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음악안에서의 완벽한 삶, ‘쉘부르의 우산’과 미셸 르그랑

편집부

기사입력 2021-04-16 09:31     최종수정 2021-04-16 09:43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비가 오는 날이면 한 번씩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몇 년 전, ‘라라랜드’(데미언 셔젤, 2016)에 영향을 주었다는 이유로 많이 회자되었던 작품, ‘쉘부르의 우산’(자크 드미, 1964)이다. 고전의 힘이랄까. 처음 개봉한 지 반 세기가 훨씬 넘은 작품이지만 그 영상미와 음악은 관객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자크 드미 감독은 음악감독인 미셸 르그랑과 함께 이 영화를 모든 대사가 노래로 진행되는 ‘송 스루(song through)’ 방식으로 기획한다. 이는 오페라 공연의 감흥을 극장에서 느낄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배우를 비롯한 모든 제작진들에게 도전적인 시도였다. 

1950년대 말, 프랑스의 항구도시 쉘부르에서 엄마를 도와 우산 가게를 하는 아가씨 ‘쥬느비에브’(까뜨리느 드뇌브)는 자동차 수리공 ‘기’(니노 카스텔누오보)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알제리 독립전쟁으로 기에게 소집영장이 날아오자 두 사람은 눈물의 이별을 하게 된다. 기의 아기를 가진 쥬느비에브는 날마다 전장으로부터 편지를 기다리지만 소식은 거의 오지 않고, 그 사이에 보석상 ‘까사르’(마크 미셸)가 고백을 해 온다. 

‘쉘부르의 우산’은 프랑스인들에게 비극적이었던 현대사를 배경으로 당대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낭만성을 탈피해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두 남녀를 담담하게 묘사한다. 세월이 흘러 조우했을 때, 그들은 의외로 건조해 보인다.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룬 쥬느비에브와 기에게 현재의 행복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쉘부르의 우산’은, 조금은 쓸쓸한, 해피엔딩이다. ‘라라랜드’의 엔딩에도 이러한 감수성이 잘 묻어나 있다. 

미셸 르그랑은 지휘자이자 재즈 피아니스트이며 프랑스 누벨바그의 중요한 작곡가로, 200여 편이 넘는 영화와 TV 드라마에 참여했다. ‘쉘부르의 우산’에서는 저 유명한 테마곡을 다양한 악기와 스타일로 변주해 삽입했다. 쥬느비에브와 기의 이별 장면에서 사용된 슬픔을 폭발시키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Je Ne Pourrai Jamais Vivre Sans Toi(I’ll wait for you)‘는 멜로드라마 OST의 정석과도 같다. 

‘쉘부르의 우산’은 ‘사운드 오브 뮤직’(로버트 와이즈, 1966)에 아카데미 음악상을 내주었지만(제작년도는 ‘쉘부르의 우산’이 빠르지만 미국 개봉시기 때문에 같은 해 후보에 올랐으므로) 이후, 미셸 르그랑은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노먼 주위슨, 1968), ‘42년의 여름’(로버트 멀리건, 1972), ‘엔틀’(바브라 스트라이샌드, 1983) 등으로 3회나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약 2년 전 타계할 때까지 연주와 작곡에 매달렸던 그는 어릴 적 바람대로 완벽히 음악 안에서 평생을 살았고, 이제 그의 음악과 함께 불멸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윤성은의 Pick 무비

우리 시대의 성리학은 무엇인가, ‘자산어보’

누가 다산 정약용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면, 실학사상이나 목민심서 등 몇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을 것이다. 정조와의 우정이나 긴 유배 생활, 방대한 저술 활동도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형 정약전에 대해서는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정약용의 평생 벗이자 멘토였던 정약전은 동생과 마찬가지로 신유박해 때 흑산도로 유배되었다가 결국 해배되지 못하고 섬에서 숨을 거둔 비운의 학자다. 그러나 유배 기간에도 그는 강진으로 간 정약용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교류한 바 있다. 

동생이 많은 제자를 배출하며 그들과 방대한 양의 저서를 남긴 반면, 형은 후학 양성에 뜻을 두지 않고 직접 물고기, 소나무 벌채 정책 등을 깊게 파고 들었는데, 그렇게 탄생한 ‘자산어보’, ‘송정사의’ 등은 서민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실용적인 저서들이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보낸 나날들에 관한 영화적 기록으로서 그가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의 남 달랐던 철학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동주’(2015)에서 송몽규, ‘박열’(2017)에서 가네코 후미코 등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인물을 전면에 내세웠던 이준익 감독은 또 한 번 ‘정약전’(설경구) 옆에 흑산도 청년, ‘창대’(변요한)를 세운다. 창대는 양반의 서자로 바다 생물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인물이다. 성리학을 추종하는 그는 처음에 서학을 따른다는 죄목으로 유배 온 정약전을 배척하지만 정약전이 각자가 잘 아는 것들을 가르쳐 주는 ‘거래’를 제안하자 결국 합의하고 그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영화는 중반 이후까지 정약전과 창대가 서로의 지식을 교환하면서 우정을 쌓아나가는 과정을 따뜻하고 아기자기하게 풀어낸다. 그러나 후반부에는 친부를 따라 섬 밖에 나간 창대가 겪게 되는 가치관의 혼란이 여실히 묘사된다. 성리학을 갈고 닦아 관직에 나가고자 했던 그는 지위를 이용해 자신들만 배 불리는 벼슬아치들의 부정부패를 보고 현실의 참담함을 깨닫는다. 

책상 공부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서서히 체험하게 되는 창대의 좌절, 유배지에서 병이 깊어가는 정약전의 쓸쓸한 말년이 교차되면서 영화는 여러 질문들을 남긴다. 학문의 목적은 무엇이며, 훌륭한 학문은 무엇인가. 또한, 우리 시대에 학문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조선시대 성리학처럼, 너무 힘이 세서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가치관과 관습들은 무엇인가. 

‘자산어보’는 ‘동주’의 성공을 모델 삼아 흑백으로 제작되었다.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섬과 바다의 절경을 수묵화처럼 감상해야 하는 대신 인물들의 감정선은 더 섬세하게 드러났다. 장면 장면의 메시지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데도 차분한 흑백 영상이 한 몫을 한다. 무엇보다 영화관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참 고마운 작품이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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