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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빛과 소금: 세상을 따듯하고, 맛있게까지 만들어야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2019-06-19 09:38     최종수정 2019-06-19 10:16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내가 1966년에 졸업한 제물포 고등학교의 교훈은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었다. 모자에 붙이는 모표(帽標)도 세 개의 소금 결정 한 가운데에 고(高)자를 등대(燈臺) 모양으로 써서 만들었다(그림 참조).

1954년에 문을 연 이 학교는 이미 5회 졸업생이 서울대에 전체 수석으로 합격한 바 있고, 1966년에는 300명의 졸업생 중 80여명이 서울대에 합격하여 ‘학식’ 면에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이 학교에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특별히 ‘양심’ 교육을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이 학교는 국내 최초로 195년부터 무감독(無監督) 시험 제도를 도입하여 지금까지 실시하고 있다. 무감독 시험이란 교사가 시험지와 답안지를 나눠주고 교실 밖으로 나간 뒤, 시험 종료 10분 전에 돌아와 답안지를 회수하는 제도를 말한다.

첫 무감독 시험에서 전교생 569명 중 무려 53명이 60점 이하를 받아 낙제를 했는데, 이 때 길영희 교장 선생님은 “낙제생 여러분들이야말로 믿음직한 한국의 학도”라며 그들의 정직성을 칭찬했다고 한다.

이 제도는 한 때 대학 입시 경쟁이 과열되면서 내신 성적 형평성과 공정성 문제로 폐지의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학생, 학부모, 교사 및 동문이 합심하여 문제점을 보완함으로써 오늘날까지 60년의 역사를 이어 오고 있다. 현재 전국에서 10여개 중고교가 이 제도를 따라 하고 있는데, 이에 제물포고 동창회에서는 이 무감독 시험 제도를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록하려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무감독 시험제와 함께 제물포고가 시행한 또 하나의 양심 교육은 도서관을 완전 개가식 (開架式)으로 운영하는 것이었다. 개가식이란 도서관 이용자가 사서(司書)의 도움 없이 자유롭게 서가(書架)에 가서 보고 싶은 책을 꺼내 읽은 후 스스로 되꽂아 놓는 제도를 말한다.

더러 책이 분실되기도 했지만 학교측은 학생들의 양심 훈련을 위해 고집스럽게 이 제도를 지켰다. 이제 와 돌아보니 제물포고는 학식과 양심 (정직) 교육의 파라다이스였다.

양심 교육과 관련해서 떠 오르는 시(詩) 한편이 있다. 1952년 부산 피난 시절에 고 홍문화(洪文和) 교수님이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의 졸업 앨범에 써 주신 ‘소금에 붙이는 독백’이라는 격려시(激勵詩)이다.

<소금에 붙이는 독백>
Na의 양성(陽性)과 Cl의 음성(陰性)을 
한 가슴에 간직하면서도 
전설의 호수처럼 고요한 중성(中性)
환경의 온도야 높거나 말거나 
한결같은 용해도를 지키는 절개(節槪). 
너!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의 이마에 즐겨 결정(結晶)하는 심사(心事)여
아! 그 이름은 소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에 쓰리오 
땅에 버리어 밟힐 뿐이니….
세상에 들끓는 
온갖 싱거움과 오탁(汚濁)을 
도맡아 조미(調味)하고 방부(防腐)해 주려무나!

나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세 가지 이유로 감동한다. 우선은 중성, 용해도, 결정성, 방부력과 같은 소금의 특성을 아름다운 시어(詩語)로 승화시키신 교수님의 문학적 천재성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오탁을…방부해 주려무나!”하며 전쟁의 와중(渦中)에서도 졸업생들에게 세상의 방부제가 되라고 정직성을 당부하신 데에 감동한다.

그러나 가장 감동스러운 부분은 “세상의 온갖 싱거움을 도맡아 조미해 달라’고 당부하신 대목이다. 교수님은 제자들에게 소금의 방부 작용에 머물지 말고 소금의 조미 작용까지 배움으로써 ‘세상을 살 맛나는 세상으로 만드는’ 리더가 되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품격 높은 가르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빛과 소금‘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나온다. 나는 요즘 이 말씀을, 크리스찬은 1) 빛 (등대)처럼 세상을 밝힘으로 길 안내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 ‘따듯함’까지 전파해야 하며, 또 2) 소금처럼 세상을 썩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맛갈스럽게 조미’까지 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고 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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