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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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김부용(金芙蓉) <제19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06-13 09:36     최종수정 2018-06-13 10:45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초당은 태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모양 을씨년스런 분위기다. 부용이 뻐꾸기 모양 훌쩍 떠난 뒤로 시우들마저 발길이 뚝 끊어져 연천은 즐기던 아침 산책도 중단하였다. 부용이 있을 때는 쌩쌩 돌아가던 집안이 삐걱거리다 아예 멈춰버린 상태다. 화단엔 여름 꽃들이 일찍 내린 서리에 축축 쳐졌으며 연못의 금붕어들도 몇몇 마리는 시체로 둥둥 떠 있다.

연천은 평양감사를 통해 부용의 동태를 손금 보듯 보고 있다. 부용이 대문을 나서자 나귀가 기다리고 있었다. 문칠이는 내다보지도 않는다. 밤새 술을 마시고도 꼿꼿이 앉아 부용을 잡아먹을 듯이 뜨거운 눈초리를 한 번도 거두지 않았다. 부용의 몸이 몽땅 타들어갈 듯한 뜨거운 눈초리였다.

“초당마님! 성천대감이 보낸 나귀입니다. 이것을 타시고 한양으로 올라가시랍니다...” 성천 예방아전이 깍듯한 예의를 갖추며 연천의 서찰을 내밀었다. ‘운초 보시게! 이 서찰을 받는 즉시 한양으로 오시게. 운초 없는 세상은 태양이 없는 캄캄한 세상이야...’ 서찰을 읽은 부용은 나귀에 올라 바람처럼 한양을 향하였다.

사흘 만에 초당에 닿았다. 어둠이 깔리는 저녁이다. 연천이 문밖에서 서성이다 부용을 반색 하며 맞았다. 밤마다 꿈속에서 부용을 만났는데 어젯밤엔 화촉동방을 치렀다. 연천은 부용을 보자 나귀에서 번쩍 들어 아이를 품듯 품어 안으로 들어갔다.

잠겼던 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부용이 떠날 때 모습 그대로다. “부용아, 그래 여행은 잘 다녀왔느냐? 여행을 하고 싶으면 나하고 같이 가면 좋겠느니라! 이제 나도 백수가 됐으니까 눈치 볼 것도 없이 삼천리금수강산을 쉬엄쉬엄 다닐 수 있단다. 앞으론 그렇게 해줄 수 있겠느냐?” 부용은 불호령이 떨어지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 텐데 연천의 뜻밖의 말에 가슴이 먹먹해 옴을 느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잠시 일망정 욕망의 갈증에 눈이 어두워 문칠이를 찾아 갔었던 자신이 너무 치졸하게 생각되었다. 부용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무슨 말이라도 해야만 했다. “아니옵니다. 대감어른! 천첩이 행복에 겨워 엉뚱한 생각을 잠시 가졌었습니다. 천첩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려주시옵소서...” 부용은 연천대감의 발부리에 납작 엎드려 울면서 호소하였다. ‘해가 길어 꾀꼴 새는 살구 그늘에서 지저귀는데 / 미인은 수놓은 발 깊숙이 고즈넉이 앉았구나 / 끝없는 버드나무에 봄바람을 가져다가 / 백년의 굳은 마음을 가지마다 맺고파라/ 《평양기생 백년춘에게》다.

사실 열길 물속은 알 수 있어도 한길사람 속은 알 수 없다 하였다. 사반세기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매일 화촉동방 같은 사랑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생리적인 차이도 있을 수 있고 생각의 차이도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연천의 하해(河海)같은 이해력으로 부용을 사랑을 뛰어넘는 지우(知友)로 생각한다 해도 남과녀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소위 질투란 것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사랑이 없으면 몰라도 뜨거운 살을 섞는 관계엔 필연적으로 보이지 않는 질투란 안개가 존재한다.

연천과 부용 관계도 그런 경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부용이 연천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집을 나가 서너 달을 지내다 돌아왔다. 외간 남자와 바람이 나 나갔다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연천으로선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나이 많은 연천은 별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잠자리가 성에 안차서 그랬는지 아니면 한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재색을 갖춘 부용이 할아버지 같은 사내와 살을 섞고 있어 창피하여 뛰쳐나갔나 등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을 터다.

지금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연천은 부용의 싱싱하고 뜨거운 살에 늙어 서러운 마음과 몸을 회춘시키려 안간힘이다. 연천은 부용이 평양 영명사에 있을 때 그녀가 참여하여 수창을 즐겼던 삼호정시단(三湖亭詩壇) 멤버(김금원·박죽서·김경산·김경춘) 들을 일일이 만나 보았다. 그녀들도 부용의 동태에 대해 모르고 있다. 더욱이 부용은 그녀들과 십여 년이나 위였으니 시와 처지가 같아 어울리긴 했어도 마음을 툭 터놓고 내밀한 얘기는 주고받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부용은 연천의 따뜻하고 넉넉한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맑은 강물이 곱게 모여서 거울처럼 단장하고 / 산은 쪽진 머리에다 풀밭은 치마 같아라 / 헤어지는 나루에는 수 없는 새들이 날아와 나래치고 / 꽃 덮힌 물가에선 이름 모를 향내가 나네 / 소나무 창가로 달빛이 스며들어 이불이 엷은데 / 오동잎 바람에 흔들리자 이슬 더욱 반짝이네 / 봄 제비와 가을 기러기가 모두 약속을 지키니 / 미리부터 슬퍼하며 애태울 필요가 없네’ 《삼호정에서 저녁에 바라보며》다. (시옮김 허경진)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 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 했듯이 늘 가까이 있으면 고맙고 귀한 존재인 줄 모른다. 부용도 연천의 존재를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용은 목탁처럼 머리를 빡빡 깎고 출가를 심각하게 생각하기까지 했었다. 마음이란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온다 해도 전 같지 않다. 상처를 치유해도 흔적이 남듯 떠났던 마음엔 보일 듯 말 듯 쓰린 앙금이 남는다.

연천은 제자리로 돌아온 부용에게 눈물겨운 정성을 들인다. “올 가을엔 나와 같이 여행을 떠나자.” 감로주 몇 잔에 연천의 얼굴이 연산홍 빛깔이다. 흰 머리에 상기된 얼굴이 선인(仙人)처럼 보였다.

부용은 잠시 방정맞은 생각으로 영명사까지 갔다 온 자신이 죽고 싶도록 부끄러웠다. “천첩 오늘따라 피곤하여 일찍 자리에 들어야겠사옵니다.” 속곳 속에 풍만한 엉덩이가 연천의 뜨거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직 자시(子時)도 안됐는데 램프불이 꺼졌다. 평소 같으면 술기운에 수창을 즐겼을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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