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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우리나라 의료 경험기 6 – 동네 의원과 3차병원 긴밀한 협력 뒷받침할 제도 필요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대학 임상약학과 부교수 신재규

기사입력 2018-02-08 11:16     최종수정 2018-05-09 13:59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어머니는 지난해 6월22일에 췌장암 진단을 받은 뒤 담당의사와의 재진 예정일인 7월 6일까지 2주 동안 동네의원을 4번이나 방문해야 했다.  첫 두 번은 서울대 병원에서   빼먹고 처방해 주지 않은 진통제와 위장관 운동 촉진제를 받으러 갔었고, 나머지 두 번은 항암제 부작용으로 생긴 방광염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동네의원을 이용하기로 한 이유는 서울대 병원이 차로 한 시간이상 걸리는 데다 외래진료를 받으러 가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또, 미국의 경우 진통제와 위장관 운동 촉진제 처방과 방광염 치료는 암전문의가 아닌 일차의료 제공자 (primary care provider)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동네의원에서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의사를 만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당일 진료를 원하는 경우에도 전화를 해서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당일 진료를 받고 싶지만 예약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응급 클리닉 (urgent care clinic), 예약을 받지 않고 진료를 하는 Walk-in 클리닉, 또는 병원 응급실 (emergency department)를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응급 클리닉과 walk-in 클리닉은 많지 않은데다 병원 응급실처럼 대기 시간이 매우 길다.  반면, 우리나라 동네의원은 예약이 필요없고 당일 진료를 위한 대기 시간도 길지 않아서 이용하기가 매우 편리했다. 

동네의원의 시설과 진료순서는 내 클리닉이 있는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의 가정의학과나 내가 진료를 받는 Kaiser 병원과 많이 달랐다.  아파트 주변 상가 2층에 위치한 동네의원은 소화기 내과 전문의 두 명이 동업하여 연 것인데 실내가 깨끗했고 조명, 나무 바닥 등 인테리어도 고급스러웠다. 사실, 저소득층에게 의료를 제공하는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은 시에서 운영하는데다, 내 클리닉은 지은 지 50년도 넘은 벽돌 건물안에 있기 때문에 최근에 만들어진 동네의원과 시설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겠지만 – 참고로, 이 벽돌 건물은, 1980년대 초 세계 최초로 에이즈 환자를 입원, 치료했던 자부심이 넘치는 곳이다 – 공공기관이 아닌 사기업이 운영하는 Kaiser 병원의 인테리어도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인터넷으로 광고하는 다른 동네의원들의 사진을 보니 다 적어도 이 수준의 인테리어를 하고 있어서 상당히 놀랐는데 이렇게 꾸미지 않으면 환자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미국 병원에서의 진료순서는 접수 → 대기 → 간호사 → 의사 순이다.  즉,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면 담당 간호사가 호명한다.  담당 간호사는 환자를 진찰실 (exam room)로 데리고 가서 체온, 혈압, 맥박, 호흡수, 통증 정도 등 소위 바이탈 (vital)을 측정하고 방문 이유, 약물 알러지 (allergy) 여부 등을 묻고 모두 차트에 기록한다.  간호사가 진찰실에서 나가면 좀 있다가 의사가 와서 진료하고 차트에 기록한다.  일반적으로 미국 병원에는 진찰실이 여러 개 있고 의사는 한 진찰실에서 환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있는 진찰실로 돌아다닌다.  그런데, 진찰실에서 간호사가 문진하고 바이탈을 측정하면 환자의 개인정보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환자에게 노출되지 않는다.  그런데, 시설과 돈이 충분치 않은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에서는 진찰실이 부족해서 간호사가 간호사실이나 복도에서 바이탈을 측정하고 그 다음 의사가 와서 환자를 자신의 진찰실로 직접 데리고 간다.  하지만, 간호사실과 복도는 대기실과는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다.  

우리나라 동네의원의 진료순서에서는 간호사 문진과 바이탈 측정 단계가 없었다.  대신, 환자가 원하면 스스로 측정할 수 있도록 대기실에 자동 혈압측정계가 비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측정계는 고정된 커프 (cuff)에 팔을 밀어 넣어 혈압을 측정하도록 되어 있는 방식으로, 혈압을 정확하게 측정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이었다.  혈압은 커프 사이즈와 환자의 측정 자세에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이 자동혈압측정계는 커프 사이즈를 팔의 크기에 따라 조정할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자세에서 혈압을 측정해야 하는지 모르는 환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 측정한 혈압이 부정확할 가능성이 높다.  또, 환자가 스스로 측정하면 누가 그것을 차트에 기록하는지도 의문이다.  그런데, 이 방식의 혈압계는 3차의료기관인 서울대 병원과 서울삼성병원의 외래 진료 대기실에서도 비치된 것으로 보아 환자 스스로 혈압을 측정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이용되는 방법인 것 같다.

