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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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홍랑(洪娘) <제10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9-06-05 09:36     최종수정 2019-06-05 10:36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오랑캐들은 결국 경성에 쳐 들오지 못하였다. 몇 번이고 침공을 시도했다 고죽에게 대패하고 스스로 물러갔다. 고죽의 명성에 눌려 스스로 살길을 찾은 것이다. 몇 번의 침공을 해 봤으나 철벽수비로 수백 명의 사상자만 냈을 뿐 한 능선도 탈취하지 못해 스스로 후퇴하고 말았다.

한편 홍랑은 홍랑대로 밤낮으로 안달이다. 고죽 곁으로 오면 마음이 편하고 행복할 줄 알았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정반대다. 멀리멀리 떨어져 있을 땐 궁금하여 상상만으로 안타까웠는데 막상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속만 태우고 있으니 안 보느니만 못한 현실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

홍랑은 밤마다 용광로 같은 사랑을 꿈꾼다. 화적(火賊)같은 사내에게 겁탈직전 위기에서 구사일생으로 벗어나 경성에 왔으나 보고 또 봐도 싫지 않은 님은 가까이 오지 않았다. 서러웠다. 기생 출신이란 자괴감도 들었다. 차라리 홍원에 있으면서 꿈속에서 반갑게 만나는 것이 더 행복했었다는 데에 까지 생각에 이르자 홍원으로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도 문득문득 들었다.

홍랑은 마음에 갈등이 심해지면 애걸복걸 목메다시피 하여 고죽의 여자가 된 것에 대해 후회도 하곤 한다. 특히 경성까지 왔는데도 석녀(石女) 보듯 하는 고죽이 원망스럽기까지 한 것이다. 어쩌다 뜨거운 살을 섞을 때가 있을 때도 쫓기는 토끼모양 서두르는 것에 불만이 크다. 밤새껏 뼈가 녹을 듯이 사랑을 나누고 싶은 것이 홍랑의 속내다.

그렇지만 홍랑은 고죽이 마음 놓고 자신을 찾아올 때까지 요조숙녀로 기다리기로 입술을 깨물며 속내를 숨겼다. ‘금수산 아지랑이 속 경치는 옛 그대로이고 / 능라도 풀꽃들도 이젠 봄빛 완연해라 / 그대 떠난 뒤로 소식 하나 없기에 / 《관서별곡》 한가락 들으며 수건에 눈물 가득해라’ 고죽과 삼당시인(三唐·백광훈·이달)으로 활동하였던 백광훈의 형 백광홍의 《평양에서 백광홍의 관서별곡을 들으며》다.

관서별곡은 기방에서 기녀들이 애송하는 노래가 되었다. ‘관서 명승지에 왕명으로 보내실 제 / 행장을 다스리니 칼 하나뿐이로다 / 연 조문 내 달아 모화고개 넘어드니 / 귀심이 빠르거니 고향을 사념하라’ 백광홍(白光弘·1522~1556)의 《관서별곡》이다. (시옮김 허경진)

문화예술엔 의례 약방에 감초모양 여인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기봉(岐峯·백광홍 호)에게도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몽강남(夢江南)이다. 그녀는 안주의 기생이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자유연애를 할 수 있는 여인은 기생들의 특권으로 누렸다.

고죽에게 홍랑이 그러했으며 기봉에게 몽강남이 그런 역할을 했으리라... 문화예술에 여인은 필수를 넘어 충분조건일 게다. 그것은 동서고금의 문화예술사가 말해주는 실증이다. 홍랑의 뛰어난 시(詩)에 대한 높은 식견도 고죽이란 정인(情人)이 있으므로 사랑이 배태(胚胎)시킨 아름다운 결실이라 하겠다.

또한 고죽은 고죽대로 바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홍랑이 제 발로 찾아와 객관에 있으니 마음이 태평하다. 홍원에 두고 왔을 땐 변심은 하지 않을까 또는 어느 사내놈이 업어가지나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이젠 지척에 와 있으니 걱정을 놓았다. 하지만 마음이 편한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밤마다 거문고와 가야금 가락에 맞추어 소곡주(素穀酒)를 마시며 질탕한 사랑에 빠지고 싶으나 현실은 그런 호강을 누릴만큼 여유롭지 않다. 군령을 어겨가며 오랑캐를 물리쳤으나 병마절도사 김선삼과 갈등 때문이다.

김선삼은 고죽이 눈엣 가시다. 단숨에 확 빼내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돼서다. 게다가 김선삼은 병석에 있는 몸으로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몸이 자유롭지 않으면 마음은 더욱 복잡하고 생각이 천 갈래 만 갈래다. 지금 김선삼이 딱 그러하다. 어떻게든 고죽을 경성에서 쫓아내야 자신이 건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결국 용단을 내렸다. 자파 병조판서 박명수(朴明秀·가명)에게 고죽을 한양으로 전보토록 밀서를 보냈다. 병조판서도 고죽을 좋게 보고 있지 않은 즈음에 군령을 어겼다는 핑계로 즉각 전보 통지를 하달하였다. 군령을 어겼으나 전공이 크고 훌륭한 인재로 처벌은 간신히 면한 상태다.

더욱이 고죽이 북경사로 부임해 온 이후 경성은 눈에 띄게 평온을 찾았다. 오랑캐들의 호시탐탐 침공해 올 기미만 있어도 백성들은 우왕좌왕 혼란해졌었다. 그러나 고죽이 부임해 온 후론 어버이를 믿듯 믿어 생업에 열중하여 올해는 어느 해보다도 추수가 풍성해졌다.

이 같은 경성의 소문은 대궐에까지 전해져 고죽을 처벌할 빌미가 사라졌다. 오히려 차일피일 군령을 내리지 않은 병마절도사에게 인심이 돌아서 서둘러 한양으로 부임해 가도록 자파 병조판서에게 장계(狀啓)를 올렸을 것이다. 사실 고죽은 군령을 어긴 것에 장공속죄(裝功贖罪·공을 세워 속죄함)하는 심정이었을 게다.

아무튼 고죽과 홍랑은 전황이 사라진 경성에서 처음으로 뜨거운 살을 마음껏 섞고 있다. 밤이 짧다. 홍원에서 처음만나 화촉동방을 치른 후 반년만이다. 서로 목이 말라 있었다. 밤은 짧고 낮은 한없이 길다.

고죽도 홍랑을 놓지 않고 홍랑 역시 고죽을 풀어주지 않는다. 고죽은 병조판서의 장계를 읽고 홍랑에게 알리지 않았다. 한양으로 올라갈 때 말하려는 속내다. 그들은 밤마다 산사의 새벽종소리를 듣고서야 뜨거운 살을 제 위치에 갖다놓고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두 손을 서로 잡고 두 다리로 서로의 허리 밑을 감았다. 잠이든 사이 행여 누가 먼저 상대방의 몸을 풀까 경계하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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