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화장실에서 미니멀리즘을 만나다

편집부

기사입력 2020-02-10 16:33     최종수정 2020-09-04 09:55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미니멀리즘이 음악 속에 나타난 양상

클래식도 어려운데 클래식 전공자도 어려워하는 현대음악을 언감생심 일반인에게 소개한다면? 익숙한 모짜르트, 베토벤말고 생경한 현대음악 추천해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을때면 언제나 망설였다. 미니멀리즘 음악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1960대 이후 미국에서 등장했고 시각예술과 궤를 함께하며 장식적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단순성을 추구했다. 필립 글래스, 스티브 라이히, 존 아담스가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작곡가로 손꼽힌다.

미니멀리즘 음악과의 첫 대면은 비엔나 대학시절이다.  현대음악 교수님께서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의 작품을 들려주시며 미니멀리즘 음악이라고 소개해주셨다. 낭만주의 클래식의 유려한 선율과 극적인 화성에 익숙해있던 터. 너무 단순한 음악을 엄격하게 구간반복하는 미니멀리즘은 지나치게 단조로웠다.

그 이후 음악장르적 취향이 잡식이라 다양한 음악을 들어왔지만 미니멀리즘 음악과는 오랫동안 담쌓고 지내왔던 것 같다. 하지만 2014년 개봉한 우주영화 '인터스텔라'가 미니멀리즘에대한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될 줄 몰랐다. 영화관람 후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가 작곡한 중독성있는 테마와 존엄한 파이프 오르간의 우주적 사운드에 꽂혀 귀가 닳도록 들었다.  놀라웠던건 이 음악에 다소 극적인 요소가 강조되긴 했으나 반복적인 구조가 돋보이는 미니멀리즘 음악이라는 사실. 토론토 대학 영화학과 벤자민 라이트 교수는 이런 음악에 '로맨틱 미니멀리즘'이란 표현을 썼다.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미니멀리즘 음악이 이때 다르게 다가온 이유가 뭘까. 영국의 가디언지가 미니멀리즘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를 소개하면서 "반복을 통해 최면에 빠진듯한 기쁨의 세계를 보여주었다"고 평했는데 여기 시사점이 있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사실 감상보다는 체험적인 음악에 가깝다. 큰 사고전에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적으로 존재했다는 하인리히 법칙처럼 작은 음악조각들이 무의식적으로  반복을 통해 각인되면서 어느 시점에 극적 긴장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미니멀리즘 관련 최근 한 영화감독이 내게 해준 얘기다. 일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갈때 인터스텔라 음악을 귀에 꽂고 있었는데 화장실에서 나올때 우주속에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었다고. 

미니멀리즘 음악의 구조적 특징은 간단히 두가지다. '반복'과 '변형'. 앞서 언급했듯 미니멀리즘 음악은 음악패턴이 끊임없이 반복되는데 미세한 선율적, 리듬적 변화를 함께 수반한다. 당연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음악패턴이 계속 반복되다보니 음악의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다. 기존의 클래식 음악은 긴장과 이완이 교차하면서 음악적 방향이 감지되는데 비해 이 음악은 어디로 향하는지 감이 안잡힌다. 이것이 대학시절 이 음악을 처음 접했을때 생경했던 이유다.다른 한 편 미세하게 진행되는 '변형'도 주목해야한다. 반복적 음악속에 화성의 움직임이 매우 더딘편인데 선율이나 리듬의 미세한 변화는 음악의 지속적인 네러티브를 이어가게끔 도와준다.

이제는 비주류가 되어버린 클래식에서 작은 비중을 차지하는 미니멀리즘이 오히려 대중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단 사실은 놀랍다.전설적인 팝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를 '다이아몬드 같은 사람'이라 부르며 함께 작업할 정도로 광범위한 행보를 보였던 필립 글래스. 그의 음악적 스타일은 팝, 영화음악등 다양한 장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반복적인 강렬한 비트의 테크노도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았다고 간주한다. 그래서 오히려 클래식에 몸 담은 사람보다 일반대중에게 더 쉽게 다가오는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것이 현대음악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들에게 미니멀리즘을 추천하는 이유다. 단순하고 친숙하다.

복잡다난한 사회로부터 피로감을 느낀 현대인들이 단순함을 추구하게된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리빙,패션, 디자인을 비롯해  애플과 같은 디지털 기기에도 단순함을 지향하는 흐름이 잘 반영되어 있다. 여기에 '미니멀'한 음악도 한번 더해보는건 어떨까.

필립 글래스의 대표작 글래스웍스(Glassworks)는 꼭 추천하고 싶다. 17만장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이 음반은  그가 일반 대중과 만나기위해 내놓았다고 공언했을만큼 듣기 쉬우면서도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잘 담고 있다. 6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음악의 조각들을 미니멀한 형식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서정적인 피아노 솔로가 아름다운 첫 악장 Opening만 들어도 인생득템이라고 말하고 싶다.






필자프로필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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