의사가 환자를 보기 전에 간호사가 먼저 바이탈을 측정하고 방문이유, 약물 알러지 등을 기록하면 의사는 좀 더 효율적으로 환자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내 클리닉의 예를 들면, 혈압이 높거나 맥박이 빠르거나 해서 바이탈에 이상이 있는 환자가 있는 경우, 간호사는 내가 환자를 데리러 갈 때 항상 미리 알려 주는데 이는 내가 환자에게 무엇을 물어 볼 지, 진찰실에서 혈압을 다시 측정할 지 등 계획을 세우는데 도움이 된다.  또, 간호사가 차트에 기록한 방문이유를 보고 이전에 비슷한 이유로 방문했는지, 그렇다면 어떤 치료를 받았으며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를 차트에서 미리 찾아 보고 환자를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다. 바이탈은 환자 치료에 꼭 필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고혈압 환자에게는 당연히 혈압이 필요한 정보이고, 어머니처럼 방광염 증상으로 방문한 경우에는 체온이 중요하다.  특히, 어머니는 항암제를 최근에 맞았었기 때문에 방광염 증상과 함께 체온이 높다면 응급실로 보내야 한다.  그런데, 방광염으로 두 번 방문하는 동안 간호사는 한 번도 체온을 측정하지 않았다.  의사도 두 번째 방문에서야 체온을 측정했다 (다행이 정상체온이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릴 때 눈길을 끈 것은 각종 광고였다. 각종 건강검진 광고부터 마늘주사, 미백주사 등의 광고가 포스터 형태로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의료수가가 낮아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아마도 이런 상품들을 팔아야 하는 모양이다.  또, 진료시간 안내 광고도 눈에 띠었는데 난 그 엄청난 근무시간에 놀랐다: 평일에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7시, 토요일에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4시반, 그리고 심지어, 주요 명절, 석가탄신일, 성탄절만을 제외한 공휴일에도 오전 9시에서 오후 1시까지 환자를 받고 있었다. 

전세계 IT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조차 병원에서는 아직도 간호사나 의사가 환자를 호명하여 진찰실로 데리고 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동네의원이든 종합병원이든, 순서가 되면, 대기실에 걸려 있는 모니터에 환자 이름과 진찰실 번호가 나타나기 때문에 환자가 스스로 해당 진찰실로 가면 되었다.  호명하면서 서로 인사하고 하고 안부도 묻고 하는 인간적인 관계보다는 편리함이 우선인 듯 하여 좀 씁쓸했다.
     
알콜만으로는 제거할 수 없는 병원균 (예를 들어, Clostridium difficile)이 있기 때문에 의사와 환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미국 병원의 진찰실에는 비누를 쓸 수 있는 개수대가 비치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동네병원과 대학병원의 진찰실에는 개수대가 없어서 의아했다.  아마도 우리나라 의사들은 촉진을 거의 안 하기 때문에 개수대가 필요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3차병원 외래진료 의사들과는 달리 동네병원 의사는 매우 친절했다.  특히, 어머니의 위염을 진단한 의사는 자신이 좀 더 빨리 3차병원으로 진료의뢰를 내지 못한 데에 대한 자책감이 있었는지 어머니 손도 잡아 주고 질문에 자세하게 대답을 해 주는 등 매우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그리고, 통증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자기 어머니라면 항암제 치료를 받게 할 것이라면서 항암제를 적극 권했다.  뿐만 아니라, 복수에 대해 묻자 무료로 복부 초음파 검사를 직접 해 주기도 했다.  이런 태도는 어머니 치료로 만난 3차병원의 의사들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대부분의 3차병원 의사들은, 제발로 걸어오는 환자들 수가 충분히 많다고 생각해서인지 사무적이고 퉁명스러운데다 어떨 때는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동네병원의 약 사용에서 의아하게 느낀 점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3차 병원 의사들에게도 똑같이 발견한 문제였기 때문에 동네병원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나라 의료교육 자체의 문제로 보였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컬럼에서 다루기로 한다). 

암과 같은 중병으로 3차병원에서 진료를 받더라도 경미한 질환은 접근이 편하고 더 친절한 동네의원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동네 의원에서 수행한 검사결과와 처방한 약의 목록이 3차병원 의사에게 전달되고, 3차병원의 검사결과와 처방한 약의 목록이 동네 의원에 전달되는 등, 동네 의원과 3차병원간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부족해서 환자나 보호자가 이를 대신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환자나 보호자는 의료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떤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지 잘 모를 것 같다.  따라서, 환자의 치료가 동네에 기반한 일차의료제공자 중심으로 이뤄어지면서 3차병원과의 협력을 뒤받침할 수 있는 의료 제도로 개선해 나간다면 중환자라도 방광염같이 간단한 질병이면 굳이 번거롭게 3차병원을 이용할 필요가 없이 동네병원을 좀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
-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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