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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서울대 약대생들의 한국전쟁 참전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2017-05-24 09:38     최종수정 2017-05-24 09:53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1950년 6월 초 대한민국 정부는 사립 서울약학대학을 국립서울대학교에 편입시키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곧 6•25전쟁이 발발하여 서울이 공산 치하에 들어가는 바람에 부득이 9•28수복 직후인 1950년 9월 30일에 편입 조치가 시행되었다. 동시에 문교부는 한구동(韓龜東) 교수를 국립 서울 약대의 임시책임자로 임명하였다.

서울대학교에 편입된 약학대학이 한창 개교 준비에 바쁠 때에 전세(戰勢)가 다시 역전되어 1951년 1월 약학대학도 부산으로 피난을 떠나게 되었다(1•4후퇴). 이 때 한구동 교수가 꼼꼼히 실험기구와 책들을 챙겨 운반한 덕분에 약학대학은 부산 피난 시절에도 비교적 충실한 실험실습 교육을 할 수 있었다.

6•25전쟁에는 일부 서울대 약대 재학생들도 참전하였다. 송득규(宋得奎, 1924년 5월 19일생, 함북)는 1948년 서울약학대학에 입학하여 전쟁 당시 약학대학 3학년생이었다. 그는 1950년 7월 육군 제3사단의 일원으로 참전하였다가 1950년 10월 3일 전사하였다.

그의 이름과 사진은 약학대학의 『단기 4283년 학생사진첩』에 54번 학생으로 기재되어 있다. 그의 위패(12-7-043)는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져 있으며, 그의 이름은 전쟁 기념관의 전사자 명비(銘碑, 025-ㄱ-036)에 새겨져 있다.

박원종(朴源鍾, 1931년 5월 18일생, 경남 진주)은 진주중학교를 마치고 1950년 서울약학대학에 입학하여 당시 1학년생이었다. 그는 진주의 고위 행정관료였던 아버지가 인민재판을 통해 피해를 입자 전쟁에 참전할 뜻을 밝히고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은 이상섭 명예교수(서울대 8회)의 회고이다.

약학대학생들 중에도 참전한 사람이 꽤 있었어요. 박원종은 자기 아버지 원수를 갚는다고 보병학교에 지원을 했을 거에요. 보병학교라는 것은 단기장교 양성기관이에요. 정규 사관학교는 4년이 걸리는데 보병학교는 입교해서 몇 주 교육시키고는 바로 소위로 임관(任官)해서 전선(戰線)으로 내보냈어요.

그래서 그때 육군 소위(小尉)로 임관된 사람들을 소모품이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그때 징병된 사병들은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해서 소대장이 앞장서지 않으면 전투를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소대장인 소위들이 앞장을 섰다가 총알받이가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박원종은 제6사단 2연대 소속 육군 소위로 참전하였다가 1951년 5월 18일 가평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그의 이름과 사진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의 『단기 4287년 학생사진첩』에 35번 학생으로 기재되어 있다. 정부는 그를 국립서울현충원(33-1512)에 안장하였고, 전쟁기념관은 그의 이름을 전사자 명비(銘碑, 116-ㅇ-055)에 새겨 놓았다.

또한 1949년 입학하여 당시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2학년생이었던 서찬식(徐燦植, 1931년 1월 2일생, 대전)은 제9사단 육군 중위로 백마고지 전투에 참가하였다가 1951년 5월 9일 육군 제3이동외과병원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그를 국립서울현충원(33-1008)에 안장하고, 전쟁기념관은 그의 이름을 전사자 명비(120-ㅂ-091)에 새겨 놓았다 [이상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100년사』 참조].

다음 달은 보훈(報勳)의 달이다. 모든 참전 용사의 뜻이 다 고귀하지만, 특히 당시 입대를 연기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원 입대하여 전투 중 목숨을 잃은 약대 선배들의 높은 충절은 아무리 높이 기려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분들의 신원(身元) 파악마저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의 오늘 모습이 마냥 부끄럽기만 하다.

(정정) 약춘 222에 소개한 ‘압착식물표본’은 고 도봉섭 교수가 구입한 것이 아니라, 경성약전의 일본인 교수(아마도 구다니)가 광복에 의해 쫓겨가면서 놓고 간 것이라고 한다. 한국전쟁 중 이 책을 도교수의 회기동 자택 마루 밑에 숨겨 두고 피난을 갔다 와 보니 누군가가 집어가서 벽지 등으로 사용하려고 하기에 놀란 도교수의 부인이 돈을 주고 재 구입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책의 표지 등이 일부 훼손되었다고 한다 (이상, 도교수의 며느리인 양제경 선생의 회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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