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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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홍랑(洪娘) <제6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9-05-08 09:36     최종수정 2019-05-08 09:37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경성의 소식은 오지 않았다.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전해지지 않는 것이 지역적 거리다. 지금 경성에 있는 고죽과 홍원에 있는 홍랑이 딱 그러하다. 기다리다 지친 홍랑이 경성으로 고죽을 만나러 가려는 채비다.

어명(御命)에 얽매여 옴짝달싹 못하는 고죽보다 홍랑이 찾아가는 것이 나으리란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홍랑은 기적에서도 빠져나와 이젠 자유의 몸이 되었다. 고죽의 여자로만 살아가면 되는 여인이다. 하지만 고죽의 여인의 세상살이가 생각처럼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것만큼 고달픈 것은 없다. 더욱이 기생의 신분에서 빠져나와 사대부의 부실(副室)이 된 홍랑의 사랑의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다. 가시밭길이다.

상대는 고죽 최경창이여서다. 홍랑의 고죽에 대한 사랑은 신앙이다. 홍원에서 하룻밤의 화촉동방으로 만리장성을 쌓은 홍랑은 그 밤으로 고죽이 신앙이 되었다. 시만으로 존경을 넘어 사랑했으나 이젠 명실상부한 부부가 되어 “고죽은 내 남자다.”라고 소리치고 다닐 수 있어서다.

한양에선 그렇게 소리칠 수 없어도 적어도 홍원에선 가능하다. 이 사또도 허락한 관계라 기적에서 빠져나와 한 사내 여자로만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험하고 첩첩산중 지세다.

지금 홍랑이 그 길을 떠나려고 분주한 채비다. ‘함경도 길 북쪽으로 올라가자니 말은 자꾸 거꾸러지는데 / 눈 덮인 고개 서쪽을 보니 바다가 하늘과 닿았네 / 나그네길 어디서 중양절(重陽節·9월9일)을 맞을는지 / 노란 국화는 옛 성가에서 떨어지겠지’ 고죽의 《사명을 받고 함경도로 가는 정철에게》다.

홍랑도 머리가 복잡하고 답답하다. 남장을 하고 홍원에서 경성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홍원에서 경성까지는 태산준령의 1천3백여 리나 되는 거리다. 하지만 홍랑은 남장을 하고 가슴에 비수와 비상(砒霜)을 품고 길을 떠났다.

망설임이 없다. 고죽을 향한 뜨거운 마음에 거칠 것이 없다. 남장을 했어도 예쁜 몸매다. 가야금과 거문고 가락이 흘러나올 때마다 몸과 마음도 함께 단련되어 꽃보다 더 예쁜 모습이다. 지금 그 예쁜 남장여인이 고죽이 그리워 제비같이 날아갈 듯이 간다. 요즘으로 치면 뛰는 듯이 걸아 가는 경보(競步)로 홍랑이 북청(北靑)을 향해 걷는 듯이 달려가고 있다.

홍원을 떠난 지 20여일 만에 북청·이원(利源)·단천(端川)·성진(城津)·길주(吉州)를 무사히 거쳐 명천(明川)에 닿았다. 이제 경성에 거의 다 온것 같아 마음이 더욱 뜨거워졌다. 수없이 산 넘고 재를 넘기는 20여일에 지치고 지친 상태다. 하지만 한시도 경계를 게을리 할 상황이 아니다. 언제어디서 산적이 튀어나와 몹쓸 짓을 할지도 모를 험한 산길이다.

그래서 홍랑은 가슴에 비수와 비상을 품고 길을 떠났다. 불의에 불행한 일이 발생할 경우 요긴하게 쓰려는 비상수단이다. 비록 기녀로 있다 고죽의 여자가 됐으나 더 이상 몸을 더럽힐 수는 없다는 단호한 자세다. 일구월심(日久月深) 고죽을 향한 마음뿐이다.

오늘도 무거운 발길에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어디쯤 가야 마을이 있을지 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그때다. 험상궂게 생기 나무꾼이 불쑥 나타났다. “앗! 너는 누구냐?” “너야말로 누구냐? 이 산골에 겁도 없이 혼자 이 산세를 헤쳐 갈 생각을 했느냐? 오늘은 더 가기 힘들 것이다. 우리집에 가서 쉬고 내일 떠나가거라...” 사내는 첫눈에 홍랑이 남장을 했어도 금방 여자로 알아봤던 게다. 집으로 유인하여 자기 여자로 만들려는 속내다.

홍랑도 그 눈치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지금은 딴 어떤 방법도 없다. 유사시에 홍랑은 비수와 비상을 쓰려는 속내다. 홍랑에겐 남자란 오직 고죽뿐인 것이다. 사내는 지게에 나무를 가득 얹고도 성큼성큼 집으로 향하였다. 기분이 좋은 걸음걸이다.

홍랑도 뒤따라갔다. 산속의 해는 누가 잡아끄는지 순식간에 어둠이 깔렸다. “혼자 사는 집이라 허술하오! 노모가 있으나 병석이라 대접이 소홀하오...” 감자가 섞인 옥수수밥이다. 홍랑도 기진맥진한 육신에다 배까지 고팠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따뜻한 밥까지 주시고 잠까지 자게 해주시어 고맙기 이를 때 없습니다...” 사내 말은 따뜻한 척 해 보이나 눈 속엔 정욕이 이글거렸다.

홍랑을 첫눈에 여자로 알아보고 모르는 척 하고 있을 뿐이다. “노모가 병석으로 신음소리가 유난하여 시끄러울 것이오. 나그네는 아랫방에서 유숙하시고 나는 나뭇광에서 자리다...” “날씨가 차가운데 내가 나가 자리다...” 홍랑은 가능하면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여자 음성을 아무리 변성을 해도 금방 드러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남장을 했어도 예쁘장한 몸매는 숨길 수 없어 잠시만 유심히 살피면 금방 남장여인이란 것을 알아볼 수 있다.

홍랑이 지금 바로 그 몸매다. ‘산속이라 날씨가 차가워 / 서리와 우박이 날마다 쌓이네 / 해 그림자까지 점점 촉박해져 / 아침이 오자마자 벌써 저녁이 되네 / 숲도 텅 비어 볼만한 경치 없고 / 어두워진 뒤에야 새들이 돌아오네 / 적막한 이곳에서 누구를 만나랴 / 걱정이 찾아와도 풀 수 없어라’ 고죽의 《산속》에서다. (시옮김 허경진)

홍랑은 지금 고죽을 생각하며 이 시를 마음속으로 낭송하고 있을 것이다. 감자가 섞인 옥수수밥으로 허기를 때웠으나 잠은 오지 않는다. 잠이 들었다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몰라서다. 뜬눈으로 산사(山寺)의 새벽종소리를 들었다. 바로 그때다. 방문이 스르르 열리며 검은 그림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홍랑도 비호처럼 일어나 비수를 빼어들고 벽으로 붙었다. 사내는 이불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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