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1등의 운명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2009-05-06 09:08     최종수정 2010-05-10 13:28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절친한 두 친구가 밀림 속을 탐험하고 있었다. 그때 저만큼 앞에서 먹이를 발견한 굷주린 호랑이가 바람을 가르며 달려 왔다. 그러자 한 친구가 갑자기 허리를 굽히고 운동화 끈을 고쳐 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다른 한 친구가 “아니 어짜피 호랑이의 걸음을 이기지 못 할텐데 운동화 끈은 왜 조여 매는가?” 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껄걸 웃으며 “자네보다 빨리 뛰기만 하면 나는 살 수 있네”라고 말하고 쏜살같이 혼자 도망쳐 버렸다. 이 이야기는 얼마 전 그만 둔 전광우 금융위원장이 쓴 책, “왕도는 없고 정도만 있다”의 한 구절이다.

이 책은 몇 년 전 교회의 ‘크리스챤 CEO 과정’에서 같이 공부하던 중에 저자로부터 받았다. 이 이야기는 냉랭해져 가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 같은 이야기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끝난다고 한다. “바람처럼 달려오던 호랑이는 뒤에 처진 사람보다는 앞에 뛰어가는 건강한 사람이 더 맛있을 것 같아 열심히 앞 사람을 쫓아갔다”.

멋진 반전이다. 의리 없는 친구가 죽게 되었다니 고소하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교육에 극성인 우리나라 젊은 엄마들이 떠오른다. 엄마마다 모두들 자기 애를 일등 짜리 애를 만들 욕심으로 과외다 뭐다 해서 안 시키는 것이 없다. 일등 만드는 것이 정말 좋은 일인지 여부도 잘 모르면서 말이다.

공부도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러나 열심히 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고 본다. 나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했어도 농구 선수는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키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천부적으로 두뇌가 나쁘거나 적성이 다른 곳에 있는 아이는 아무리 닥달해도 공부를 잘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아이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는 것은 날보고 “너도 훌륭한 농구 선수가 될 수 있으니 열심히 노력해라” 라고 하는 것처럼 아이의 인생을 망치는 말이 될 것이다.

과외 같은 사교육의 문제는 돈이 많이 든다는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밤늦게까지 계속되는 공부로 아이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위협받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초·중·고 학생들을 지나치게 밤 늦게까지 공부시키는 것은 일종의 아동 학대 행위가 아닐까? 따라서 마음 같아서는 밤 늦게까지 과외 시키는 부모를 모두 아동 학대 죄로 처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한창 건강하게 자라나야 할 시절에 이런 학대를 받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젊은 시절의 학대에 의한 후유증을 앓아야 할지도 모른다. 통계까지는 모르지만 점점 눈이 나빠지고 등뼈가 휘는 등 건강에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를 조금 확대 해석하자면 지나친 과외는 모든 국민을 쇠약한 체질로 만드는 원흉이다. 몸이 쇠약해지면 병에도 잘 걸릴 것이니 과외는 또한 국민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원인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애가 실력이 달려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인 경우, 이를 가만히 두고 보는 걸 좋아할 부모는 없을 것이다. 또 조금만 더 알려 주면 실력이 늘어 나 공부에 자신감을 갖게 될 것 같은 경우에도 과외를 시키지 말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내 부탁은 과외를 시키더라도 제발 웬만큼 시키라는 것이다.

애를 일등 만드는 것이 애써 노력해서 애를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게 하는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생 후 7개월 된 예쁜 우리 손녀의 미래를 내다보며 공연한 걱정에 한 말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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