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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베토벤과 메트로놈>

편집부

기사입력 2020-11-27 12:49     최종수정 2020-11-27 12:56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음악 감상의 즐거움 중 하나는 한 작품을 다양한 연주자의 해석으로 감상해 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즐거움을 위해 사람들은 많은 음반을 모으기도 하지요. 유튜브 같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의 등장은 이러한 비교 감상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서 ‘베토벤 교향곡 5번’을 검색하면, 하루에 다 듣기도 어려울 정도의 많은 영상 및 음원이 등장합니다. 수많은 베토벤 교향곡 5번을 감상한다는 것은, 결국 수많은 ‘다른’ 해석을 접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제일 먼저 인식되는 ‘다름’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이 ‘빠르기’ 즉 ‘템포’라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제일 먼저일 뿐 아니라, 가장 쉽게 인식되기도 하는 ‘다름’이죠. 이는 템포의 변화에 따라 곡의 인상이 크게 좌우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에 연주에 있어 템포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늘 자리하지요.

작곡가들은 연주자들이 어떤 템포로 연주해야 하는지 적어 놓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이태리어로 적어 놓았죠. 우리에게도 친숙한 Allegro (빠르게), Adagio (느리게)와 같은 단어로요. 그런데,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빠르고 느린 ‘정도’를 정확히 알기가 힘들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문제는 한 작품이 탄생한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더욱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령, 베토벤이 생각했던 ‘빠르다’가 그가 사망한 지 200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날의 음악가가 생각하는 ‘빠르다’와 같을까요? 

베토벤(1770-1827) 생전에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줄 수 있는 획기적인 발명이 있었습니다. 바로 메트로놈(Metronome)이었죠. 독일 출신의 멜첼(J. N. Mälzel, 1772-1838)이 1815년 특허를 낸 이 제품은 특정 음가가 1분당 몇 번 연주되어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60 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면, 4분 음표가 1분에 60번 연주되어야 한다는 뜻이었죠. 이런 방식을 통해 작곡가가 원하는 템포의 ‘정도’를 기존의 이태리어 템포 표기보다 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베토벤은 메트로놈의 출현을 무척이나 반겼습니다. 이는 1817년 12월에 그가 썼던 한 편지에서, 이태리어 템포 표기에서 느끼는 그의 답답함과 메트로놈이 있으니, 더 이상 이태리어로 템포 표기를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드러나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지요. 이 시점에, 베토벤은 그 때까지 작곡된 그의 교향곡들(1-8번)과 7중주, 그리고 현악 사중주들(Op. 18/1-6, Op. 59/1-3, Op. 74, Op. 95)의 템포를 메트로놈을 이용해 표기했습니다.

                        멜첼이 1815년에 만든 메트로놈. (public domain)

그런데, 위에서 언급된 편지에서의 결심과는 달리, 베토벤은 1817년 이후에도 이태리어 템포 표기를 계속해서 이용하였습니다. 이태리어 템포 표기에 메트로놈 표기가 더해진 것은 9번 교향곡 등 소수의 작품에 불과했지요. 베토벤이 왜 이러한 태도를 보였는지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1826년, 베를린에서는 처음으로 연주된 그의 교향곡 9번이 성공을 거두자, 이 소식을 들은 베토벤이, 그 공연에서의 성공은 자신이 전달해 준 메트로놈 표기 덕분이라고 편지에 썼던 것을 보면, 그의 태도는 의아하기도 하지요. 아쉽게도 메트로놈 표기가 포함된 베토벤의 작품은 전체 작품 중 일부에 그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베토벤이 어떤 템포를 원했는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된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베토벤의 메트로놈 표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요? 베토벤이 메트로놈의 출현에 열광했던 것과는 달리, 낭만주의 시대를 거쳐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그의 메트로놈 표기는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주된 이유는 메트로놈으로 표기된 그의 템포가 ‘너무 빠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너무 느린 메트로놈 표기도 존재해서 논쟁이 되곤 하는데, 메트로놈 표기의 수용 여부와 관련하여, 이는 별다른 이슈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C. Kleiber, 1930-2004)는 “바보들은 메트로놈이 너무 빨라질 때는 그것이 고장났다고 확신한다. 너무 느린 건 절대로 문제 삼지 않으면서 말이다.” 라고 지적하기도 했죠. 

베토벤의 너무 빠른 메트로놈 표기를 설명하는 여러 주장들이 있었습니다. “Allegro와 같은 빠른 템포의 곡에서는 제시된 메트로놈 표기보다 2배 느리게 연주해야 한다.” 라는, 극단적이고 황당하기까지 한 주장도 있었는데요. 보다 설득력 있고 숙고해볼 가치가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주장입니다. “베토벤은 실제 연주된 템포를 표기한 것이 아니라, 그가 머리 속으로 생각한 템포를 메트로놈을 통해 적은 것이다. 생각 속의 템포는 실제의 템포보다 조금 더 빠르다.”

베토벤의 메트로놈 표기는 베토벤 당대의 악기로 연주하는, 이른바 원전 악기 연주가 본격화된 1980년대 후반 이후 보다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휘자 라이보비츠(R. Leibowitz, 1913-1972)가 1961년 베토벤 교향곡 전곡 녹음에서 시도했던 것처럼, 베토벤의 메트로놈 표기를 준수하고자 하는 시도가 그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당시로서는 과감했던 시도로 여겨졌지요.

베토벤의 메트로놈 표기가 템포에 대한 그의 의도를 담고 있다고 할 때, 이 표기를 따르지 않은 연주들은 자칫 ‘틀린’ 연주로 여겨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틀리다’ 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템포에 있어 베토벤의 의도와는 ‘다른’ 연주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름’은 한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을 더 넓혀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오지요.
이제는 서서히 저물어가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 다양한 템포로 재해석된 그의 음악을 찬찬히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음반 추천> 베토벤 교향곡 5번 중 1악장.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르네 라이보비츠 지휘.
빠른 템포를 시종일관 유지하며, 날렵한 5번 1악장을 들려주는 연주입니다.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이 다소 흐트러질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템포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모습도 인상적이고요. 베토벤의 메트로놈 표기를 존중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자 노력했던 라이보비츠는 베토벤 교향곡 연주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더욱 부각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4JRgLmCA1I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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