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시그널[CLASSI그널]

약업닷컴 홈 > 팜플러스 > 문화

베토벤 탄생 250주년

피아니스트 베토벤

편집부

기사입력 2020-10-30 09:32     최종수정 2020-10-30 09:46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클래시그널] 우리는 베토벤(1770-1827)을 우선적으로 작곡가로 인식합니다. 그가 대단한 실력을 갖춘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자주 언급되지만 대부분 간단한 언급 정도에서 끝나곤 하지요. 물론, 베토벤은 기본적으로 작곡가의 삶을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났던 그의 피아노 실력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지만 그의 목표가 최종적으로는 피아니스트가 아닌, 작곡가가 되는 것에 있었음은 분명하지요. 

1792년, 스물을 조금 넘긴 그가 고향인 독일 본을 떠나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했던 중요한 이유는바로 작곡가 하이든(F. J. Haydn, 1732-1809)에게 작곡을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베토벤이 고향을 떠나기 전, 후원자였던 발트슈타인 백작(F. Waldstein, 1762-1823)이 그에게 쓴 유명한 글에서도 베토벤이 나아가야 할 길은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하이든의 손을 통해 모차르트의 정신을 얻으십시오.” 

발트슈타인 백작의 애정 어린 글처럼 베토벤은 결국 위대한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빈에서 활동하던 초기에 그가 얻었던 명성은 작곡가로서 얻은 것이 아니라, 피아니스트로서 얻은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녹음 기술이 나오기 한참 전이어서, 오늘날 베토벤의 연주를 소리로 증명해낼 수는 없지만 다행히 피아니스트 베토벤이 얻었던 명성을 증명해주는 일화는 제법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당대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었던 겔리네크(A. J. Gelinek, 1758-1825)의 회상이지요.

당시에 빈에서는 피아니스트들이 한 무대에서 겨루는 경연이 유행이었는데 한 경연에서 겔리네크는 베토벤과 맞붙게 됩니다. 그는 베토벤에게 패배했는데 이후 이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습니다. “그는(베토벤) 악마와 손을 잡은 모양이다. 나는 그 누구도 이렇게 연주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베토벤은 내가 준 주제로 즉흥 연주를 펼쳤는데 이는 모차르트의 즉흥연주에서조차 듣지 못했던 것이었다. … 그는 연주에서 어려움들을 극복해냈으며, 우리가 꿈꿔보지도 못했던 연주 효과를 이끌어냈다.”

베토벤의 피아노 연주 스타일은 어땠을까요? 전기작가 셰이어에 따르면, 베토벤의 연주 스타일은 강력하고 화려하며 상상력이 풍부하였고, 이는 당대에 유행하던 달콤하고 섬세한 스타일과 대조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음악학자 요스트도 “베토벤의 피아노 연주는 힘과 열정으로 (청중들을) 매료시켰다” 라고 그의 연주를 정리한 바 있지요. 바로 위에서 언급된 겔리네크의 회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베토벤은 즉흥 연주에 매우 능했으며, 청중을 사로잡는 힘이 대단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베토벤이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높은 재능을 가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의 피아노 실력이 재능만으로 완성된 것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베토벤이 그의 대표적인 제자 체르니(C. Czerny, 1791-1857)에게 말했던 것처럼, 엄청난 연습이 뒷받침된 결과였지요. 베토벤이 정확히 몇 살 때부터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연습하기 시작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7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4~5세 무렵부터 피아노 연습을 했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어린 베토벤의 첫 스승은 음악가였던 그의 아버지였는데, 불행하게도 아버지의 교육은 폭력적이었고 가혹했습니다. 그는 어린 아들을 때려가며 피아노 연습을 시켰고, 밤 12시에 술에 취한 채 집에 들어와 곤히 자고 있던 아들을 깨워 피아노 연습을 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 같았으면 아동학대에 해당되었을 법 합니다. 

                     (피아노를 치는 어린 베토벤: Erich Nikotwoski 작품으로 추정됨.
                     <출처: Beethoven-Haus Bonn>

10대 초반이 되자 베토벤의 연주 실력은 그를 아직은 어리지만 전문 음악가 대접을 받게 해 주었고, 음악 교육에 있어 아버지의 영향력을 조금씩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훌륭한 스승 네페(C. G. Neefe, 1748-1798)를 만나 작곡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지요. 네페는 기본적으로 작곡 선생님이었지만 피아노도 가르치는데 그가 사용했던 교제는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C. P. E. Bach, 1714-1788)가 지은 피아노 교본(Versuch über wahre Art das Clavier zu spielen)이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베토벤도 체르니를 가르치며 이 교본을 사용하지요. 흥미로운 것은 베토벤에게 피아노 교본을 만들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의 비서였던 쉰틀러(A. Schindler, 1795-1864)에 의해 전해진 것인데, 정말 아쉽게도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만약, 베토벤이 피아노 교본을 완성했더라면, 베토벤의 연주 기법 등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젊은 시절 찬란했던 베토벤의 피아노 연주는 청각 장애로 인해 점점 방해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1815년, 자신의 가곡 <아델라이데>의 피아노 반주를 맡았던 것이, 피아니스트로서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록, 이후 공식적인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인 모임에서는 여전히 뛰어난 즉흥연주를 선보이곤 했습니다.

걸출했던 베토벤의 피아노 연주는 이미 오래 전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는 작곡을 통해 그의 예술을 악보에 구현해 내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기사공유   트위터   페이스북   싸이공감   구글
독자 의견남기기

독자의견쓰기   운영원칙보기

(0/500자) 로그인

리플달기

댓글   숨기기

독자의견(댓글)을 달아주세요.

뉴스홈으로    이전페이지로    맨위로

인기기사    댓글달린기사    공감기사

실시간 댓글 더보기

구인    구직   매매

사람들 interview

"세계 최초 ‘5가 백신 마이크로니들 시스템’ 개발 착수"

한국의 강점과 혁신을 활용해 국제보건을 위협하...

더보기

오피니언 더보기

의약정보 더보기

약업북몰    신간안내

Pharmaceuticals in korea 2020

Pharmaceuticals in korea 2020

약업신문은 최근 영문판 ‘Pharmaceuticals in korea ...

이시각 주요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