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홍랑(洪娘) <제2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9-04-10 09:35     최종수정 2019-04-10 09:35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그들은 밤새 보낸 시간이 안타까운 듯이 뜨거운 살을 더욱 뜨겁게 부볐다. 하지만 홍랑은 마음은 주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던 사내 같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선 듯 열리지 않아서다.

옥골선풍의 모습이나 품행으로 봐 자신이 신격화(神格化)하고 있는 고죽 최경창과 너무 닮아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열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홍랑과 김별장은 등만 비벼댔을 뿐 얼굴은 마주 보지 않았다. 얼굴을 마주보면 심장이 멎고 정신을 잃을 것 같아서다. 홍랑은 이미 김별장이 최경창이란 것을 확신하고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몸을 내어 놓으라면 흔쾌히 줄 마음이다.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은 이미 김별장에게 가 있었다. 김별장의 시선 하나하나에 홍랑의 마음은 바람 앞의 갈대모양 흔들렸다. 사내 시선이 와 닿는 곳의 감각이 꿈틀댔다. 가슴에 와 닿으면 가슴이 뛰고 사타구니에 와서 머물면 애액이 솟구쳐 몸이 저절로 뒤틀렸다.

지금 홍랑이 딱 그러하다. 전에 없었던 몸의 변화다. 하지만 어느새 동창이 밝아오고 있다. 김별장은 이 사또의 말이 떠올랐다. “홍랑은 고죽 최경창을 잘 알고 있어! 자네가 최경창이란 것을 알게 되면 입안의 혀처럼 놀거야. 아니 수청을 거부할지도 몰라! 신격화 할 꿈이 깨어지는 것을 싫어해 수청을 거부하고 도망칠 수도 있어 상황판단을 잘해야 되네..." 김별장은 태풍 앞의 강물처럼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이제 오랑캐들이 들끓는 국경지대로 가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사랑하고 싶은 여인에게 정을 주고 갈 수도 또한 선녀(仙女)보듯 지나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홍랑의 시의 세계는 더 알고 싶었다. “홍랑아! 너는 고죽 최경창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느냐?” “예 별장나리, 아버님께서 한미한 집안의 향반(鄕班)으로 글을 좋아하셔 소녀도 어깨너머로 시를 읽었을 뿐입니다.” “허 그랬구나. 초한가 말고 또 네가 좋아하는 시가 있느냐?” “예 소녀 평소에 존경하는 고죽 최경창님의 시를 아무데서나 낭송 할 수는 없지요! 김별장께서 꼭 원하시면 신라의 최치원의 《추야우중》(秋夜雨中)을 낭송하겠나이다.” ‘가을바람 쓸쓸하게 불어오는데 / 세상에 알아 줄 이 아무도 없네 / 깊은 밤 창 밖에는 비가 내려서 / 등잔 앞에 외로운 맘 산란하여라...’ 김별장은 홍랑의 시 낭송이 끝나자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치며 “과연 너는 홍원의 보배가 아니라 조선의 보내로다!”라고 말하고는 홍랑을 사랑스럽고 귀엽다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별장나리, 그렇게 쳐다보시면 소녀 몸둘바를 모릅니다.” “허허 내 너를 이렇게 좋아하다 임지로 가지 못할 것 같구나. 나도 최치원의 《추야우중》 시를 좋아하고 있느니라... 네 시문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구나. 그러면 네가 좋아한다는 최경창의 시는 어느 시가 그렇게 좋더냐? ”소녀 감히 최경창의 시를 말 할 자격이 아니기에 대신 정지상(鄭知常)의 《대동강》(大同江)을 낭송해 올릴까 합니다.“ ”좋고말고, 고려를 대표하는 천재시인 정지상을 말하는 것이냐? 나도 그 분을 퍽이나 좋아하느니라...“‘비 갠 둑에는 풀빛이 푸르고 / 고운님 보내자니 노래가 구슬프다 / 대동강 강물은 언제나 마를 건가 / 이별의 눈물로 물결만 더해가네...’ ”허허허, 이 사또의 말씀이 허언이 아니었구나. 나 보고 너를 보면 임지인 경성(鏡城) 가는 것도 잊을 것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는구나...“ ”아니옵니다. 소녀 아직 시문(時文)에 일천하여 이 사또께서 소녀를 어여삐 봐 주셔서 그러하였습니다. 황공할 따름이옵니다.“ 김별장 아니 최경창은 홍랑에게 점점 더 빠져 들어갔다.

늦어도 오늘은 떠나야 임지에 닿을 날짜인데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홍랑아, 너는 고려의 대시인 정지상을 알고 있으니 대단하구나! 그런데 고죽 최경창은 어떤 분인데 네가 그토록 사랑하고 존중하느냐? 그분의 시를 한번 읊어 봄이 어떠하겠느냐?” “예 김별장나리께서 그토록 원하시면 미흡한 소녀가 고죽 최경창님이 《차대동강운》(次大同江韻)이라는 시를 좋아하셨는데 그 시를 낭송해 올리겠습니다.” ‘강 언덕엔 한가로이 버들만 드리웠는데 / 조각배에선 연밥 따는 노래를 다투어 부르네 / 붉은 연꽃 다 떨어지고 하늬바람도 차가워지니 / 날 저문 모래 벌엔 흰 물결만 일어나네’ 과연 한 획도 착오가 없는 자신의 시였다.

김별장은 벌떡 일어나 홍랑을 부둥켜안고 뒹굴고 싶으나 지금까지 참고 견딘 것이 아쉬워 혀를 깨물고 시치미를 떼고 “그랬구나! 아주 훌륭한 차운(次韻)이로다...”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이 대꾸하여 주었다.

그런데 김별장의 대꾸에 홍랑의 반응이 차갑고 싸늘하다. “김별장께선 시문에 뛰어나다고 이 사또께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셨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사옵니다? 이 고죽의 시를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실망이 크옵니다.” 뾰로통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아니다. 나도 그 분의 시를 평소에 대단히 좋아했느니라. 자자 이제 그만 앉아라. 내 술 한잔 따라 주겠느니라...” 이때다. “김별장 이제 경성으로 떠날 채비를 해야지...” 이 사또의 길 떠날 채비를 서두르라는 재촉이다.

홍랑은 이 사또의 김별장에게 임지로 떠날 채비를 하라는 말에 저의기 놀라는 표정이다. 김별장이 고죽 최경창이 분명한데 신분이 밝혀지기 전에 헤어지면 아쉬움이 커질까 두려움 때문이다. 지금 헤어지면 다시는 만날 기회가 없을 수도 있어서다.

사내가 원하기 전에 몸을 열어 줄 것을 후회가 강물처럼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두 남녀는 서로 표정을 살필 뿐 말이 없다. 입을 열면 할 말을 다 못해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슬픈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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