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약업닷컴 홈 > 팜플러스 > 문화

<134> 자동선(紫洞仙) <제14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9-01-09 09:36     최종수정 2019-01-09 09:48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객사(客舍)로 돌아온 두 사내는 새벽녘이 되어도 잠을 못 이룬다. 영천군이 더 심하다. 사가정은 먼 산사에서 새벽종이 울리자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영천군은 아직도 뜬눈인 채다. 자동선이 눈앞에서 어른거려서다. 마음 같아서는 팔을 뻗어 와락 껴안아 내 여자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으나 사나이 체면 때문에 참고 또 참았던 것이다.

그것이 아쉬웠다. 참기는 왜 참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밤을 꼬박 새면서 후회할 것을 하는 생각에 이젠 눈이 뻑뻑하고 자신이 미워졌다. 천하의 영천군이 송도에 와서 한양에서 부리던 그 기개가 다 어디에 가고 일개 계집 앞에서 주눅이 들어 언행(言行)을 삼갔던 왕손이 아닌가? 낮에 일어났던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예전의 자신이 아니었던 것을 되돌아 보다 깜빡 잠이 들었다.

꿈에 자동선이 나타났다. 그녀는 이승에 살고 있는 선녀 같다. 지금껏 조선 팔도를 유람하면서 예쁘다는 여인을 다 품어봤으나 자동선 만한 미색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슬이 은하수를 씻어 달빛이 둥그니 / 금잔에 가득한 술이 오히려 차갑도다 / 자하동 한가락에 사람은 옥 같이 밝고 / 촛불 아래 즐거운 밤은 끝이 없어라’ 고려 시인 권부(權溥)의 《자하동》시를 읊는 것이다. 너무나 생생한 모습이다.

자하동은 미모도 지금껏 보아왔던 그 어떤 여인보다 월등히 뛰어난 미색을 지녔을 뿐만이 아니라 해박한 시문(詩文)에 대한 지식은 사가정과 견주어도 조금도 뒤지지 않을 듯 보였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밤이 영천군은 너무 길었다. 선녀 같은 자동선을 품었던들 여름밤은 마른하늘의 번개처럼 일향(촌음)인 듯 지나갔으리라...

그런데 지금은 밤이 너무 길다. 사가정은 더운지 물건이 보일락 말락 하게 바지를 내리고 두 다리를 있는 대로 벌리고 깊은 잠에 빠졌다. 천하가 제 세상이다. 그가 가는 곳엔 늘 술과 계집이 기다리고 있다. 풍부한 해학과 옥골선풍 헌헌장부의 용모에 계집들은 그가 나타나면 자지러지며 오금을 못 편다.

영천군은 은근히 사가정이 부럽고 질투가 났다. 그리고 그가 이웃에 살고 있어 보고 싶고 아쉬울 때 부르면 언제나 만날 수 있다는 데에 고마운 마음이 발동하였다. “자식 잘생기고 풍류까지 즐기니 계집들이 사족을 못써...” 영천군은 입속말을 하면서 주모가 갖다 놓은 자리끼를 단숨에 들이켰다.

동창(東窓)으로 여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영천군은 사가정이 깰 것을 기다리다 못해 발길로 등을 툭 쳤다. 마침 등을 보이며 돌아누웠다. “이 사람아, 이제 그만 자고 일어나게...” 하지만 사가정은 들은 척도 않는다. 코를 더 세게 골며 헛소리까지 하였다. “자동선아, 너는 이 어른을 잘 모셔야 하느니라. 이 어른이 어떤 어른인지 네가 알기나 하느냐? 한양에 부잣집 아드님이 아니고 효령대군의 다섯째 아드님이신 영천군이셔. 네가 잘 모시면 당장 한양으로 올라 갈 행운 녀가 되는 거야. 하하하...” 영천군은 생각지도 않았던 사가정의 잠꼬대에 흥이 솟았다. 사가정은 잠을 자면서도 나를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고맙기가 그지없었다. 하지만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사가정! 이제 잠은 그만 자고 일어나게!” 이번엔 엉덩이를 차는 게 아니라 코를 잡아끌었다. 몸이 단 음성이다. 사실 사가정은 잠은 벌써 깨어있었다. 자동선에 몸이 달아오른 영천군이 어떻게 하나 보기위해 자는 척 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내는 집 뒤 실개천으로 가 세수를 하고 자동선 집으로 향했다. 술국을 끓여 달라는 배짱이다. 사가정이 늘 앞장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동선이 사립문 앞에서 서성대며 두 사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영천군 나으리 소인이 뭐라 했습니까? 자동선이 틀림없이 술국을 끓여 놓고 나으리를 기다릴 것이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사가정이 기세등등하여 마치 제집 들어가듯 내실로 들어갔다. 외출했다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기세다.

