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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영화음악 세계, 셰이프 오브 뮤직: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편집부

기사입력 2020-09-04 11:51     최종수정 2020-09-04 13:29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영화관을 자주 찾지 않는 이라 할지라도 명절마다 TV에서 만날 수 있는 ‘해리 포터’ 시리즈나 이제 첩보 멜로드라마의 고전이 된 ‘색, 계’(이안, 2007), 로맨틱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본 사람이라면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을 만난 적이 있다. 데스플라는 현재 유럽과 할리우드를 오가며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영화음악가 중 한 사람으로 웨스 앤더슨, 기예르모 델 토로, 톰 후퍼 등 거장 감독들이 계속 함께 작업하기 원하는 작곡가다. 지난 달 개봉한 ‘셰이프 오브 뮤직: 알렉상드르 데스플라’(파스칼 쾨노, 2020)는 그의 음악 세계와 작업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다큐멘터리로 음악가로서의 재능은 물론 성실성과 소통 능력까지 엿볼 수 있다. 


그리스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여러 문화권의 음악을 접하며 자란 데스플라는 1990년대 초 프랑스에서 영화음악 작곡을 시작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피터 웨버, 2003), ‘탄생’(조나단 글레이저, 2004) 등으로 할리우드에까지 잘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탄생’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3분여의 스코어는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는데, 카메라가 조깅하는 남자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동안 별 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데도 음악이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눈밭과 검은 옷의 남자 때문에 거의 흑백으로 보이는 이 신에서 데스플라는 가볍고 단순한 선율을 기본으로 장중하고 무거운 소리를 추가하면서 조금씩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퍼커션이 울려 퍼지면서 조깅하던 사람이 쓰러지면, 이 프롤로그는 한 편의 영화를 요약한 듯한 드라마를 갖게 된다. 

오프닝 신에 사용되는 음악은 영화의 전반적인 톤 앤 매너를 반영하면서 관객들을 스크린 속 세계로 몰입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데스플라의 작품들에서는 그 교과서와 같은 테마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서사와 캐릭터에 대한 적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음악이 설계되고 진행된다는 점, 해당 신에 부족한 스토리나 정서를 음악으로 채워준다는 점 등이 데스플라를 동시대 가장 인기 있는 영화음악 작곡가로 만들어준 이유다. 

다큐의 제목은 2년 전 그에게 오스카상을 안겨준 ‘셰이프 오브 워터’(기예르모 델 토로, 2017)를 차용하고 있지만, 그의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잘 보여주는 것은 첫 오스카상 수상작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웨스 앤더슨, 2014)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 음악은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핑크색 호텔을 배경으로 비극적인 거시사와 미시사가 뒤얽히는 서사를 뒷받침하는데 특유의 관현악부터 발라라이카 연주, 그레고리오 성가까지 들어볼 수 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이 구현한 시각적 스타일과 마찬가지로 음악도 이국적이고 환상적이며, 인물별 테마에서는 유머와 슬픔이 동시에 느껴진다. 

유명 감독들과 작업하면서 이미 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데스플라의 전성기는 아직 진행중이다. 부디 영화계가 코로나시대의 불황을 잘 극복하고 엔니오 모리꼬네 이후 가장 낭만적인 영화음악가로 꼽히는 데스플라의 음악을 스크린에서 오래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윤성은의 Pick 무비 / 
경계의 모호함을 일깨우는 도시, ‘후쿠오카’ 

장률 감독의 영화가 대중적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 물음표 속을 헤매느니 애초에 해석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이들에게는 너무 심심해서 아무 맛도 나지 않을 것이다. 함께 있어도 사실 서로 겉돌고 있는 인물들, 먹고 마시고 걷고 자는 일 밖에 없는 그들의 하루는 너무 평범하고 현실적이어서 흥미롭지 않다. 그런데 어쩐지 비밀스런 주인공들의 대화나 낯선 카메라의 시선은 요상하게 마음에 남아서 영화와 비슷한 풍경을 마주할 때 불쑥 떠오른다. 장률 감독의 신작을 찾아보게 되는 것은 아마도 이렇듯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후쿠오카’는 ‘경주’(2014),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를 잇는 장률 감독의 도시 3부작 마지막 편이다. 이 영화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소담’(박소담)과 ‘제문’(윤제문)의 갑작스런 여행으로 시작된다. 후쿠오카에는 제문이 28년이나 손절하고 지냈던 선배, ‘해효’(권해효)가 술집을 하고 있다. 대학 시절 ‘순이’를 사랑했던 두 사람은 아직도 그 시절의 감정과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소담에게 제문과 해효의 관계는 연적이 아니라 연인으로 보일 정도로 다정하고, 많이 닮아 있기까지 하다. 같은 맥락에서 성인인데도 교복을 입고 다니는 소담, 재일동포였던 순이의 이중적인 정체성, 산 사람과 죽은 사람(귀신) 등이 반복해서 등장하거나 언급되는 것은 ‘경계’의 모호함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순이가 떠나기 전날 만난 사람이 제문이었는지 해효였는지 확인할 수 없는 것처럼 진실과 거짓도 여러 사람의 기억 속에서 뒤엉켜 버리고 만다. 그래서, 세 사람의 후쿠오카 산책은 인간이 함부로 규정할 수 없는 영역, 선을 넘나들며 느끼는 자유로움을 인지하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소담의 대사에 나오는 것처럼 너무 긴장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여행 같은 작품이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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