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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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김부용(金芙蓉) < 제14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05-09 09:36     최종수정 2018-05-09 13:44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출근하여 자리에 앉을 때마다 연천은 부용의 말이 떠올랐다. “이제 퇴임 하셔서 여생을 즐기세요!” 조선 팔도에서 어느 누구도 못할 말을 부용은 서슴없이 했다. 괘씸하기도 하고 신통하기도 하였다. 귀엽고 귀엽다. 하지만 팔십 평생을 지켜온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 같아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천번만번 옳은 얘기다. 연천 자신을 위한 애정 어린 충언이다. 연천도 생각이 조석으로 바뀐다. 일찍이 벼슬길에서 나온 강대감·최판서·김대사헌 등이 초당에 와서 부용과 여유롭게 수창을 즐기는 것을 볼 때마다 사임을 결심하지만 하루 이틀 마루다 보면 한 달을 훌쩍 넘기곤 하였다.

초당엔 시우(詩友)들로 북적인다. 연천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고 부용이 손님들이다. 부용은 낮엔 시우들의 것이고 밤이 되어야 연천의 몫이 되었다. 그런 상황이 연천은 은근히 시샘이 발동까지 되었다. 그럴 때면 벼슬길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하지만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순조(純祖·1790~1834)가 순순히 윤허를 해주지 않아서다.

초당은 시우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한양에 내로라하는 기생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부용만한 재색을 찾기 쉽지 않은 것이다. 초당의 시우들은 모두 연천의 친구들이다. 평양감사 시절 사귄 시우들로 처음엔 그들이 초당을 찾아 주는 것이 반가웠으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부용 때문이다. 낮이나 밤이나 독차지해야 되는데 육조로 출근을 하면 부용은 시우들 것이 되었다. 시우들은 연천과 비슷한 연배로 몇 해 전에 퇴임하여 말년을 즐기고 있는 이들이다. 시우들은 그렇잖아도 오갈 때가 없어 이따금씩 청루를 찾곤 하였으나 이젠 초당으로 출근하다시피 한다.

이곳에 오면 부용이 반갑게 맞아주고 겨울엔 따뜻한 차와 여름엔 시원한 차를, 어쩌다 끼니때가 되면 요기까지 해결이 되었다. 게다가 조선팔도 어느 곳에 가도 여류와 즐길 수 없는 수창까지 할 수 있으니 그들에겐 초당이 바로 동천(洞天:경치가 뛰어난 천국 같은 곳)이었다. ‘이슬 차가운 은하수에 나무 그림자도 기울었는데 / 《월명가》 노래를 누구 집에서 부르나 / 주렴을 드리고 《황정경》글자를 자세히 살피노라니 / 향 등 앞에 몇 송이 꽃이 되었다가 떨어지네.’ 《한가한 밤에 혼자 앉아서》다.

삼고초려(三顧草廬)하여 연천은 순조의 퇴임 윤허를 어렵게 얻어냈다. 천하를 얻은 기분이다. 평양감사에서 이조판서로 영전 되었을 때 보다 더 기쁘다. 이젠 자나 깨나 부용과 같이 있을 수 있어서다,. 순조는 퇴임하는 연천에게 봉조하(奉朝賀)란 새 벼슬을 제수하였다. 봉조하란 그 품계에 종신토록 녹을 주는 동시에 국가에 의식이 있을 때 조복(朝服)을 입고 참여하는 특별 예우하는 제도다.

연천이 퇴임하는 날에 초당엔 큰잔치가 벌어졌다. 마치 큰 벼슬을 하여 영전해 가는 분위기다. 부용도 연천이 이조판서로 영전할 때도 이토록 즐거워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자신이 연천에게 이젠 벼슬을 할만치 했으니 스스로 퇴임하여 여생을 즐길 것을 간청했는데 그를 받아들여 더욱 기쁜 것이다. 연천도 같은 마음이었으나 벼슬살이 재미에 빠져 있을 때 부용의 용기 있는 간청에 용기를 얻어 임금의 윤허를 얻어냈다. “대감어르신 축하드립니다.” 부용의 환한 미소가 어느 때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마침 그때는 시우들이 모두 떠나간 후다. 연천이 이때 팔십 삼세 때다. 부용은 겨우 이십오 세이다. 부용이 한창 온몸에 푸름이 넘칠 시기다. 재색으로 똘똘 뭉쳐진 부용은 매일 찾아드는 시우들에겐 더 없는 로망이 되었다. 자기네 여자로는 만들 수는 없어도 마음 놓고 눈요기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천이 퇴임을 해 초당에 버티고 있자 시우들 발길이 예전과 같지 않다. 아무래도 주인 있는 여자에게 언행이 조심스러워서일 게다.

연천은 그런 분위기가 좋다. 시우들이 와 북적거리면 자기 여자인 부용에게 자신이 되레 언행이 조심스러워졌다. 그럴 때면 부용이 시우들과 공동의 여자 같이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연천은 아예 시우들 발길이 뚝 끊어졌으면 하는 속내다.

하지만 부용의 마음은 다르다. ‘만리바람 받으며 높은 언덕에 오르니 / 들색과 산빛에 모두 이끼가 끼었네. / 내 몸이 나뭇잎처럼 가벼워 / 눈 깜짝할 사이에 흰 구름까지 날아갈까 봐 두려워라.’ 《약산동대에 올라》서다. (시옮김 허경진)

소실의 마음일 게다. 여자가 시집가서 조강지처로 아들 딸 낳고 당당하게 살아도 아쉬울 터인데 소실의 처지는 늘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반세기가 넘는 나이 차이에 자신은 기생이었다. 사내의 욕심으로 소실의 자리에 올랐다.

부용이 시문과 노래와 춤, 그리고 미모까지 지녀 사내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추었으나 조강지처가 아닌 소실의 자리다. 연천은 어느새 팔십(傘壽)을 지난 백발노인이다. 지금은 연천이 버티고 있어 호의호식하고 있으나 그가 떠나면 끈 떨어진 연 신세다.

부용은 그것이 두렵다. 잠자리도 거부하고 싶은 것이다. 씩씩거리고 기운차게 하지도 못하는 교합을 한 날엔 예외 없이 늦잠이다. 그럴 때면 부용은 고향 성천의 소꿉동무 문칠이가 눈앞을 가린다. 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몸뚱이가 그를 원하고 있다. 코를 드르렁 골고 있는 연천이 그 순간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오뉴월 버드나무 같이 쭉쭉 뻗어 나가는 여자의 욕정이다.

부용도 이따금 그러하다. 오뉴월 울퉁불퉁 자란 가을 칡뿌리 같은 억세고 뿌듯한 사내 가슴과 음부를 가득 채워주는 물건이 몸서리 쳐지도록 그리운 것이다. 하지만 연천은 그것이 하루가 다르게 멀어져 갔다. 하지 못하면 더 바래지고 멀어지면 더 아쉬운 것이 남녀관계다.

연천은 벼슬 복도 있지만 여자 복도 있다. 부용 같은 재색은 아무에게 주어지는 여자가 아니다. 손녀 뻘 되는 나이 차이에도 부용은 연천에게 모든 것을 받치고 있다. 연천의 복이다. 남존여비 조선사회에서 연천과 부용의 사이는 남녀관계를 뛰어넘는 지우(知友)의 인연일 게다.

어쩌면 연천과 부용의 관계는 여존남비(女尊男卑)의 보이지 않는 사이일지도 모르는 특수한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반세기가 넘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려는 고육지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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