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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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자동선(紫洞仙) <제13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9-01-02 09:36     최종수정 2019-01-03 13:12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영천군과 사가정의 걸음이 빠르다. 사가정이 앞장을 섰다. 조선팔도를 제집 정원처럼 드나들었던 사가정의 발길에 영천군은 벅차다. “이 사람아, 천천히 가시게! 내가 숨이 차서 따라갈 수가 없네...” “자동선을 한시라도 빨리 보시려면 더 빨리 걸으셔야 하지요...” “아 참! 우리가 타고 왔던 말은 어찌하였소?” “네 나으리, 목단춘에게 맡기어 며칠 잘 먹이라 했나이다.” “그거 참 잘했소이다. 그런데 제일청한테 안내하라 했으면 좋을 뻔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아니 될 말씀입니다. 사내 둘이 가서 아무렴 조선제일의 미녀라 해도 설득을 못하겠는지요?” 두 사내가 얘기를 주고받으며 오는 사이에 어느새 멀리서나마 자동선의 집이 보였다.

영천군은 자동선의 집만 보아도 자동선을 본 듯 가슴이 뛰었다. 이젠 영천군이 앞에 서서 뛰다시피 한다. 숨이 차서 천천히 가자던 영천군이 자동선의 집을 보니 힘이 저절로 솟는지 사가정(四佳亭·서거정 호)을 제치고 앞에서 총총 걸음으로 달린다. “천천히 가시죠. 영천군 나으리...” 하지만 영천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동선의 집을 향해 젖먹이가 어미를 보고 본능적으로 달려가듯 줄달음을 쳤다.

사실 영천군은 사가정 보다 힘이 좋다. 허우대도 좋을 뿐만이 아니라 왕손의 후예답게 옥골선풍에 헌헌장부다. 사가정도 어디에 나가도 빠지지 않는다. 풍부한 학식에 넘치는 해학과 풍류에 여자들이 한번 보면 그 넓은 품에 안기고 싶어 안달하는 호남아다.

지금 그들이 자동선을 보러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어 뛰듯 걷는다. “게 누구 없느냐?” 영천군이 우렁찬 목소리로 주인을 찾았다. 몇 번을 소리 높여 주인을 찾았으나 안에서는 아무소식이 없다. “게 아무도 없느냐?” 이번에 사가정이 대나무로 촘촘히 만든 대문을 발길로 차면서 외쳤다.

그때서야 “게 누구기에 남의 집 대문을 발길로 차며 법석을 떠시오?”라며 열 서넛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얼굴을 삐죽이 내밀었다. “여기가 자동선의 집이더냐?” 영천군이 숨 가쁘게 물었다. “그렇소만 댁은 누구시오?” 당돌한 소녀의 대꾸다. “우리는 한양에서 온 영천군과 사가정인데 자동선을 보러 왔느니라.” “아-예, 그런데 자동선 아씨께선 지금 집에 안계십니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셨다 다시 오셔야합니다. 우리 아씨께선 예약을 하지 않으시면 만나지 않으십니다. 더욱이 지금 아씨께선 산책중이십니다...” “우리가 들어가서 기다리면 아니 되겠느냐?” “그것은 아니 될 말씀입니다. 아씨가 안 계실 땐 절대로 남자를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시게 하십니다. 어서 돌아가셔서 내일 오시면 소녀가 아씨한테 말씀드려 놓겠습니다.” 말을 마친 소녀는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두 사내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 별수 없이 다시 제일청 집으로 갔다. 다시 술판이 대낮부터 벌어졌다. 대취했던 두 사내는 새벽녘에 깨어났다. 그들은 집 뒤 실개천으로 가 세수를 하고 목이 타 실컷 물을 마시고 방으로 들어와 떠날 채비를 하였다.

