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약업닷컴 홈 > 팜플러스 > 문화

<104> 김부용(金芙蓉) < 제17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05-30 09:36     최종수정 2018-05-30 15:36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새벽 종소리에 묘허가 놀란 고양이처럼 발딱 일어났다. 부용의 손을 잡은 채였다. “언니 나는 좀 더 있다 일어날게.” “그렇게 하려무나. 오느라 피곤 할텐데 오늘은 아무 말 말고 푹 쉬어라...” 네 심정 뻔하지 하는 말투다. 부용은 잠이 덜 깬 상태다. 속내를 다 드러내고 속 시원하게 말을 하고 싶어 한양에서 허위단심 달려왔는데 믿거라 한 묘허의 표정에 숯검정같이 부용의 마음이 타들어갔다.

아침 겸 점심을 먹은 뒤 부용이 묘허와 마주 앉았다. “언니~ 나 언니 곁에 있고 싶은데...” 말끝을 잇지 못한 부용이 묘허의 표정부터 살핀다. 어제 절 앞 얼음장 같은 표정이 선명하게 떠올라서다. “글쎄다. 여기가 아무나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며칠간 있으면서 네 마음을 정해도 늦지 않을 거다.” 부용은 어제보다는 훨씬 부드러워진 묘허스님의 언행에 한숨 돌리는 표정이다. 당장 한양으로 올라가라고 내칠까 걱정이 태산이었었다.

녹차향이 전례 없이 상큼하다. “네 진짜 속내를 털어 내봐! 그냥 해 본 소리가 아닌 남은 여생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속내를...”묘허의 표정이 단호하다. 아릿아릿한 여인의 모습이 아니다.

출가 십여 년에 몸에 밴 불가(佛家:문수보살)의 모습이다. “알았어요. 언니 제가 한양에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은 그냥 장난삼아 온 것이 아니에요... 저도 몇 밤 몇 달을 고심 끝에 뻐꾸기 비둘기 둥지 떠나듯 훌쩍 떠나 온 것이 아니에요!” 부용의 목소리엔 울음이 묻어있다.

두 눈에선 어느새 구슬 같은 눈물이 주르르 무릎으로 떨어졌다. “너 같은 여자는 밤마다 사내가 그리울 거야! 나도 그랬어... 사내들이 징그럽고 저주스러워 출가했는데 얼마 동안은 사내손길이 그리워 밤잠을 못 잤어. 자의든 타의든 밤마다 사내 손길이 오르내리던 몸뚱아리가 길이 들어져 있었어. 그것이 여자의 생리인가 했었어. 그것을 떨쳐 버리는 데에는 상당한 세월이 필요했었단다...” 말을 마친 묘허의 입에서 갑자기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날은 길고 산은 깊어 풀 향내 짙어 졌으니 / 봄이 가버린 길이 묘연해 찾아내지 못하겠네 / 그대에게 묻노니 이내 몸이 무엇 같던가 / 저녁 하늘 끝에 외로운 구름만 보이네’ 《늦은 봄에 동문을 나서며》다. (시옮김 허경진)

묘허의 긴 한숨에 부용은 더 불안하다. 오늘 당장 한양으로 떠나가라 할까 가슴이 두방망이질이다. 묘허스님도 부용이 빤히 쳐다보자 긴장이 되는지 마른 입술에 침을 칠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렇게 어려운 말이 아니야! 네 인생 네가 선택하는 거야. 스스로 선택했으니 끝까지 후회 말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거야!” 묘허스님은 또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리고 무언가 깊이 생각한 듯 창밖을 응시하다 손으로 모자를 벗으며 반들반들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이 머리가 스님의 상징이지 보통 여자들은 머리를 싹싹 밀지는 않지. 속세와 인연을 끊는 대표적 상징일 게야... 세상 여자들이 머리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너는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거야... ” 목탁처럼 반들반들한 머리를 가리킬 때는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 떨림은 찰나였으나 부용의 가슴은 한나절처럼 긴 시간으로 태풍같이 흔들었다. 그때다. 묘허는 하얀 종이에 붓으로 정성스럽게 쓴 시를 보여주었다. 시는 이러하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초기 불교 경전 《숫타니 파타》에 나오는 ‘연꽃’을 노래한 시다.

부용은 금방 알았다. 떠날 때 떠나도 묘허스님에게 심려를 덜 끼쳐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아침, 저녁 예불도 더 열심히 나갔다. 산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건성이었으나 차츰 분위기에 빠져들자 적극적이 되었다.

아예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하고 싶은 충동까지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하지만 묘허스님의 설득에 마음이 서서히 풀려갔다. “운초 없는 세상은 사막이야...” 란 연천대감의 말도 생생하게 귀에서 맴돌며 떠나가지 않았다.

본인이 있으면 있을수록 묘허스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연천대감에 대한 그리움은 무지갯빛처럼 피어남을 느꼈다. 묘허스님이 말한 사내 손에 길들여진 몸뚱이가 근길 거려짐을 실감나게 되었다.

산사의 여름은 노루꼬리 같이 짧다. 싱아, 금낭화, 해란초 등이 화려하게 피어나는가 하면 가을꽃들인 부용, 구절초 등이 소리치며 피어났다. 묘허스님은 해란초를 유별나게 좋아했는데 피어있는 시간이 짧아 꽃이 질 때마다 그녀는 남몰래 통곡하였다.

박모 사또가 연모하여 가을이면 해란초를 2~3일에 한 번씩 선물을 했다는 것이다. 속세를 떠나 영명사로 출가를 했는데도 옛정에 목매 짝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철따라 찾아와 넉넉한 보시(布施)를 했다는 애틋한 얘기다. 그는 평생을 묘허스님을 잊지 못하고 총각으로 늙어갔다는 사연이다.

부용은 묘허스님의 과거를 더 깊이 알기 전에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날짜만 잡으면 되는 상태다. 알만 낳아 자란 뻐꾸기가 비둘기 둥지를 떠났다가 비둘기가 되어 집을 찾아가는 심사다. 떠날 마음으로 막상 짐을 챙기려니 짐이 별로 없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니 나뭇가지를 떠나는 산새모양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볍다.

마음은 벌써 초당에 가서 연천의 품에 안겼다. 한양으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굳혀 행동이 가벼워졌다. 예불도 더 열심히 하였다. 정숙하고 진지하여 출가 십여 년이 넘는 묘허스님이 무언가 마음의 변화가 있나보다 느낄 정도다.

머리를 깎고 아예 스님의 되겠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묘허스님은 가슴이 답답하고 빡빡머리의 부용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하지만 물어볼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두 여인은 아침상을 사이에 놓고 서로 먼저 말을 해주기를 기다리는 눈치다.
기사공유   트위터   페이스북   싸이공감   구글
독자 의견남기기

독자의견쓰기   운영원칙보기

(0/500자) 로그인

리플달기

댓글   숨기기

독자의견(댓글)을 달아주세요.

뉴스홈으로    이전페이지로    맨위로

인기기사    댓글달린기사    공감기사

실시간 댓글 더보기

구인    구직   매매

사람들 interview

"다양한 경험 토대로 '심야상담약국' 자리잡을 것"

약준모 11호 공공심야약국으로 광주 소재 '소담약국' 지정

더보기

오피니언 더보기

의약정보 더보기

약업북몰    신간안내

2018년판 약사연감 (藥事年鑑)

2018년판 약사연감 (藥事年鑑)

약업계 유일한 정책자료집… 인물정보 총망라국내 약업...

이시각 주요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