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재규 교수의 'From San Francisco'

약업닷컴 홈 > 팜플러스 > 약대·약학

<77> 전문직업정신 (Professionalism)

신재규 교수의 'From San Francisco'

편집부

기사입력 2020-08-31 13:37     최종수정 2020-08-31 13:46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AZ, 오늘 소그룹 수업 (small group session)에 출석하지 않아서 이메일을 보내요.  지난 번에 건강문제로 수업에 빠진 적이 있어서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연락바랍니다.”

AZ는 내가 가르치는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으로 그동안 소그룹 수업을 이미 한번 빠졌었다.  그런데, 학생들은 소그룹 수업에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소그룹 수업은 동료들와 함께 토론하면서 배우는 시간인데 학생이 빠지게 되면 다른 동료들의 배움의 기회를 줄여 피해를 줄 수 있기 떄문이다.  

그래서, 학생이 정당한 사유없이 빠지면 교수는 학교에 전문직업정신 우려사항 보고서 (professionalism concerns report)를 제출해야 한다.  이 보고서는 학생 관련서류로 학교에 영구히 남게 되고, 전문직업정신 우려사항 보고서를 두 번 이상 받은 학생은 학교의 학생 진도 위원회 (Student Progress Committee)의 심사 대상이 되며 징계를 받을 수 있다.

다음날, AZ로부터 답장이 왔다.

“교수님, 제가 어제 저의 학업 조언자 (academic advisor)를 만났는데 이 미팅이 그만 길어졌습니다. 미팅을 끝냈을 때는 소그룹 수업시간이 벌써 반 가까이 지났기 때문에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그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황당했다.  소그룹 수업의 중요성을 알면 그 학생은 학업 조언자를 만날 때 미팅 후에 반드시 출석해야 하는 수업이 있다고 말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또, 만약 소그룹 수업을 피치 못하게 빠져야 한다면 자신의 소그룹 수업 담당 교수와 전체 수업을 책임지는 나에게 연락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AZ의 이런 행동은 이번 소그룹 수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 학생은 내 과목에서 내는 전체 열 개의 과제 중 무려 일곱 개를 늦게 제출하거나 제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행동에 대해 사과하거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학업 조언자 등 다른 사람이나 상황 탓으로 돌리고는 했다.  우리 학교는 이러한 행위를 비전문직업인적 (unprofessional)으로 판단하고 심각하게 다룬다.  그 이유는 전문직업정신이 약사 또는 건강관련종사자 (healthcare professionals)로서 갖추어야 할 지식이나 기술과 동일하게 중요한 항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문직업정신 (professionalism)이란 무엇일까?  이것에 대해 여러 정의가 있지만 의사단체인 미국 전문의 상임 위원회 (American Board of Medical Specialties)에서 만든 것이 가장 잘 표현된 것 중 하나이다.  이 정의는 비록 의사를 대상으로 하지만 건강관련종사직역인 약사에게도 적용된다:

“Medical professionalism is a belief system in which group members (“professionals”) declare (“profess”) to each other and the public the shared competency standards and ethical values they promise to uphold in their work and what the public and individual patients can and should expect from medical professionals.”

이를 의역해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건강관련 전문직업정신은 건강관련전문직업인들이 서로에게와 일반 대중에게 선언하는 신념체계로 이에는 건강관련전문인들이 자신의 일을 하는 동안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두 가지가 포함된다.  하나는 자신들이 공유하는 역량의 기준 (competency standards)과 윤리적인 가치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 대중과 환자들이 건강관련종사자로부터 기대할 수 있고 또 마땅히 기대해야 하는 것들이다.”

여기서 자신들이 공유하는 역량의 기준이란 건강관련종사자들이 일을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에 관련된 기준을 말한다.  이 기준은 높을수록 좋으므로 건강관련종사자들은 필요한 지식과 기술에 대해 높은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을 서로 공유하여야 한다.  그러면 두번째 사항인 대중과 환자들이 건강관련종사자로부터 기대할 수 있고 마땅히 기대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환자들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이다.  이 지식과 기술은 수련기간동안 배운 것으로만 충족되지 않는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은 계속 만들어지므로 대중과 환자들은 건강관련종사자들이 수련을 마친 다음에도 평생동안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보완할 것을 기대한다.  

예를 들어, 어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나왔는데 예전에 쓰던 방법만 고수한다면 이는 대중과 환자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지식과 기술의 습득이 전문직업정신에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건강관련종사자는 수련후에도 정기적으로 보수 또는 연수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건강관련종사자의 보수교육의 양은 미국에 비해 현저히 적다.  우리나라는 약사는 16시간, 3년간 의사는 24시간의 보수 교육을 받아야 하는 데에 비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2년간 약사는 30시간, 의사는 50시간을 받아야 한다. 즉, 우리나라 약사와 의사의 보수 교육 요구량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것이다).

전문직업정신에 입각하여 환자가 기대할 수 있는 것 중 또 하나는 건강관련종사자가 자신의 이해관계보다 환자의 이익을 우선으로 두는 것이다.  환자는 질병의 치료를 위해 건강관련종사자들을 신뢰하고 이들의 조언과 지시를 따른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는 건강관련종사자가 환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길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이 믿음이 깨지면, 즉, 환자를 치료하는 건강관련종사자가 환자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한다고 느끼게 되면 그 환자는 건강관련종사자의 조언과 지시를 더 이상 따르지 않을 것이다.  약사와 같은 건강관련종사 직역은 환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환자가 따르지 않는 건강관련직역은 직역으로서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건강관련종사자는 환자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행동해야 한다.
 
