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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아버지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2018-01-03 09:30     최종수정 2018-01-03 09:30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1. 어렸을 때 집 근처에 있는 국민학교에 다녔던 박동규(서울대 명예교수)는 어느 날 하교(下校) 길에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 손을 잡고 오면서 아들은 오늘 쪽지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다고 자랑하였다. 아버지는 아들이 대견해서 길 옆에 있는 빵집에 데리고 들어 가 빵 한 개를 사 주셨다.

얼마 후 아들은 하교 길에서 다시 아버지를 만났다. 그날은 쪽지 시험에서 100점을 못 맞아 다소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아버지 손을 잡지 못하고 몇 발자국 뒤에서 아버지를 따르면서 저번에 아버지가 빵을 사 주셨던 가게를 흘깃거렸다. 그 때 아버지가 물으셨다. “얘야 오늘은 왜 아버지 손을 잡지 않고 빵도 사달라지 않느냐?” 아들은 머뭇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오늘은 100점을 못 맞았거든요.”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돌아서서 아들에게 다가 왔다. 그리고는 와락 아들을 껴 안으며 “얘야,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언제 100점을 맞아야 너를 예뻐하고 빵을 사준다고 했더냐? 너는 100점을 맞던 못 맞던 사랑하는 내 아들이다.” 하시면서 빵집으로 데리고 들어 가 빵을 사 주셨다. 아들은 울었다.

박동규가 장성(長成)하여 서울대학교 강사가 된 어느 날, 하루 종일 강의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가는 시내 버스를 탔다. 버스 안은 언제나처럼 퇴근하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그 때 누군가가 자신의 등을 만지는 것이 느껴졌다. 돌아 보니 아버지였다. 의외였다. 아버지는 ‘서울 시내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버스를 탄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우연이냐’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가는데 이번에는 아버지가 자꾸 아들의 배를 만지시는 것이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왜 그러시나 몰랐다. 잠시 후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번 정거장에서 내리자고 하셨다. 아직 집에 가려면 다섯 정거장을 더 가야 하는 데 말이다.

둘이 내리자 아버지는 “너 배 고프지? 집에 가려면 아직 머니 우리 여기서 같이 국수 한 그릇씩 먹고 가자. 내 주머니에 잔치국수 사줄 돈이 있구나” 하시며 국수를 사 주셨다. 아버지는 아들의 홀쭉한 배를 만져 보시고 아들이 배 고프다는 걸 아신 것이었다. 아버지가 사 주시는 국수를 먹으며 아들은 그만 울고 말았다고 한다.

위 두 이야기는 80이 넘은 박동규 교수가 어떤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아버지 박목월 시인을 회고한 이야기이다. 박동규 교수는 늘 이와 같은 따듯한 이야기로 듣는 이의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어 준다. 그는 늘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그의 가슴은 상당 부분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추억으로 채워져 있는 것 같았다. 박동규 교수의 가슴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흘러 넘치고 있었다.

2. 우리 아버지의 사랑은 박목월 시인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고 평생을 근면, 검소, 정리, 정돈하는 삶을 사셨다. 덕분에 나는 담배를 숨어서 피워야 했고, 처자식과 함께 시골에 계신 아버지를 뵈러 갈 때 택시를 타더라도 아버지 눈에 띄지 않도록 멀리서 내려서 걸었다.

젊은 놈이 담배 값이나 택시비로 돈을 낭비한다고 걱정하실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또 아버지는 깜깜한 밤에라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물건을 잘 정리 정돈해 두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다. 덕분에 나도 정리하는 버릇이 몸에 배었다.

내가 대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 아버지는 내게 “네 인생의 방향을 정했느냐?”고 물으셨다. 당신은 이미 스무 살 때 정했었노라고 하셨다. 그날 그날 대충 살고 있던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때부터 나도 인생의 진로를 고민해 보기 시작하였다.

삶으로 인생을 가르쳐주신 우리 아버지가 지난 11월 13일, 98세를 일기(一期)로 소천(召天)하셨다. 돌아보면 죄스러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남은 몰라도 나는 안다. 나는 솔직히 불효자이었다.

그나마 2014년에 세례를 받게 해 드린 일, 그리고 마지막 6개월을 우리 집에서 다시 모신 일 등이 작은 위로가 된다. 소천하신 순간 나는 아버지 귀에 말씀 드렸다. 아버지,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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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다리 추천 반대 신고

신년에 가슴이 따뜻하고, 눈시울이 시큰해진 글입니다. 고맙습니다..정화 된 마음으로 오늘을 시작합니다.. (2018.01.04 09:44)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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