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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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김부용(金芙蓉) <제18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06-06 09:36     최종수정 2018-06-11 15:10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산사의 가을이 여느 해보다 일찍 왔다. 여름의 끝자락이려니 할 때 어느새 가을은 화단을 점령하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다. 산봉우리에 있으려니 하면 골짜기에 와 있고 서둘러 준비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을 때는 산사의 정원에까지 이미 와 있었다.

여름에 온 부용도 신사를 떠날 채비를 끝냈다. 묘허스님에겐 말을 하지 않았으나 그녀도 행동으로 봐 짐작은 했으리라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이심전심이다. 묘허스님도 부용의 행동에서 한양의 연천대감 품으로 돌아갈 마음을 눈치 채고 말을 아끼고 있다. 본인이 말할 때까지 서로의 표정만 살피고 있는 상태다.

부용이 아침저녁 예불에 참여하지 않은지 벌써 사흘째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는 저녁녘이다. “언니 나 내일 한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어요.” 저녁을 먹는 자리다. 묵묵부답인 묘허다. 부용은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리라 생각했는데 뜻밖의 반응이라 의아해 한 표정이다.

침묵이 한참 흐른 뒤다. “너는 연천의 손길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예술인이라 하는 족속들의 속성이야! 황진이도 화담을 잊지 못해 하지 않았느냐? 기녀들이 기적을 떠난 뒤에도 괴로워하는 것이 뱀처럼 혀를 날름대며 주위를 맴도는 사내들의 손길이 몸서리쳐지도록 싫은데도 막상 떠난 뒤엔 그 손길이 아련히 그리워지는 자신의 이율배반적 생리에 몸부림치는 것이야... 또한 그런 것이 여자인 동시에 세상의 반을 담당하고 있는 인간의 책임이기도 하단다...” 또 한 차례 찰나적 침묵이 흐른 뒤 “아무튼 잘한 결정이다! 축하한다...” 하였다. 그런데 묘허의 두 눈에선 소나기 같은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헤어지기는 싫다는 몸부림의 징표다. 부용은 성천에서 한양으로 올라갈 때 연천이 사준 옥 목걸이를 풀러 묘허스님에게 건넸다. “언니 그동안 고마웠어요! 아침을 먹고 떠날 거예요. 이거 별거 아니지만 저 보고 싶어질 때 보세요... 언니 말대로 저는 사내 손길에 길들여진 몸뚱인가 봐... 몸은 이곳에 와 있는데 마음은 남산 초당에 가 있으니 출가를 할 수 있겠어요?” 부용의 얼굴엔 씁쓰레한 웃음기가 먹구름처럼 흘러갔다. ‘높은 다락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며 헤어지니 / 술에 취한 채로 한세상 살아 가세나 / 나무 뒤에선 매미가 가을 오기를 재촉하고 / 하늘 끝까지 이어진 풀밭에는 저녁노을이 더욱 붉어라 / 시름이 그치지 않아 잎 위에 구름이 이는데 / 헤어지는 아픔 달래지 못해 술만 따르네 / 우리네 인생 쉬 늙을게 문득 깨달아지니 / 그대 이제 가면 어떻게 지내려나’ 《금앵과 헤어지면서》다.

부용의 발길은 한양이 아닌 성천으로 향했다. 번개처럼 소꿉동무 문칠이가 보고 싶어져서다. 이제 한양으로 올라가면 다시는 성천에 올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다. 기녀 생활 때 기거했었던 집도 정리하고 수양모 상청(喪廳)에도 들리려는 것이다.

수양모가 위독하다는 서찰을 받고도 내려와 며칠 동안만이라도 수발을 했으면 마음이 덜 무거웠을 터다. 친모였으면 그러하지 않았을 것이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수양모였으니 눈을 감으면서도 그녀는 야속하고 서러워 했을 것이 뻔하다. 뒤늦었지만 상청에 들려 큰절을 하고 속죄를 빌려는 부용의 속내다.

문칠이 집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문서방! 부용이 왔네.” 문칠이는 마침 가을걷이를 하고 점심을 먹으러 들어오는 길이었다. “문서방, 나야! 부용이야. 부용이를 몰라보는 거야?” 남장을 한 부용을 문칠이는 빤히 쳐다보고 반색을 하는 표정이 아니다. 그 행색이 뭐냐는 표정이다.

문칠이는 수양모의 외가 동생으로 설매 장례를 도맡아 치뤘으며 지금은 상청까지 모시고 있다. “내 너무 늦었지? 용서해줘...” 부용이 문칠이 두 손을 잡았으나 사내 손은 뜨겁지 않다. 문칠이는 지금 홀아비다. 연천이 주선하여 결혼시킨 여자는 출산 중 사망했으며 딸도 설매의 보살핌을 받다가 돌을 넘기지 못하였다.

원망스런 문칠이의 눈초리가 부용의 아래위를 훑었다. 뜨겁고 원망스런 눈초리다. 부용이 전율을 느꼈다. 문칠이보다 세 살 위다. 당장 자빠뜨릴 자세다. 입이 굳게 닫혀 입술을 깨물며 참는 눈치다. ‘사람 더딘 강 위에는 비만 추적추적 내리는데 / 난간가에 이르니 해는 벌써 져 버렸네 / 산 빛이 어둑해서 저편 기슭을 알아보기 힘들어 / 외로운 배만 꿈속처럼 구름 속을 헤매네’ 《황강 노인을 기다리며》다. (시옮김 허경진)

가을 해는 노루꼬리처럼 짧다. 문칠이는 저녁 대신 술을 마시잔다. 문칠이 눈이 충혈 되었다. 부용에게 남자 노릇을 하고 싶은 눈치다. 부용은 사내표정을 잘 읽어 본다. 독심술 못지않은 동물적 감각으로 사내들의 마음을 꿰뚫었다. 지금 문칠이가 부용을 품으려한다. 전엔 감히 욕심을 낼 처지가 아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부용은 오십 여년이나 차이가 나는 소실이고 문칠이는 홀아비다. 밤새 여자를 품어도 새벽에 다시 물건이 일어날 칡 넝쿨 같은 청춘이다. 부용도 그 뜨거운 용광로에 뛰어들어 용해되고 싶다. 하지만 봉조하 연천의 모습이 눈앞을 막았다. “언제 올라 갈거니?” 문칠이의 혀 꼬부라진 소리다. “날이 새면 곧장 올라가야지!” “꼭 올라가야 되니?” 문칠이의 올라가지 말고 나와 살자는 간절한 눈치다.

주거니 받거니 술잔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아슬아슬하게 몸을 지킨 부용은 먼동이 트자 “내 집은 문칠이 아우가 알아서 처리해줘...” 말을 남기고 바람처럼 대문을 빠져 나갔다. 연천이 학수고대하는 한양을 향하였다.

묘허스님과 헤어질 때는 발길이 무거웠으나 문칠이를 보고 떠나는 발길은 날듯이 가볍다. 연천과 방사를 한 후 성에 안차 비몽사몽에 나타났던 문칠이까지 보고 떠나니 몸이 바람처럼 날렵하다.

게다가 밤새 술까지 대작해 줬으니 마음까지 후련해졌다. 고향 성천을 깨끗이 정리하고 연천에게만 몸과 마음을 받쳐야겠다고 생각하니 하루라도 빨리 남산 초당에 가야한다는 발길이 깃털처럼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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