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약업닷컴 홈 > 팜플러스 > 문화

<108> 김부용(金芙蓉) <제21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06-27 09:36     최종수정 2018-06-27 10:12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밤낮 없는 극진한 간병에도 연천의 병세는 별 효험이 없다. 순조대왕과 사돈관계로 조선팔도의 명의가 조제한 명약을 복용해도 뚜렷한 회복세가 보이지 않는다. 하루하루가 부용은 촉각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하루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연천의 건강이 회복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가기 때문이다.

정원의 오동나무는 바람이 불때마다 어느새 낙엽을 후드득후드득 떨어뜨리고 있다. 부용은 연천의 그림자 같이 머리맡에 앉아 수족처럼 움직였다. 그러길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여름과 가을의 경계 절기다. 늦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기세도 밀려오는 가을바람엔 맥없이 물러섰다. 아침저녁엔 제법 쌀쌀하다.

더위와 싸우던 연천의 병세도 시월 들어 호전기미를 보였다. 미라처럼 미동도 않았던 손을 내밀어 부용의 두 손을 잡기도 하였다. 촉촉이 물기어린 눈도 떠 부용과 눈인사까지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부용아 미안하구나! 내가 너를 데려오지 않았던들 젊은 옥골선풍의 사대부들이 줄을 섰을 텐데... 너의 행복을 내가 가로막았구나!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너의 행복을 찾아 떠나거라...” 연천의 두 눈에서 샘에서 샘이 솟듯 쉼 없이 흘러 베개로 떨어졌다.

갑작스런 상황이다. 선선한 바람과 함께 가을의 문턱에 접어들자 부용은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저승사자 앞에 가기 직전엔 누구나 잠시 제정신으로 돌아온다는 말이 번개처럼 떠올라서다. “대감마님, 그 당치도 않는 분부 당장 거두어 주시옵소서! 천첩은 대감을 만나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누려보지 못 할 부귀와 영화를 누렸사옵니다... 이제 더 무엇을 바라겠나이까?” 부용은 연천의 두 손을 꼭 잡았다. ‘한평생 신세가 기러기 떼 갈리듯 했는데 / 남포의 뱃노래를 어찌 들을 수 있으랴 / 하루 찼다가 비는 것을 옛 나루에서 보았고 / 백년의 걱정과 즐거움은 진군에게서 들었네 / 산 위에는 해 돋아 붉은 햇무리가 둘렸는데 / 바다 기운이 공중에 떠 푸른 구름이 맺혀졌는데 / 저녁 되며 서늘해지기에 자리 떨고 일어섰더니 / 주렵에 성긴 달빛이 어지럽게 부서지네 / 푸른 물 흰 모래에 달빛까지 더욱 좋은데 / 온 강의 낚시꾼들 노래를 부르네 / 가련해라 저 뱃사람들은 이익만을 중히 여기니 / 꿈속에 집 생각이야 저들이 어찌 알랴 / 달빛이 흐릿해서 모래밭 끝을  모르겠네 / 은포가 응당 한강수에 이어지겠지 / 한가락 맑은 퉁소 소리에 사방을 둘러보니 / 어딘지 모를 곳으로 목란배가 떠나가네’ 《오강루에서 1·23》이다.

부용이 그랬을 것이다. 서서히 꺼져가는 연천의 생명력을 보면서 목란배가 떠나가듯 자신에게서 시시각각으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불안할 것이다. 반세기의 나이 차이에도 세찬 세상의 시름들이 파고 들어오지 못하게 뜨거운 오뉴월 태양처럼 비추어 주었으나 부용에겐 성에 차지 않았을 게다.

세대 차이는 누구도 대신 채워줄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재화(財貨)같은 것이 아니다. 용광로 같이 뜨거워져야 할 잠자리에서 어설프게 방사를 즐기고 새벽까지 코 골며 부용을 내버려 둘 때 여자는 젊은 문칠이를 문득문득 떠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욕망이 이성의 판단을 앞지를 때가 있다. 잠자리에서가 대표적이다. 소위 베개 및 송사가 전형적 욕망의 송사다. 사내는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코맹맹이 소리에 오금을 조여 오면 속수무책으로 무장해제 된다. 여자들은 그런 사내들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적절할 때 필요에 따라 전술과 전략으로 사용한다.

