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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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홍랑(洪娘) <제4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9-04-24 09:36     최종수정 2019-04-24 09:53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하룻밤 사이에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만리장성을 그들은 쌓았다. 홍랑이 더 적극적 자세다. 고죽은 북평사(北評事) 임무를 맡고 가야 할 몸인데 풍류객 본색이 발동하여 잠시 직분을 잊었을 뿐 교지를 보인 후엔 머리가 곤두서고 마음이 바빠졌다.

홍원서 경성은 먼 길이다. 북청→단천→길주→명천 등을 거치는 머나먼 천리길... 홍랑은 고죽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변방은 오랑캐들이 들끓어 행여 잘못될 수도 있어 이번에 헤어지면 영영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까지 들어서다. 하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적 만남이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애틋한 관계의 남과 녀다.

홍랑은 정신적으로 오매불망 사모했었던 고죽을 실제로 자기 사내로 만들었으니 오죽이나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을까! 고죽도 다를 것이 없다. 자신의 시를 통한 연모로 자신을 마치 신격화 했던 천하의 절기(絶技)인 홍랑을 쉽게 떠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임금의 영(令)을 수행 할 몸이다. 한시가 급하다. ‘천리밖에 님 보내고 세월은 깊어 / 님 계신 곳 생각에 마음이 설다 / 애타는 그리움을 그 누가 알랴 / 꽃피는 달밤에는 홀로 우노라’ 《무제》(無題)다.

고죽을 경성으로 떠나보내고 20여 일도 안 된 어느 날 홍랑이 심정을 토로한 절창(絶唱)이다. 함경도 국경지대는 고려시대에는 오랫동안 여진족들이 들끓은 지역이었었다. 그러다가 예종(睿宗) 2년(1107년)에 그 유명한 윤관(尹瓘)장군이 그들을 몰아내고 국토를 회복했다.

그러나 국력이 쇠약해지자 이번엔 원(元 )나라가 선린을 내세워 자기네 땅처럼 주인행세를 하였다. 그 후 개혁을 부르짖던 공민왕대에 와서야 두만강 이남을 되찾아 진정한 국토가 되었다. 이렇듯 이곳 국경지대는 하루도 바람잘 날이 없는 폭풍직전의 험난한 지대다.

홍랑이 이곳으로 간 고죽을 생각하는 것이다. 차라리 같이 가서 현장을 목격하면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면 낫겠다는 생각까지도 하는 홍랑이다.

홍랑은 고죽을 경성으로 떠나보내고 곧장 이 사또에게로 가서 기적에서 빼줄 것을 간청하였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당당한 여인이 되겠다는 생각에서다. 기방정사를 했으면 홍랑은 기녀고 그냥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고죽은 홍랑의 뜻대로 단둘이 방에서 혼례를 치르고 화촉동방을 치르게 하여 과감히 기적에서 나오도록 도왔다.

조강지처는 될수 없어서 첩이든 부실이든 떳떳이 고죽의 여자로 평생을 살겠다는 굳은 결심을 내렸다. “그래 네가 고죽의 부실이 되겠다는 것이냐? 그러하면 내가 너를 붙들 수가 없지! 생각을 잘 했느니라... 고죽이 경성 임무를 끝내고 한양으로 갈 때 너도 같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고죽은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훌륭한 사대부이니라...” 홍랑은 이 사또의 얘기가 귀에 아직도 여전히 생생하다.

홍랑은 마음이 답답하여 몸 둘 바를 모를 땐 집 주위를 뱅글뱅글 도는 습관이 고죽을 경성으로 보낸 후에 생겼다. 고죽이 떠나간 며칠 후부터 하루도 거른 일이 없다. 오늘도 버릇처럼 집 주위를 돌고 있다. 달도 휘영청 밝다. 홍랑은 불현 듯 고려시인 설손(楔遜)의 《무부도의사》(戊婦搗衣詞)를 떠올렸다. ‘하늘에는 달빛이 휘영청 밝아 / 외로운 가을밤이 길기도 하다 / 애달픈 바람 서북에서 불어오고 / 귀뚜라미조차 베갯머리에 우네 // 정든 임은 멀리 싸움터에 가시고 / 나만 홀로 빈방을 지키노라 / 빈방을 지키기는 한이 없어서 / 임 그리움에 이 몸은 얼어만 온다’ 그랬다. 홍랑은 시로만 고죽을 사모하고 존경할 때는 감히 자기 남자가 되리란 생각조차 못했었다.

하지만 막상 자기 남자가 된 후론 한시도 곁에서 떼어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복에 겨운 생각일지 모르나 지금 홍랑의 욕심은 욕심을 낳았다. 여자의 본색일 터다. 그러나 고죽은 홍원을 떠나간 지 반년이 속절없이 흘렀으나 서찰 한통 없는 상태다.

아무리 국경수비가 험악하고 밤낮이 없는 싸움터지만 여자인 홍랑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고죽의 여자가 된 것이 후회되기도 하였다. 사내란 다 그런 동물이지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자 갑자기 속았다는 마음이 되자 기적에서 공연히 서둘러 빠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금방 ‘고죽은 그런 사내가 아니야’란 생각이 불같이 일어났다. 반년이 지났어도 한 번의 서찰도 없어 궁금증은 눈덩이 같이 커져갔다. 혹 잘못 되었으면 한양의 조강지처엔 소식이 갔지만 기생출신 부실한테까지 소식을 전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집에서 소식을 기다릴 수가 없었다.

경성으로 가려는 속내다. 마음이 급하면 행동도 뒤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홍랑은 행동할 생각은 없다. 홍원에서 경성으로 가는 길은 험지 중 험지다. 사내도 아닌 여자 몸으로 행동에 나설 홍랑이 아니다. 자칫 행동했다 고죽에게 누가될까 걱정이 앞섰다.

홍랑이 고죽의 여자가 되었다는 소식은 입에서 입으로 퍼졌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민들레 꽃씨처럼 삽시간에 저잣거리 화제가 되었다. “홍랑이 그 예쁜 미모로 기둥서방을 만들었데...” 기생들의 질투다. 홍랑은 홍원의 기계(妓界)에 봉황이다. 그녀가 떠난 기계엔 고만고만한 기녀들이 홍랑 자리에 오르려고 악다구니다.

호랑이 없는 굴에 토끼가 왕이라고 가관이다. 홍랑도 고죽 소식이 깜깜 하자 몸이 근질근질하다. 고죽과 부부관계를 맺은 것을 모르고 찾아온 사내도 더러 있었다. 그들과 기꺼이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옛 사내들이 찾아오면 홍랑은 떳떳이 고죽의 여자신분을 밝혔다. 그리고 술친구가 되어 기쁘게 발길을 돌리게 하였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했다. 고죽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잠시 멈추면 옛 사내들 얼굴이 가을하늘의 기러기떼 같이 떠오를 때도 있었다. 전작 기녀의 본색(本色)일까... 홍랑은 자신의 마음에 자신도 깜짝 놀라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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