그때다. “벌써 떠나시려고요? 그렇게는 아니 되옵니다. 이 제일청에 와서 술국을 안 드시고 가시는 손님은 없습니다. 소첩이 일찌감치 술국을 끓여 놨으니 시원하게 드시고 가세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술국과 기장이 섞인 밥도 함께 차려졌다. ‘여섯 골이 망망한 채 산과 바다가 가려 / 올라가기 어려운 곳이라고 들었더니 / 이제사 와 보니 뜬소문은 잘못이라 / 티끌세상과 몇 걸음 사이 밖에 아니네’ 고려시인 최집균(崔執均)의 무제(無題)다.

두 사내는 다시 자동선 집에 닿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내가 동시에 ‘게 누구 없느냐?“라고 집주인을 찾았다. 네댓 번을 부르자 선녀로 보이는 여자가 나타났다. 자동선이다. ”어서 들어오시죠. 어제 오셨던 한양에서 오신 손님이 아니신지요? 어제는 소첩이 뒷산으로 산보를 하면서 시(詩) 공부하느라 결례를 했사오니 널리 양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똑 떨어지는 말투다.

자동선은 두 사내를 아랫목에 앉히고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소녀 자동선이라 하옵니다. 먼 한양에서 미천한 소녀를 보러 이곳까지 오신데 대해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그래. 네가 진정 자동선이냐? 이 분은 효령대군 다섯 번째 아드님인 영천군이시고 나는 사가정이라 하느니라...” “어머 소첩이 평소 존경했던 두 분을 제 집에서 뵙다니 꿈만 같사옵니다. 앵두(동기 가명)야! 술상을 어서 봐 오너라!” 앵두는 준비했던 술상을 자동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들고 들어왔다. “이 술은 소첩이 담은 자동선주(紫洞仙酒)입니다. 담근 지 3년차로 독하오니 천천히 조금씩 드세요!” 두 사내를 술상 맞은편에 앉히고 자동선은 술을 연거푸 따랐다.

사가정은 술에 취하고 영천군은 자동선의 아름다움에 포로가 되었다. “자동선아, 이 자하동에 숨은 얘기가 있을 듯하다. 네 이름도 거기에 연유가 있는 것이 아니더냐?” “역시 풍류객 사가정 어른이셔? 그러하옵니다. 고려 때 대학자 채홍철(蔡洪哲) 어른께서 자하동에 정자 중화당(中和堂)을 짓고 국가 원로들을 모셔 기영회(耆英會)를 열었는데 어느 날 자하선인이 나타나 원로들에게 헌수 술잔을 올리며 《자하동곡》을 부르셨다 하옵니다.” “그래? 자동선 너는 역사에도 높은 지식을 갖고 있구나! 그 선인이 불렀다는 《자하동곡》을 불러 줄 수 있겠느냐?” “그러하옵니다.《자하동곡》은 현재 악부(樂府)에 가사가 전해오는 것을 소녀가 잘은 못 부르나 불러 보겠나이다.” 낭랑한 목소리에 영천군은 아랫도리가 팽창됨을 느꼈다. ‘집은 송악산 자하동에 있어서 / 안개구름이 중화당에 잇달았네! / 오늘 기영회 기쁜 모임 있다기에 / 몸소 찾아와 연수배를 올리노라’ 노래보다 술에 더 마음을 두는 사가정도 자동선의 노래에 가슴이 흔들렸다.

두 사내는 동시에 탄복하였다. 그러하면서도 서로 다른 여인을 떠올렸다. 연천군은 《자하동곡》을 부른 자동선과 열락의 장면을 생각했으며 사가정은 제일청과 주지육림의 꿈같은 과거를 회상하였다. 어느새 밤이 깊었다. “두 나으리께선 밤이 깊었는데 술만 드시면 어떡하죠? 객사로 가실 채비를 하셔야지요!” 영천군은 가슴이 철렁 떨어졌다. 객사로 가라니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두 사내는 자동선 집에서 나와 객사로 발길을 옮겼다. 통음한 술도 번쩍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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