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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들이 ‘무용’을 관람하는 법

편집부

기사입력 2020-12-04 12:02     최종수정 2020-12-04 12:22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시각장애인들이 ‘무용’을 관람하는 법

‘최근 무용은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 준 일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대학 선배로부터 “심포지엄을 하는데 네가 꼭 와서 보면 좋겠어” 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주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무용음성해설’. ‘어떻게 시각장애인들이 무용을 본다는 거지? 무용은 눈으로 감상하고 느껴야 하는데’라는 의아함이 있었지만 꼭 보면 좋겠다는 말에 참석하기로 했다. 
 
    <사진출처 https://www.scottishballet.co.uk >

무용음성해설이란 시각장애인이 작품을 충분히 느끼고 관람할 수 있도록 무대 위 무용수의 움직임, 상황, 의상 등을 예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란다. 영국 노던 발레단, 미국 피츠버그 발레단 등 해외에서는 20년 전부터 이 분야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공연 전 ‘터치투어(시각장애인들이 무대 소품을 직접 만져보거나 무용 동작을 배워본 뒤에 관람하는 방식)’와 같은 프로그램을 개발해 무용 음성 해설 공연을 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영국에서는 무용음성해설이 법제화되어 있어서, 일정 횟수 이상의 공연에서 반드시 무용음성해설을 해야 한다.
 
심포지엄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이 음성 해설로 움직임과 이미지를 어떻게 느끼는지, 무용음성해설이 왜 필요한지 사회적 필요성을 주제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생각보다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는데 원래 동작 예술가들은 아무래도 제스처가 적극적이다보니 화기애애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용음성해설’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주제가 모두를 숙연하게도 숙고하게도 만든 것 같았다. 
 
무용수들은 그동안 자기만족만 생각하며 춤을 춘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관객을 생각하면서 춤추기보다는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 무대에 올랐고, 관객 중에 시각장애인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적잖이 놀란 듯 했다. 기획자들은 무용 공연을 기획하는 첫 단계부터 무용음성 해설가들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언급하며 왜 이제껏 시각예술이라는 한계에 스스로 갇혀 유연하고 열린 생각을 갖지 못했었는지 안타깝다고 했다. 

                             <사진출처 : touch-tour-insight-2@-jo-dean>

심포지엄 중에 눈가리개로 눈을 가리고, 무용 시연을 듣는 시간도 있었다. 이것 역시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참석자들에게 신선하고 놀라웠는데 이제껏 눈으로 보던 익숙한 세상이 새로운 차원에서 열린 느낌이랄까. 시적인 표현으로 무용수의 동작을 듣는 것은 눈으로 직접 보는 것 보다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눈으로 좇느라 미처 느끼지 못했던 음악과 동작의 조화가 또 다른 방식으로 머릿속에 펼쳐지는 것은 말 그대로 색다를 경험이었다.  
  
또한, 가장 심도 있게 논의된 부분은 무용음성 해설가 육성에 대한 것이었다. 무용음성 해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용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글짓기 능력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무대에서 실시간으로 공연 중인 춤을 객관적이면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관찰하고 이를 재해석해 글로 이어주는 창의성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에서 활약한 무용 음성 해설가 ‘엠마-제인 맥헨리’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예술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음성 해설은 장벽 없는 공연 경험을 가능하게 해 준다. 무용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청각, 시각, 촉감 및 후각을 통해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게 된다. 만약 우리가 오감 중 어느 하나라도 빼앗긴 상황이 생기더라도 여전히 마음속에 한 장의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그것은 완전한 그림이 아니다.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이 음성해설가와 더불어 모든 관련 해설가의 역할이다.  우리가 하는 도전은 찰나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정보를 구두로 설명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이 또는 적게 설명할 것인가가 언제나 관건이다. 작품의 전반을 언어로 그려내면서, 순간을 부각시키고, 공백을 메우는 동시에 다른 감각들도 함께 조화를 이뤄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관객이 완성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겨두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어떤 공연이든 한 순간에 여러 활동이 겹겹이 진행된다. 우리의 역할은 시각 장애인 관객이 공연 속에서 여행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다.”라고. 


    <사진출처 : www. pbt. org>

무용음성해설은 단순한 동작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이 풍부한 상상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배경을 만들어 주는 시각을 청각으로 바꾸어 표현하는 힘은 순발력, 창의성, 언어적 표현력까지 필요해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직업이지만 그만큼 예술의 가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일임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느낀 점은 첫째, 예술 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각자의 완전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유연하고 열린 생각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둘째, 다양한 시각과 관용, 포용이 어우러질 때 모두가 동등하게 예술을 즐기는 사회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용을 글로 표현하고, 또 글로 표현된 무용을 머리 속에서 그려내려면 어린 시절부터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다양한 책들도 읽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은 공연을 즐기는 관객, 해설자 그리고 공연자 모두에게 녹록치 않겠지만 우리에게 새로운 차원의 예술로 걸어들어가는 길을 열어주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의 온라인 수업에서 선생님께서 ‘파랑,초록,노랑 등의 색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색깔을 이야기 해 줄까요’라는 질문을 아이들에게 던지는 것을 들었다. 우리 아이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아이와 같은 반 친구들이 글로 표현한 파랑,초록, 노랑은 어떤 향기와 리듬, 움직임을 달고 있을지 몹시 궁금하다. 


무용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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