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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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자동선(紫洞仙) <제25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9-03-27 09:36     최종수정 2019-03-27 10:28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했다. 영천군과 자동선의 사랑 얘기도 송도를 넘어 한양에까지 봄바람에 꽃향기 날아들 듯 장악원에도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송악산 유람 때 등산객들에 눈에 띄어 퍼져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송도(현 개성)는 중국으로 사신들이 오고가는 길목이어서 늘 왕래하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발 없는 말이 어느새 영천군의 본가에 영천군과 자동선의 연리지(連理枝) 얘기가 소문이 아닌 사실로 알려졌다. 안국방(현 안국동) 영천군댁에선 자동선이 올 것을 대비하여 사랑채 옆에 방을 더 꾸몄다. 자동선의 이름은 이곳 한양에서도 익히 알려진 이름이다. 그 자동선이 영천군의 부실(副室)이 되어 온다는 소식이 퍼지자 묘한 분위기다. 특히 장악원 분위기에 새로운 바람이 일어날 조짐이다. 한양에서 가장 확실하고 큰 손님을 잃지는 않을까 조심스런 분위기다.

사실 왕실 후손들은 할 일이 없다. 신분이 높아 그들이 할 일이 사회에는 없기 때문이다. 요즘말로 백수다. 그러다보니 자칫 주색(酒色)에 빠지기 쉽다. 아름답게 뻗은 뿔 때문에 가시덤불에 걸려 사자먹이가 된 사슴 우화처럼 때로는 빼어난 재능 때문에 불행해 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례는 왕족과 서얼일 것이다. 전자는 너무 높은 신분 때문이고 후자는 어머니의 낮은 신분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 못하는 사례다.

조선시대 사회상이다. 세종의 셋째 안평대군(安平大君:1418~1453)이 양가집 재모(才貌)가 뛰어난 소녀 10명을 뽑아 시문(詩文)을 5~6년 가르치며 세월을 보낸 것도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남들은 먹고 살기 어려워 동분서주 하는데 할 일이 없어 멀뚱히 있는 것도 쉽지 않은 태도다.

그래서 그들은 예술이나 종교 등에 심취하지 않으면 자칫 주색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영천군도 그 부류에 속하는 조선 최고의 신분인 왕족이다. 그림에 재주가 뛰어났으나 신분의 제약으로 행동에 자유롭지 못했음을 여자에 관심이 갔음이어라... 젊음의 격정(激情)을 시(詩)와 미(美)로 카타르시스 시켰을 것이다.

안평대군은 시·서·화에 능하여 3절(三絶)로 불리었다. 그의 글씨는 중국에까지 명성이 높아 황제들이 사신을 통해 얻어가려고 청까지 넣었다는 얘기까지 전해졌다.

그의 글씨는 《몽유도원도 발문》이 대표적 작품이다. 그는 또한 예술에 뛰어나 제자격인 10인의 궁희(宮姬)들에게 열정을 쏟았다. ‘가벼운 비단으로 달을 덮은 듯 / 푸른 띠로 길게 산을 두르듯 / 미풍에 점점 흩어지더니 / 오히려 작은 연못을 적시네 ’ 10인 궁녀 중 옥녀(玉女)의 《무제》다.

어느 특정인을 연모하는 듯한 시다. 재색을 갖춘 젊은 여인 10명이 한 곳에 모여 시를 쓰고 뛰어난 예술 감수성이 탁월한 왕족 밑에서 같은 공간에서 생활을 했다면 그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상사별곡(相思別曲)의 천일야화도 탄생했으리라...

더욱이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양가집 딸들이 옥골선풍 헌헌장부인 안평대군과 시문학을 공부했다면 문학사에 경천동지 할 사건이다. 하지만 남녀칠세부동석 엄격한 신분사회에 그런 일이 있었다. 그것이 역사다.

한편 영천군과 사가정이 송도에 내려올 때는 두 사람이었는데 한양으로 올라갈 때는 세필의 나귀에 이삿짐을 실은 부담마(負擔馬) 두 필까지 나귀만도 다섯 필로 늘어났다.

일행이 천수원을 통과하게 되자 사가정이 “영천군 나으리, 여기가 천수원이예요! 돌아오는 길에 청교월(靑郊月)에 들린다는 약속은 어쩌시렵니까?” 라고 말하자 영천군은 고개를 휙 돌리며 “에이 사람도 짓궂기도 하네...”라며 나귀엉덩이에 채찍질을 하였다.

사가정은 크게 웃으며 다음과 같은 즉흥시를 읊었다. ‘청교의 버들은 가슴 아프게 푸른데 / 자하동의 안개는 마냥 흡족하구나...’ 자동선은 아무 말도 없이 행복에 겨운 미소만 짓고 있다.

한때는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친 명기였으나 이젠 한 사내의 여자로 충실할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듯 하여 보였다. 자동선은 영천군의 부실이 되어 현모양처로 변신하여 아들딸 낳고 행복한 삶을 영위했을 것이다.

아마도 중국사신 장녕과 김식을 통해 자동선에 대한 명성을 들은 사신들은 조선의 송도에 왔다 그녀를 품으려는 꿈에 부풀었다 허탕을 쳤을 게다. 그들은 자동선을 중국의 4대 미녀인 양귀비·서시·초선·왕소군의 장점만 닮은 세기의 미녀 팬이 되었을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의 빼어난 명기에 그들은 넋을 잃었다. 그러나 자동선은 왕실의 여자다 되었으니 옛 명성을 되새김질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였다.

한편 동갑내기 사가정은 심심하면 불러서 갔던 영천군이 이젠 오매불망 했었던 자동선을 품에 넣었으니 불려가지 않고 사가독서에 열중할 것을 다짐하며 시 한 수를 읊는다. ‘이름난 명승지는 말을 자주 멈추던 곳/ 담 무너진 나무숲엔 두견새만 우노나 / 늙은이들 마주치면 저마다 묻기를 / 조선은 어느 해에 한양으로 옮겨갔소...’ 시인다운 세월의 표현이다.

송도는 고려의 도읍지이나 지금은 조선시대다. 권력이 휩쓸고 간 옛 도읍지의 산천은 옛날 그대로이나 민심은 옛날이 아니다. 사가정은 한양에 왔어도 빼어난 송도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져 끝없는 시상(詩想)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그는 문득 안평대군의 10인 궁희 중 금연(金蓮)이 쓴 《무제》 시를 떠올렸다. ‘산아래 차가운 안개 쌓여 / 궁궐나무가로 비껴 날아가네 / 바람 부니 저절로 움직여 / 기우는 달 푸른 하늘에 가득하네 ’다.

왜 갑자기 이 시를 떠올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본인의 심정이 허허로웠을 터다. 영천군은 자동선을 데리고 왔는데 자신은 사랑하는 제일청을 송도에 두고 올 수 밖에 없는 신세를 잠시나마 떠올렸을 것이 아닐까? 역시 신분의 차이를 생각했을 것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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