역시 천하 풍류객 사가정답다. 영천군은 갑자기 사가정이 부러웠다. 사내로 태어나 저토록 당당히 천하를 주름잡고 다니는 사가정이 갑자기 미워지기도 하였다. 사내의 경쟁 심리다. 왕손의 후예라 언제 어디서고 왕실의 체면을 구겨선 안 되고 시정잡배와 어울려 품위를 잃어서도 안 되었다. 지금도 그는 왕손이 아닌 한양의 부잣집 아들이 되어있다.

사가정이 꾸민 연극이다. 방안에 들어서자 정갈하게 끓여진 술국 두 그릇이 준비되었고 그 옆엔 엊저녁에 마신 자동선주도 한 병 놓였다. 해장술이다. “역시 자동선이다!” 두 사내 입속말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들은 맞바람에 게 눈 감추듯 술국과 자동선주를 비웠다.

술국을 먹고 자동선주 한 병을 다 비운 그들은 엊저녁에 마신 술이 다 깨기도 전에 다시 취했다. 두 사내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다시 널브러졌다. 사가정은 객사에서 보다 더 크게 코를 골았다. 영천군은 오뉴월 소나기처럼 잠이 쏟아졌으나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그때다. “한양 나으리 어르신들! 술국을 다 드셨나요?” 자동선이 술국 상을 가지러 들어왔다. “어머머... 이 어르신들을 봐. 여기가 객사인 줄 아시나 봐!” 자동선이 사가정 얼굴에 냉수를 뿌려 일으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동선이 술국 상 앞에서 거문고를 켜면서 이곡(李穀)의 《자하동》 시를 읊었다. 사가정이 눈을 뜨자 자동선은 켜던 거문고를 놓고 너울너울 춤까지 추기 시작하였다.

영천군은 자동선의 춤에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춤을 바라 볼 뿐이다. ‘초당에 잠을 깨니 낙화가 한가하다 / 발을 걷고 보니 여기 저기 청산이라 / 청산은 나를 웃네 나들이도 아니하고 / 언제든지 책속에만 파묻혀 있다고...“ 자동선의 다리가 번쩍 들릴 때 오얏꽃 보다도 더 흰 엉덩이가 희끗희끗 드러났다.

팬티가 없는 속곳 바람이다. 여름이라 그러하려니 생각했으나 자동선의 치밀한 상술로 보였다. 신이 나서 노루모양 껑충 뛰었을 때는 거웃과 음문까지도 살짝 얼굴을 드러냈다. 예쁘고 신비해 보이기까지 한 음문이다. 수많은 사내들의 욕정을 채워주었을 음문은 사내 손길 한번 안 닿은 듯이 깨끗해 보였다.

두 사내는 동시에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자동선은 지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직업본색을 풍기고 있다. 아무튼 두 사내는 빙의에 걸린 듯 박수를 치면서 자동선 매력에 빠져들었다.
기사공유   트위터   페이스북   싸이공감   구글
독자 의견남기기

독자의견쓰기   운영원칙보기

(0/500자) 로그인

리플달기

댓글   숨기기

독자의견(댓글)을 달아주세요.

뉴스홈으로    이전페이지로    맨위로

인기기사    댓글달린기사    공감기사

실시간 댓글 더보기

구인    구직   매매

사람들 interview

"선도사업은 커뮤니티케어 성공모델 찾는 과정"

내년 지자체 두배 확대 계획중…간호ICT는 커뮤니티...

더보기

오피니언 더보기

의약정보 더보기

약업북몰    신간안내

약창춘추(藥窓春秋) 2

약창춘추(藥窓春秋) 2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전 식약청장)가 약업신문에 10...

이시각 주요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