부용도 연천과의 잠자리에서 그런 경우가 수도 없이 발칙한 판단을 했을 터인데 혀를 깨물며 물리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도 여자여서 영명사를 찾아가 속세를 아예 떠날 생각까지 가졌었다.

지금 부용은 온기가 서서히 떨어져 가는 연천의 손을 잡고 영명사의 묘허스님의 말을 되새긴다. ‘연천대감을 배반하면 안 되느니라...‘ 부용은 연천의 손에 힘을 넣었다. ’풍류와 기개는 산수의 주인이시고 / 경술(經術)과 문장은 재상이 될 재목이셨지 / 십 오년 살아오다가 오늘 눈물 흘리니 / 높고 넓은 덕 한번 끊어지면 누가 다시 이으랴...‘ 《십오 년 정든 임을 여의고》다. (시옮김 허경진)

여자팔자 뒤웅박 팔자라 했다던가! 부용도 연천이 이승과 점점 멀어져 가자 여생을 생각했을 것이다. 북촌 본가에선 계륵같이 생각하니 이제 갓 삼십을 넘어 한창 난숙한 부용은 앞이 캄캄할 게다. 연천의 여자란 대자보 같은 이름이 붙어 재취도 엄두를 낼 형편이 아니다.

부용은 이제 초당마님도 연천의 소실도 아닌 끈 떨어진 연이나 다름이 아닌 신세가 될 처지다. 바람 부는 대로 떠 다녀야 하는 주인 없는 나룻배가 되어 질 운명의 찰나다. 사람의 마음은 더욱이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 했듯이 연천의 손의 온기가 점차 식어가자 부용의 마음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가는 사람은 가고 산 사람은 또 살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 성천의 문칠이가 “삼년을 기다릴 것이다.”라고 물기 어린 음성으로 애타는 마음을 호소했었던 장면이 부용의 눈앞을 가렸다. 하지만 부용은 입술을 깨물며 지우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리라 다짐하였다. 만약 연천이 조상의 묘에 동반하여 정경부인 반열에 올려주지 않았던들 지금과 같은 결정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부용도 여자이기 때문이다. 부용은 황진이(黃眞伊:1511~1551)·이매창(李梅窓:1573~1610)과 함께 조선의 3대 여류시인으로 역사에 창연하다. 작품으론 《운초집(雲楚集)》·《조선역대여류문집(朝鮮歷代女流文集》 등이 있다. 김부용의 트리오 여류시인은 한국의 여류문학사에 영원히 창작의 에너지원이 되어 역사의 꽃을 피울 것이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이 탄생시킨 꽃 중의 꽃이다. 황진이·이매창·김부용 만이 시를 쓴 것은 아니다. 그녀들이 소위 노류장화라 하여 천대하면서도 사대부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빛과 그림자 같은 존재로서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작품을 남겼다는데 의미가 있다. 위대한 문화예술은 그렇게 혹독한 대가를 지불해야 탄생이 가능한가 보다.
기사공유   트위터   페이스북   싸이공감   구글
독자 의견남기기

독자의견쓰기   운영원칙보기

(0/500자) 로그인

리플달기

댓글   숨기기

독자의견(댓글)을 달아주세요.

뉴스홈으로    이전페이지로    맨위로

Solution Med Story
블랙모어스 - 피쉬 오일
한풍제약- 굿모닝에스과립

인기기사    댓글달린기사    공감기사

실시간 댓글 더보기

구인    구직   매매

사람들 interview

"'범부처 재단지원사업'으로 기업 접근성 높인다"

내년부터 부처별 시설 아닌 기업중심으로 변환…복지부 ...

더보기

오피니언 더보기

의약정보 더보기

약업북몰    신간안내

질환별로 본 건강기능식품학

질환별로 본 건강기능식품학

개국가에서 환자를 케어 할때 쉽게 설명 할 수 있도록 ...

이시각 주요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