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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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자동선(紫洞仙) <제17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9-01-30 08:52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거문고 선율에 맞춰 자동선의 춤은 선녀 같다. 두 사내는 술잔을 든 채 입을 딱 벌리고 자동선의 춤사위에 넋을 잃었다. 제일청의 거문고 솜씨도 뛰어났다. 지금은 제일청이 퇴기로 청교방 거리 뒷전에 물러나 있으나 10년여 전만 해도 송도 한량들이 줄을 섰다.

미색에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거문고면 거문고 못하는 것이 없는데다 잠자리와 인심까지 박절하지 않아 한량들이 부나비처럼 꼬였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엔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다.

지금은 자동선의 심부름과 손님들의 길라잡이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더욱이 사가정 같이 가뭄에 콩 나듯 예전의 고객이 찾아오면 알뜰히 모았던 주머니 돈까지 탈탈 털어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정이 그리운 것이다. 제일청은 특히 사가정에 애틋한 정을 느끼고 있다. 제일청이 송도유수 진명원(陳明元·가명)에게 수청을 든 지 한 달이 채 안되었을 때 사가정을 맞았다. 그녀는 몸과 마음까지 열어 사내를 맞이한 것은 사가정이 처음이었다. 지금도 헌헌장부에 여자들이 한번 보면 빠져드는 호남이지만 10여 년 전의 모습에선 광채까지 빛나는 옥골선풍이었다. 그 모습에 제일청은 영혼까지 빼앗겼다.

춤과 노래가 곁들인 술판의 여름밤은 짧기만 하다. “이제 돌아가셔서 쉬시지요! 내일 송악산 깊은 곳을 유람하시려면 넉넉한 취침을 하셔야 해요....” 자동선은 영천군과 사가정을 닭 쫓듯 내몰았다.

지난밤도 낮에 찰나적으로 춤사위로 본 자동선의 앙증맞은 엉덩이와 신비하기까지 해 보이는 음문의 꿈만 꾸다 밤을 샜는데 오늘도 닭 쫓던 개 모양 객사로 내어 몰리자 영천군은 부아가 퉁퉁 부어올랐다. “사가정, 우리 꼴이 이게 뭔가? 아무래도 한양으로 돌아가야 할 듯하네...” “영천군 나으리!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자동선 하나를 못 품고 한양으로 되돌아가자고요? 그것은 아니 됩니다.” 사가정의 말엔 자신감과 자존감이 섞인 단호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풍류객의 넉넉함의 모습이다. ‘송도의 왕기는 이미 사라져 버려서 / 무심한 구름과 잡초만 무성하고 / 성은 있어도 사람은 옛사람이 아니니 / 산천은 같아도 사람은 나그네 뿐이네’ 사가정의 죽마고우 이승소(李承召·1422~1484)의 시다.

영천군은 천하미색 자동선을 오늘밤은 품으려나 하고 기대가 컸으나 헛물만 켠 자신이 너무나 미웠던 것이다. 무심한 달은 휘영청 밝다. 깊은 산 속에선 부엉이까지 울어댔다. 여름이지만 새벽공기는 제법 차갑다. 얼큰하게 취한 몸엔 한기까지 들며 재채기에 소름까지 돋았다. 이처럼 으스스 할 때는 따뜻한 계집이 더욱 그립다.

두 사내 심정이 지금 딱 그러하다. “영천군 나으리, 내일은 꼭 자동선의 마음을 잡으셔야 됩니다.” “어떻게 그 아이의 마음을 잡는다는 거요? 나는 자동선의 속내를 알 수가 없어!” 가슴이 답답하다는 난감한 표정이다. “장래를 책임지겠다는 징표를 주셔야지요? 기생이 더욱이 천하미색 자동선이 몸을 내어 줄 때 청교방의 기생이나 한양의 장악원 아이들을 생각하시면 아니 되십니다.” 영천군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에 검은 구름이 흘러갔다.

두 사내의 갈피 없는 대화는 어느새 새벽을 맞았다. 어젯밤에 마신 술로 속도 쓰리고 잠까지 설쳐 몸이 천근만근이다. 영천군이 더 지쳤다. “나 잠시 눈을 붙여야겠네...” 영천군이 어찌된 영문인지 금방 코를 골았다.

그런데 곧이어 잠꼬대를 하였다. “야 이년아! 내가 누군데 네 년의 콧대가 얼마나 가나 보자!” 자동선에게 하는 소리 같다. 사가정은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여자의 마음을 너무나 모르는 영천군이 한심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사가정은 밖으로 나왔다. 객사 뒤로 개천이 흐른다. 개천엔 며칠 전에 내린 비로 옥수 같은 물이 철철 넘쳐흐르고 있다. 부엉이 울음소리에 두견새 소리까지 요란하다. 한양 북촌과는 판이한 환경이다.

그때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제일청이다. “나으리, 소첩이 술국을 끓여 놨습니다. 영천군 나으리와 함께 오셔서 드시고 자동선에 가서 송악산 나들이를 떠나시죠!” 알뜰한 배려다. “고마우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내 너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데...”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첩이 좋아서 하는 것인데 나으리는 개념치마소서...” 제일청의 갑자기 울음 섞인 목소리다. “왜 무슨 일이 있느냐?” 사가정이 제일청을 품는다.

제일청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사가정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영천군이 자동선을 설득하여 한양으로 데려가면 사가정도 따라가면 언제 다시 볼지 몰라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 되어서다.

사가정은 제일청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다. “내 영천군을 모시고 다니는 친구인지라 올라갔다 내 곧 다시 내려올 것이니라. 너무 아쉬워하지 말거라.” 사가정이 제일청의 등을 두드려 겨우 진정시켰다. “주제도 모르고 주책없이 날뛰어 소첩이 밉지요?” “아니니라. 나는 네가 귀엽고 예쁘기만 하니라.” 제일청은 예쁘고 귀엽다는 말에 마음이 진정되는지 울음을 그쳤다. 그러나 속으로 우는지 어깨가 들썩이다 한참 후에 멈추었다.

퇴기에게 귀엽다는 얘기는 결코 칭찬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똑같은 말이라도 누구한테 듣느냐가 중요하다. 지금은 사가정에게 듣는 예쁘고 귀엽다는 말은 제일청에겐 진정으로 하는 말로 들려서다. ‘날은 암담하고 시간은 더디간다. / 좋은 시절 돌아왔으나 옆은 싸늘하다. / 향로 연기는 내 마음 수심같이 끊길 줄 모른다. ’ 술 한 잔 들고 국화를 바라보는데 바람에 흔들리는 여윈 모습이 / 문득 내가 아닌가! / 임은 그리움을 부르고 외로움은 임을 부른다.‘ 이청저의 《안개 엷고 구름 짙은 시름 가득한 긴 오후에》다.

지금 제일청의 마음이 이청조와 닮은 꼴일 게다. 사내들은 같을 것이라 생각하는 제일청이다. 품고 욕정을 채울땐 그들은 입속의 혀라도 빼줄 듯이 말하다가도 떠나면 남이 되는 것이 기방을 찾는 사내들 속성이다. 제일청은 사가정도 그들 중 한 사내일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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