이는 서화담을 사랑하려 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해 제자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부용은 평소에 존경했었던 연천을 사랑하게 되어 뜨거운 품으로 들어갔다.

여자의 행복이다. 그러나 황진이는 서화담을 얻지 못한 반면에 그녀가 원하는 사내들을 품고 풍류와 시작(詩作)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용은 둥지 안의 새가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육체의 허기가 있을 때마다 소꿉동무 문칠이를 떠올렸다. 마음의 간음이다. 문칠이를 목욕재계 시켜 깔끔한 옷을 입혀 놓으면 헌헌장부다. 연천도 옥골선풍 헌헌장부지만 팔십 줄에 가까운 모습에선 문칠이 같은 떡대는 찾아볼 수 가 없다.

부용의 분에 넘치는 몽니다. 하지만 고목의 그늘에서 아직 쭉쭉 창공으로 뻗어 나아갈 청죽(靑竹·翠竹취죽)이 시들어가는 느낌을 부용은 숨길 수 없는 것이다. 말 타면 종 세우고 싶은 것이 인간의 속내다. 부용이도 더욱이 여자인데 그런 생각을 안했을 리 없다. 분에 넘치는 호의호식을 할 때면 더 좋은 조건의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부용이 성천에서 평양으로 온지도 어느새 해를 넘겼다. 겨울에서 봄이 되었다. 수양모 설매의 걱정을 깜빡 잊고 있었다. “대감 나으리, 소첩 성천에 잠시 다녀와야겠습니다.!” 부용이 연천의 가슴에 폭 싸여 병아리 같은 가슴을 팔딱거리며 말하였다. 연천의 손은 어느새 탱탱한 부용의 엉덩이를 쓰다듬고 있다. 손아귀에 들어온 깃털이 뽀송뽀송한 새끼 참새인 냥 내려다보며 연천이 입을 열었다. “갑자기 연천엔 왜 가겠다는 거냐?” 자못 궁금한 표정이다. ‘긴 성을 끼고 대동강이 질펀하게 흐르네. / 난간에 기대었더니 고깃배라도 탄 듯 해라. / 어디서 눈발이라도 떨어지는지 / 물 빠진 모래밭에 흰 갈매기가 내리네.’ 《연광정에서》다. (시옮김 허경진)

부용의 시는 지금 읽어 봐도 장면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르게 하는 자연주의적인 동시에 리얼성까지 담겼다. 자연주의적인 것은 그녀가 성적·신분적으로 사회적 제약에 세상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도 작용했겠으나 성적(여성)차별에 더 무게가 실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 같은 사례는 조선의 3대 여류시인으로 꼽히는 이매창(李梅窓) · 황진이(黃眞伊) 작품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뜨락에 봄이 깊어 새소리 들리기에 / 눈물이 얼룩진 화장 얼굴로 사창을 걷었네. / 거문고를 끌어다가 《상사곡》을 뜯고 나자 / 동풍에 꽃이 지고 제비들만 비껴나네’ 매창의 《봄날의 시름》이다. 또한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 명월이 만공산 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황진이의 《청산》이다. 위의 시(詩) 모두 알레고리(allegory·비유,풍유)한 작품이다. 상대는 모두 터놓고 ‘내 남자다.’라고 자랑할 수 없는 지체 높은 상대다. 그래서 그녀들은 삼라만상에 비유하여 자신의 뜨거운 마음을 토로하였다.

부용도 그러했으리라... 호의호식으로 마음은 신선들의 세상인 천상(天上)에 가 있으나 몸은 속세의 시름과 욕정을 떨쳐버리지 못한 상태다. 부용은 연천의 뜨거운 시선을 의식하며 다시 입을 떼었다. “대감 나으리의 깊은 사랑에 설매 어머니 생각을 그만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천첩이 보살펴야 할 노인인 것을...” 부용의 호수 같은 맑은 두 눈에 수정처럼 맑은 눈물이 그득히 고였다. “허허... 내 그럴 줄 알고 성천의 목민관 유관준 사또에게 각별히 부탁했느니라... 그리고 너의 소꿉동무도 좋은 혼처를 구하여 결혼까지 시켰느니라. 너는 아무걱정 말고 천부적 시작(詩作)을 게을리 하지 말지어다!” 부용의 두 눈에 가득했던 눈물이 주르르 복사꽃 빛깔 가슴으로 흘러내렸다.

연천은 부용이 성천에 있을 때 신경 쓸 대상들을 유관준을 통해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 부용으로부터 알뜰한 사랑을 받을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다.

초봄의 깊은 밤이다. 오늘도 연천은 애주가가 주막에 잠시 들려 몇 잔의 술을 마시듯 서둘러 맛있게 방사를 즐기고 깊은 잠에 빠졌다. 부용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 다리가 떨렸다. 육체의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음을 알리는 신호다.

부용은 서둘러 고향 성천으로 마음을 돌렸다. 일년 사이로 신임 사또에게 수청을 들며 괴로웠던 추억을 되살렸다. 그때는 창자가 끊어지는 아픈 추억이었는데 얄밉게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오뉴월 들소 모양 거친 풀무질이 지금은 아쉬움이 되었다.

첫 남자 우동진(禹東振·가명)은 부용의 붉은 처녀성 선혈을 보고는 흡족한 표정으로 부실(副室)이 되어 줄 것을 간곡히 청하기도 하였다. 그때 부용은 처음으로 사내를 아침 안개처럼 어렴풋이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둘째남자 박지문(朴之文·가명)에게 먹이를 찾는 야수로 보여 어렴풋이 들었던 사내에 대한 그리움이 정나미가 떨어졌다.

셋째남자 김풍수(金風秀·가명)는 목민관이라 보다 주색잡기에 능한 한량이었다. 그런데 세 사내 중에 지금 그 남자가 문득 부용의 추억의 주인공으로 부각되었다. 그는 부용과 강선루를 자주 찾았다. 한량답게 부용의 거문고에 맞춰 춤과 노래를 아끼지 않았다. 옥골선풍의 헌헌장부는 아니지만 어딘가 귀티가 풍기는 풍채다.

 지금 부용은 김풍수가 아쉬운 새벽녘이다. 연천은 초저녁에 맛있는 방사를 즐기고 꿀맛 같은 잠을 잔 뒤 새벽 정기로 오뉴월 엿가락처럼 늘어졌던 물건이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모양 봉긋이 잠방이를 들추고 얼굴을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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