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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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송덕봉(宋德峰) <제4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07-25 09:36     최종수정 2018-07-25 10:10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조선 여인들의 삶은 남자의 운명에 좌우되었다. 남편이 높은 벼슬에 나가면 부인도 덩달아 신분이 높아졌다. 여자들은 대부인, 정경부인, 숙인, 영인, 유인(孺人) 등으로 나뉘었다. 자신이 만드는 신분이 아닌 남편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는 신분이다.

남편의 그림자다. 그림자는 상대가 없어지면 자취를 감추었다 다시 나타나면 그림자로 다시 모습을 보인다. 덕봉도 미암의 그림자다. 덕봉은 자신이 그림자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간절하여 꿈에서 임금을 만났다. 그런데 요즘엔 임금이 부쩍 자주 꿈에 나타났다.

덕봉의 공적사회에 대한 열망이 강해질수록 임금이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그럴 즈음 미암이 한양으로 올라가 그림자(덕봉)도 따라갔다. 1569년 어느 여름날이다. 임금이 종묘제례를 올리기 위해 나온 모습을 구경하려고 새벽부터 나와 덕봉도 화려한 행차를 신비롭게 살폈다.

덕봉 뿐이 아니다. 아낙네들과 노인들이 양쪽 길가에 인산인해다. 구경거리가 별로 없던 세상이기도 하지만 신비에 싸인 나라님을 직접 볼 수 있어 임금이 종묘제례를 올리려 행차한다는 소식이 저잣거리에 퍼지면 아침부터 노인·아이들·아낙네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길이 막혀 나랏님의 행차가 멈추는 경우도 종종 일어났다.

인산인해 인파에 덕봉도 끼었다. 당시 임금은 선조대왕이다. 미암은 문정왕후가 섭정할 때 유배생활을 하였다. 어린 명종(明宗:재위 1545~1567)이 즉위하고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자 그녀의 동생 윤원형이 세상 무서운지 모르고 비 맞은 중처럼 날뛰었다.

세도정치다. 명종이 겨우 열 살에 보위에 올랐다. 제 아무리 영민하고 일찍 철이 들어 제왕학을 배웠다 해도 열 살은 아이다. 자연스럽게 어머니 문정왕후의 섭정이 시작되었다. 윤원형은 왕후의 동생이다. 오누이가 삼천리금수강산 조선팔도의 호령자다.

실세다. 온통 파평 윤씨의 천하다. 문정왕후 윤씨는 중종의 세 번째 비로 장경왕후 윤씨 오빠 윤임에 의해 왕비 자리에 올랐다. 권력의 중심이었던 윤임이 윤지임의 딸(문정왕후)을 중전으로 밀었다.

윤임은 대윤(大尹)의 영수다. 중종의 세 번째 계비 문정왕후 윤씨 외척이 윤원형을 중심으로 소윤(小尹)이다. 두 집안은 파평 윤씨로 대윤·소윤으로 갈려 권력에 눈이 어두워 원수지간이 되었다. 국모에 오른 문정왕후의 치맛바람이 조선팔도를 휩쓰는 작태가 버젓이 일어났다.

이 광풍에 애꿎은 미암이 희생양이 되었다. 명종 2년(1547년 9월) 양재역 벽서사건이 그것이다. 정언각에 의해 경기도 과천 양재역 벽 위에 ‘위로는 여주(문정왕후), 아래로는 윤원형·간신 이기 등이 권력을 휘두르니 나라가 망할 것’이란 왕에게 아뢴 벽서다.

이 ‘양재역 벽서’에 미암이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고향(담양)이 가깝다는 이유로 함경도 종성으로 이배시켰다. 미암은 을사사화(乙巳士禍)때 파직되어 21년 만에 복직되었다.

명종때 파직되어 선조가 즉위하여 복직되었으니 한 왕위시대가 흐른 후다. 을사사화는 파평윤씨 집안의 권력싸움이다. 윤임을 대표로 하는 대윤과 윤원형을 영수로 뭉친 소윤의 권력다툼이 빚은 참사다.

윤원형은 요부 정난정의 남편이기도 하다. 정난정은 노비로 출생하여 기녀생활을 거쳐 정경부인까지 오른 희대의 요부다. 역시 미모가 무기였다. 예나 지금이나 미에 약한 것이 사내다. 역사의 뒤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다.

경국지색의 미모다. 문정왕후는 동생 윤원형과 요부 정난정 부부를 앞세워 권력의 광풍을 일으켰다. 화무십일홍이다. 윤비(尹妃)는 사직의 죄인이라고 할만하다. 《서경》(書經)목서(牧誓)엔 ‘암탉이 새벽에 우는 것은 집안의 다함이다.’ 하였으니 윤씨를 이르는 말이라 하겠다. 《명종실록》의 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선 더 혹독한 평가를 받은 윤씨다. 유교국가에서 보우스님을 봉은사 주지로 임명하여 불교 중흥정책을 편 문정왕후에 대한 역사적 갈등인 대목이다.

이 질곡의 세월에서 벗어나 미암은 한양으로 올라왔다. 덕봉을 비롯한 가족 전체가 상경한 것이다. 덕봉은 꿈에도 그리던 서울이다.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부부애가 더해갔다. 제2의 신혼생활이다. “여보 당신 요즘엔 옥경아를 멀리 하는 것 같네요?” 덕봉의 질투 섞인 목소리다. 미암이 한양에 올라와선 사흘도리로 욕심을 채워 기쁘기도 하지만 몸이 고달프다.

어느새 불혹을 넘어 지천명(知天命·50세)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가 되었다. 곱디고운 피부도 쳐지기 시작하고 눈도 예전 같지 않다. 그런데 미암이 회춘이 되었는지 여자 욕심을 부리고 있다.

마지막 불꽃이 더 뜨겁다. 가뭄에 콩 나듯 화촉동방을 차렸었는데 긴 유배생활을 끝내고 다시 복직되자 새로운 힘이 솟는지 조강지처에 뜨겁게 다가갔다. 덕봉도 싫지 않다.

꺼져가는 불에 기름을 붓듯 다시 불꽃이 화려하게 솟았다. 모닥불을 보고 부나비가 날아들 듯이 마지막 불꽃인 냥 뜨겁고 장엄하다. 미암은 긴 유배생활에서 그리워했었던 조강지처의 은근과 끈기의 사랑을 한꺼번에 만끽 하려는 듯이 지각을 뚫고 터져 나오는 용암처럼 뜨겁고 처절하게 몸부림 쳤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그림자가 생기듯이 덕봉의 몸부림이 요철(凹凸)인 냥 움직여졌다. 담양에서의 밤과 서울의 밤은 그렇게 두드러지게 달랐다. 16살의 처녀와 24살의 총각으로 돌아간 미암과 덕봉의 티 없는 사랑의 밤은 동창이 밝아 오는지도 모르는 제2의 밀월은 세월의 무게를 뛰어넘고 있었다.

부부애가 뜨겁고 열정적이자 덕봉의 한양에 대한 호기심과 꿈에서 만났던 헌헌장부 임금을 종묘제례 행렬에서 보자 펴지 못한 야망은 더욱 커져만 갔다. 하지만 덕봉의 야망은 거기까지였다.

야망은 야망의 자리에 있어야 아름답고 위대하기까지 하다. 현실로 구체화 될 때는 야망의 모습대로 현실화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남녀칠세부동석의 조선사회에선 더욱 그러하다. 덕봉의 야망은 화려한 문화예술로 승화되어 더욱 아름답고 위대한 삶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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