이외에도 대중과 환자는 건강관련종사자들이 그들을 존중해 주고 효과적인 치료를 위한 협력자로 대해 주기를 기대한다.  또, 환자와 효율적으로 의사소통하며, 사실을 정직하게 전달하고 문제가 생기면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여 이해를 구하기를 기대한다.  

이런 대중과 환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미국 전문의 상임위원회는 건강관련종사자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구체적인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At the heart of these ongoing declarations is a three-part promise to acquire, maintain and advance: (1) an ethical value system grounded in the conviction that the medical profession exists to serve patients' and the public's interests, and not merely the self-interests of practitioners; (2) the knowledge and technical skills necessary for good medical practice; and (3) the interpersonal skills necessary to work together with patients, eliciting goals and values to direct the proper use of the profession's specialized knowledge and skills, sometimes referred to as the “art” of medicine.”

“첫째, 건강관련직업은 건강관련종사자의 이익이 아닌 환자와 대중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윤리적 가치를 습득하고 유지하며 진전시킨다.  둘째, 환자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유지하며 증진시킨다.  세째, 직역만의 고유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목표와 가치를 끌어내어, 환자와 함께 협력하는 데에 필요한 대인관계기술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진전시킨다.”  

그런데, 이런 약속을 선언하면 이것이 잘 지켜지는지 확인하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말로만 한 약속은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전문의 상임위원회는 “이 약속을 지키는지 감시하고 확인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직역에 속한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Core to both the profession’s technical expertise and its promise of service is the view that members, working together, are committed to maintaining the standards and values that govern their practice and to monitoring each others’ adherence to their standards on behalf of the public.”

전문직업정신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건강관련종사자가 있으면 그 직역에 속한 사람들이 이에 대해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징계를 내리거나 그 직역에서 내쫓을 수 밖에 없다.  같은 배를 탄 사람끼리 너무 한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조처는 해당 건강관련직역의 존속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어떤 건강관련종사자가 환자를 성추행했다고 하자.  그런데, 같은 직역의 건강관련종사자가 이를 두둔하면 대중과 환자들은 그 직역에 속한 건강관련종사자는 누구나 자신들을 성추행할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환자와 그 건강관련직역과의 신뢰는 깨지게 된다.  즉, 전문직업정신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건강관련종사자를 눈감아 주거나 두둔하면 그 건강관련 직역은 환자의 신뢰를 잃게 되어 직역으로서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  따라서, 건강관련직역은 스스로의 존립을 위해 스스로 관리하고 규제해야 하는 것이다.

건강관련종사자가 아무리 지식과 기술이 뛰어나도 전문직업정신이 부족하면 좋은 건강관련 종사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환자의 신뢰를 잃으면 건강관련종사자의 지식과 기술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입학하자마자 전문직업정신을 가르치고 강조한다.  학교의 데이타에 의하면, 임상실습 과목에서 낙제하는 학생들은 지식의 부족이 아닌, 주로 전문직업정신의 문제로 인해 낙제한다.  

그래서, 우리 학교는 전문직업정신에 문제가 있는 학생을 조기에 발견하여 이들이 빨리 잘못을 깨닫고 고쳐서 학교의 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도록 전문직업정신 우려항목 보고서 등을 이용하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전문직업정신에 문제가 있는 학생들은 졸업 후 독립된 건강관련종사자로 일할 때 환자와 사회에게 해를 끼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연구된 바에 의하면,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 비전문직업적인 행위를 했던 의과대학생은 그렇지 않았던 의과대학생들보다 의사가 된 다음 비전문직업적인 행위 – 성추행, 부당청구 등 - 로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3배 이상 높다.  따라서, 약학대학은 환자와 사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건강관련종사자들을 배출해 내야 하는 사회적인 책임이 있다.

대학생들은 성인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길들여졌던 습관과 행동을 바꾸기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나를 포함한 여러 교수들이 전문직업정신에 대해 조언했어도 AZ의 행동이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약사라는 건강관련종사직역에 들어온 이상, AZ가 현재와 같은 행동으로는 성공할 수 없음을 빨리 깨닫고 고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기사공유   트위터   페이스북   싸이공감   구글
독자 의견남기기

독자의견쓰기   운영원칙보기

(0/500자) 로그인

리플달기

댓글   숨기기

cs 추천 반대 신고

말씀하신 전문직업정신을 깊이 잘 새기겠습니다. 막스 베버가 얘기한 소명의식과도 맥락이 닿아있는 느낌이 드네요.
솔직히 약대 졸업한 뒤 요즘처럼 건강관련 전문직업정신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시의적절한 이슈 주시어 각성하는 데에 큰 도움 되었습니다 교수님,
(2020.09.07 10:06) 수정 삭제

댓글의 댓글쓰기

뉴스홈으로    이전페이지로    맨위로

인기기사    댓글달린기사    공감기사

실시간 댓글 더보기

구인    구직   매매

사람들 interview

"3대 감염질환 ‘말라리아’ 퇴치 진단-방역 통합솔루션 개발"

[라이트펀드 감염병 지원사업9] 노을 임찬양 대표

더보기

오피니언 더보기

의약정보 더보기

약업북몰    신간안내

2020한국화장품기업총람(기업용...

2020한국화장품기업총람(기업용...

“한국화장품기업 모든 정보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

이시각 주요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