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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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김부용(金芙蓉) <제13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05-02 09:36     최종수정 2018-05-02 12:23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세월은 유수와 같다. 연천은 부용을 위해 새로 마련한  집(녹천정)에 도착하자 구조 설명에 정신이 없다. “먼데서 오느라 수고가 많았느니라! 이 방은 내실이고 이 방은 서재니라! 후원 뒤엔 녹천정이란 초당을 별도로 지었느니라... 나는 그곳에 시우(詩友)들과 퇴근 후에 너와 함께 수창(酬唱)을 즐길 것이다. 이립(而立·30세)을 향해 가고 있는 너도 조용히 시도 쓰고 고전도 읽으면서 내 보필에 신경 쓰느라 못했던 공부도 더 하렴... 중국 고전도 내가 사신으로 갔던 친구한테 부탁하여 구했느니라.” 서재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진귀한 책들이 빼곡히 정리되어 있다. “대감, 어린 천첩이 이렇게 호사스런 대접을 받아도 되나요? 천첩은 대감 옆에만 있는 것으로도 행복합니다...” “아니다. 이 늙은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너는 이 정도의 행복은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느니라...” 연천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녹천정에서 평양의 화촉동방처럼 첫 밤을 지낸지도 어느새 계절이 바뀌었다. 부용과 연천은 밤마다 꿈길이다. 연천은 팔십 청년 기분으로 이조판서로서 의욕이 넘친다. 부용과 헤어져 있을 땐 의욕이 꺾여 퇴근하여 밤이 두려웠었다. 그러나 부용을 한양으로 불러 온 후론 출근길이 즐겁고 해 떨어져 퇴근이 학수고대 되었다.

연천의 퇴근길엔 으레 한두 명의 친구를 데리고 왔다. 풍류에 뛰어난 부용을 자랑하고 싶어서다. 따라온 친구들은 말만 들었던 부용을 직접 보자 환호성을 터뜨렸다. “대단한 미모야!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야.” 라며 입에 침이 마르는 것도 잊은 채 칭찬이 하늘을 찌른다.

녹천정은 밤낮없이 수창(酬唱)대회다. 연천의 인기는 날마다 높아졌다. 원래 대시인에다 고매한 인품으로 중앙정부 요인들, 특히 북촌(北村)의 친구들에게 깊은 사랑을 받았는데 이번에 재색을 겸비한 부용을 데려와 부러움을 독차지 하고 있다.

인생절정기다. 게다가 왕실의 신임도 높아 조선팔도에선 부러울 것이 없는 사대부 경화족(京 華族)이다. 이 같은 연천의 곁에서 밤낮으로 수발을 드는 부용은 문득문득 이 행복이 언제 낙엽 떨어지듯 예고도 없이 끝이 날까 방정맞은 걱정이 앞섰다. 너무나 많은 나이 차이 때문이다. 지금도 방사를 한 후엔 정신없이 코를 골며 새벽까지 자는 모습을 볼 때마다 연천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부용은 온몸이 엄동설한 알몸이 얼어붙듯 사지가 떨렸다.

연천은 부용이 갖가지 보약으로 수발을 들어주며 풋풋한 몸으로 사랑까지 듬뿍 받아 심신이 십여 년은 젊어졌다. 그런 자신을 알아차린 연천은 격무를 즐기고 있는 상태다. 그런 연천을 볼 때마다 부용은 상상했던 걱정이 현실이 될까 폭풍 같은 한숨을 토해냈다. ‘차가운 매화꽃이 가지에 혼자 달려 / 비바람에 시달리며 고개 숙였네. / 비록 땅에 떨어진다 해도 그 향기는 남아 있으니 / 흐늘흐늘 버들 꽃에다 어찌 견주랴.’ 《외로운 무덤》이다.

비록 반세기가 넘는 나이 차이의 조강지처가 아닌 소실이지만 자존이 강한 여류시인이다. 사대부집 무남독녀로 태어나 길지 않은 세월이지만 기생의 길을 걷다 경화족 백발노인의 소실이 되었으나 자존심은 꺾을 수 없다는 부용다운 시다. 그 같이 재색이 넘치는 부용에 연천도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듯 꽃다운 젊음에서 뿜어 나오는 회춘만 믿고 정사(政事)격무에 시달려 백발이 하루가 다르게 뭉텅뭉텅 빠지는 것도 잊었다.

새벽잠에서 깨어나면 그의 베개엔 흰머리가 새집을 짓듯 모였다. 연천은 오늘따라 일찍 퇴청하였다.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다. 평소엔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마침 부용이 잉어 탕을 끓여 놓은 상태다. 장안에서 제일 좋은 잉어를 골라 다렸다. “대감어른, 이제 출사는 그만하심이 어떠하신지요? 이제 이조판서까지 하셨으니 더 바랄 것이 없으신 신분이 아닐까요?” 부용이 초당에 앉아 장안을 내려다보며 연천에게 던진 말이다.

벼슬을 내려놓으란 얘기다. 당찬 말이다. 부용이 아니고선 도저히 얘기할 수 없는 내용이다. 연천이 잉어 탕을 마신 입을 약과로 뒷맛을 정리하고 부용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의외의 말에 당혹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부용도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당돌한 부용의 말에 연천이 슬그머니 표정을 바꾸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차일피일 오늘까지 왔느니라... 네 말처럼 조만간 주상께 윤허를 얻어내야겠다.” 연천의 음성이 떨렸다. 자존심이 상했다는 신호다.

이제 약관을 벗어난 품안의 계집한테 충고를 듣다니 하는 심사일 게다. ‘꿈속에서 고향을 찾아갔다가 / 잠을 깨고는 고향 그림만 보네. / 그 누가 알 텐가 천리 고향의 달이 / 외로운 이내 몸 비추는 줄이야.’ 《새벽에 일어나서》다. (시옮김 허경진)

연천의 분에 넘치는 따뜻한 품속에서 호의호식이 갑자기 짐스러울 때도 있다. 자신은 점점 젊음이 용솟음쳐 가는데 연천은 새벽 베개에 흰머리가 수도 없이 빠져 있어서다. 그럴 때면 고향의 소꿉동무 문칠이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산과 들, 논밭에서 단련 된 칡 같이 울퉁불퉁한 팔다리가 눈앞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꿈속에선 문칠이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찾아왔다. 부용도 연천과 잠자리가 성에 안차면 문칠이를 불렀다. 비몽사몽이지만 몽유병 환자처럼 행동하는 부용을 오늘 새벽 연천이 처음으로 보았다.

연천은 그날 이후 퇴임을 결심하였다. 그러나 출근을 해서는 마음이 흔들렸다. ‘이조판서 자리는 조선에 하나밖에 없는 벼슬인데 애송이 계집의 말 한마디에 헌신짝처럼 벗어던져?’ 연천은 고민에 빠졌다. 퇴청하여 부용을 보기도 싫다. 보고 또 봐도 더 보고 싶은 부용일 보기가 겁이 나기 때문이다. 오늘은 퇴청 길에 육조 근처 피맛골로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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