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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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자동선(紫洞仙) <제1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10-10 09:36     최종수정 2018-10-10 10:53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명(明)나라 사신 장녕(張寧)이 자동선(紫洞仙)을 보자 짐짓 놀란다.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눈치다. 자동선의 아름다움에 놀란 자신의 눈이 뭣을 잘못 봤나 의심이 났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미인으로 생각한 여인은 양귀비·초선·왕소군·서시 등 4대 미인을 말하는데 조선에서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한 자동선을 보고는 그만 생각이 바뀌었다.

동이족(東夷族)은 노래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미인까지 있어 그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장녕은 명의 황제(英宗)의 명을 받고 조선에 왔다 임무를 마치고 송도(松都·현 개성)에 들려 중국에까지 천하제일의 명기(名妓)로 소문이 난 자동선을 보고 가려던 길이다. 중국 사신들이 조선에 오면 소문으로만 듣던 자동선을 보고 가야 귀국해서 친구들과 만나게 되면 조선에 갔다 왔다는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털어놓았다.

지금(세종20년) 장녕은 자동선 앞에 앉았다. 장녕은 긴 호흡을 가다듬었다. 개성 유수(유병림 가명)에게 사신으로 오기 전에 청을 넣어 오늘 극적으로 자동선을 만나게 되었다. 조선의 사신에 임명될 것이란 소문을 듣고 미리 서신을 보낸 결과다.

그런데 장녕이 긴장하고 있다. 개성 유수 유병림에게 자동선에 대해 정보를 미리 입수하였다. 자동선은 가무에 뛰어나고 시와 서예까지 탁월하여 웬만해선 수청을 받기 어렵다는 얘기다.

지금 자동선과 거리는 술상이 전부다. 팔을 벌려 안으려면 충분한 거리다. 중국에서 소위 한량으로 회자되는 그가 자동선 앞에서 긴장한 얼굴로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답지 않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 속내(잠자리)가 드러날까 우려에서다.

장녕은 여자를 만나면 꼭 잠자리를 성사시켰다. 그런데 지금 자동선을 품을 수 있을까 벌써부터 불안하다. 만약 잠자리를 성사 시키지 못하고 돌아가면 친구들은 사정은 모르고 물건을 잘라버리라고 핀잔을 퍼부을 것이 뻔해서다. “대인군자(大人君子)께서는 뭣을 그토록 골똘한 생각에 빠져 계신지요? 술도 별로 안 드시고 어디가 편치 않으신가요?” 자동선이 거문고 음률에 맞춰 한바탕 춤을 추고 술상 맞은편에 앉으며 말을 꺼냈다.

자동선은 장녕에게 어떻게든 술을 많이 마시게 하려한다. 그래야 잠자리에 들더라도 사내구실을 못할 만큼 먹여야 수청을 피할 수 있고 인사불성이 되면 대리기생을 넣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장녕이 두서너 잔을 연거푸 마신 후론 술잔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할 뿐 시원스럽게 마시지 않고 있다. “대인군자께선 소저가 마음에 안 드신 모양이죠? 딴 아이를 부를까요?” 자동선이 춤을 추고 나서 목이 탔던지 태상주(太常酒:개성명주)를 단숨에 한 잔을 들이켜고 말을 다시 건넸다. “아니다. 아니야. 너의 자색(姿色)에 취해 내가 지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느니라!” “호호호! 대인군자께선 농담도 잘하시네요! 이 자동선이 눈치 없어도 사내들의 마음을 대충 읽을 줄 압니다... 어서 마음 놓으시고 마시고 즐기세요! 소저가 시(詩) 한 편을 낭송해 드리겠습니다. 대인군자께선 시를 좋아하실 것 같네요?” ‘봄도 다 가는데 왜 이리 못 견디게 고향이 그리운가 / 몸져누우니 긴 머리 빗는 것이 원수로다. / 대들보의 제비는 종일 무어라 지저귀는데 / 장미향기 미풍타고 방안으로 스민다.’ 이청조(李淸照:1084~1155)의 《춘잔》(春殘)이다.

장녕은 이청조의 《춘잔》을 듣고는 더욱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어떻게 우리나라 여류시인 이청조를 아느냐?” 말을 마친 장녕은 술상을 발길로 걷어차 밀어내고 자동선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는 손을 자동선의 허리 밑으로가 속곳 속으로 들어갔다. “대인군자께선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대인군자면 대인답게 행동을 하셔야지요!” 서릿발 같은 자동선의 말에 전광석화 같았던 장녕의 행동이 고목(枯木)처럼 멈추었다.

사십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장녕이 조선기생 자동선의 말에 기가 질린 것이다. 이청조는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여류시인(訶)인데 조선의 기생이 그녀의 시까지 암송하고 있어 자신이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국격에 손상이 갈까 사신으로서 걱정이 앞섰다.

바로 그때다. “대인군자 어른! 조선은 동방예의지국입니다. 아무리 초면의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눈다고 해도 예의는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요? 술기운에 넘치는 욕정에 교합을 하면 개·돼지나 다를 바가 없지요! 소저는 비록 기녀지만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내친김에 설도(薛濤·768~832) 선배의 시까지 낭송해 드릴게요. 그리고 격식을 차려 방사(房事)를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말을 마친 자동선은 《봄날 들판에서 구경하며 놀다가 손처사께 부치다.》를 낭랑한 목소리로 낭송하기 시작하였다. ‘고개 숙여 오랫동안 서 있었죠. 장미 향해서요. / 사랑은 영릉 땅 향초 닮아 옷을 물들이네요. /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벽계의 손처사님 / 백로는 동쪽으로 가고 제비는 서쪽으로 나네요. / 오늘 아침에 눈 닿는 대로 화초를 감상하는데요. / 꽃무늬 비단치마 수놓은 융단이어요. / 소매가득 머리가득 손을 아울러 쥐고서 / 사람들이 알게 하지요. 꽃보고 돌아가는 것을요...‘ 자동선이 시를 낭송하는 사이에 장녕은 술을 자작하여 연거푸 마셨다.

자동선이 시를 다 낭송할 때엔 장녕은 고주망태가 되었다. 자동선이 바라던 대로다. “대인군자님 이제 그만 드시고 잠자리로 드시죠...” 향초향이 은은히 풍기고 원앙 한 쌍이 수놓아진 비단이불이 깔려져 있으며 붉은 연산홍 빛의 촛불까지 일렁이어 신비하기 까지 한 분위기다.

이제 자동선은 장녕의 품안에 들어간 여자가 되었다. 장녕은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이불 위에 벌러덩 누우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대인군자 어른, 소저 화장실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자동선은 바람처럼 방을 빠져 나갔다. 자동선이 나오자 대기하고 있었던 퇴기 제일청이 잽싸게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불을 껐다. 고주망태가 된 장녕은 능수능란한 잠자리 기술에 능한 제일청과 만리장성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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