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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관악 약대의 아버지 김영은

기사입력 2016-12-07 09:38     최종수정 2016-12-07 18:39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은 현재 세계의 약대 중에서 교수 1인당 발표 논문수가 가장 많은 대학으로 공인 받고 있다. 1915년에 첫걸음을 뗀 조선약학강습소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1980년대까지만 해도 존재감이 미미하였던 우리나라의 약학이 이처럼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것은, 1975년 8월 서울대 약대를 연건 캠퍼스에서 관악 캠퍼스로 이전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1968년에 마련된 서울대학교 종합화 10개년 계획에 따르면 당시 서울대학교는 서울, 경기 등지에 분산되어 있던 각 단과대학들을 세 개의 캠퍼스로 모으고자 하였다. 즉 농대(수원 캠퍼스), 의대, 치대, 약대, 간호대, 생약연구소 등(연건 메디컬 캠퍼스)를 제외한 단과대학은 모두 관악산에 마련하는 신 캠퍼스로 모으고자 하였다.

그러나 약대 교수들은 연건 메디컬 캠퍼스를 떠나 관악 캠퍼스로 합류하고 싶었다. 그것은 장소가 비좁아 장래 발전 가능성이 낮은 연건 캠퍼스를 벗어나 광활한 관악 캠퍼스에서 많은 타 학문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발전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연건 캠퍼스에 남았다가는 의대의 등살(?)에서 벗어 나기 어렵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시 약대의 김영은(金泳垠) 학장(재임기간 1969.4-1972.9)은 틈만 나면 동숭동에 있는 서울대학교 총장실을 찾아가 ‘총장님, 약대도 관악으로 보내주지 않으려거든 내 학장직을 잘라 주시오’ 하며 강경하게 관악 이전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메디컬 캠퍼스의 명분이 워낙 그럴듯하였고, 더구나 당시 서울대학교 총장이 의대 출신인 한심석(韓沁錫) 박사이었기 때문에, 약대가 메디컬 캠퍼스를 벗어나 관악으로 이전하겠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질 수 없었다.

이 지점에서 때로는 벽창호라고 불릴 만큼 독특한 개성의 소유자이었던 김영은 학장의 성격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그는 또다시 총장실을 방문하여 총장에게 약대의 이전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총장실 앞 복도가 시끄러워져 문을 열고 내다 보니 상과대학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려고 몰려오고 있었다. 당시 상과대학은 관악 캠퍼스로 이전하면서 경제학과는 사회대학으로, 경영학과는 경영대학으로 나뉘게 결정되어 있었는데, 이에 결사 반대하는 상대 학생들과 동문들이 총장실로 쳐들어 온 것이었다.

갑작스런 사태에 수위 등도 당황한 나머지 어쩌지 못하고 있을 때, 김영은 학장이 총장실 문을 열고 나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학생들에게 대성 일갈하였다. “도대체 자네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 난리를 치나? 당장 물러가지 못하나?” 갑작스런 김학장의 위세에 눌린 학생들은 주춤하게 되었고, 그 사이에 정신을 차린 수위 등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었다. 김영은 학장이 총장실 난입을 막아낸 것이다. 총장은 휴~ 하며 가슴을 쓸어 내렸을 것이다.

며칠이 지난 뒤 김 학장이 다시 총장을 찾았더니, 총장이 먼저 김 학장에게 “약대가 꼭 관악으로 가야겠습니까?” 물었다. 김 학장이 ‘물론입니다’ 대답했더니 총장은 "그럼 건설 본부장을 한번 만나 보세요” 하더란다. 총장은 총장실 점거 사태를 막아 준 김 학장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것 같았다고 한다. 당시 건설 본부장은 서울대의 관악 이전을 위해 박정희 대통령이 특별히 임명한 월남전 참전 예비역 장군이었는데, 김 학장이 사전에 설득해 놓았기 때문에 약대의 관악 이전에 순순히 찬성하였다.

마침내 1971년 4월에 시작된 1단계 건설 공사에 포함되지 못하였던 약대가, 2단계 건설 공사에 포함되어 1974년 4월에 공사에 착수, 1975년 8월 관악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당시 김영은 학장이 상대 학생들의 총장실 난입을 막아내는 해프닝이 없었다면 서울약대가 연건동을 벗어나 관악으로 이사 올 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고 김영은 학장을 ‘관악 서울 약대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다.

이상은 며칠 전 당시 학생담당 학생과장이었던 김병각 교수가 김영은 학장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라며 내게 전해 준 내용이다. 역사의 뒤안길은 돌아볼수록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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