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약업닷컴 홈 > 팜플러스 > 문화

<42> 황진이(黃眞伊) <제13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7-02-22 09:36     최종수정 2017-02-22 10:58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가을에 한양으로 떠났다 가을에 송도로 돌아왔다. 3년 사이에 송도는 많이 변해 있었다. 진이는 문득 이제현의 송도팔경 중 《용산추만》(龍山秋晩)을 떠올렸다. ‘지난해 용산에 국화꽃 피었을 때/ 술병 들고 산 중턱에 올랐네./ 한줄기 솔바람 부니 모자가 떨어지고/ 붉게 물든 단풍잎 옷에 가득한 채/ 술에 취해서 부축 받으며 돌아왔네.’ 시를 다 읊은 진이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늦가을의 보름달이 두둥실 떴다.

 

명월(明月)이다. 진이의 두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소나기가 쏟아지듯 떨어졌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눈물이다. 이사종과 계약결혼을 연장하지 않고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때렸다. 명월관은 그동안 가꾸지 않아 정원 등에 잡풀이 우거져 집 전체가 폐가처럼 보였다. 옥섬은 나이 들어 거동조차 불편한 상태다.

진이는 이생(李生)을 불러들였다. 명월관을 정리한 뒤 금강산 여행을 떠나려 하는 것이다. 진이가 부르면 조선팔도에서 몇몇 사내를 빼고는 안 올 사람이 없다. 한양에 이생은 밤새 연락을 받고 이튿날 저녁 늦게 송도에 도착하였다. 이사종이 천하의 소리꾼에 헌헌장부로 진이의 가슴을 들뜨게 한 사내였다면 이생은 왠지 마음이 편해 긴 여행에 동행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는 순수한 사대부로 자유로운 영혼의 주인공이라 더욱 진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소세양과 이사종을 통해 사내들의 내면에 있는 여자에 대한 깊은 생각도 이젠 정립되어 선입관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내들에 대한 자신감이 더욱 확고해졌다. 조선팔도 사내들은 허리 밑으로 어느 누구든 정복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이다.

어머니 현학금이 연산군의 사랑놀이 대상의 여자가 되기 싫어 약을 먹고 장님이 되었으며 진이 자신도 금지옥엽 귀염을 독차지하다 어느 날 갑자기 서녀(庶女)신분이 된 충격으로 한 때 장님이 되었던 추억을 떠올렸다.

문제는 사내들이었다. 어머니 현학금은 임금인 연산군이었으며 진이는 아버지 황진사다. 그 같은 신분이 세습되어진 자신은 기생신분이었을 때 어느 때부터는 나비가 꽃을 찾는 것이 아닌 꽃이 주인공이 되어 나비를 불러들이는 꽃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진이는 지금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결심하였던 것을 행동하려 한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두터운 사대부 벽을 부수려 하는 것이다. 한양에서 이사종과 3년을 살고 와서 그 마음이 더욱 굳어졌다.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가는 송도의 향기를 보여주고 싶고 여근속(女根谷)의 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선덕여왕(善德女王)의 기개를 되살리려는 야심도 생겨서다.

사실 퇴기이모 옥섬의 얘기가 천번만번 옳아 잠자리에서 입증되는 사례를 진이는 수도 없이 실천해 왔다. 겉으론 천하를 쥐고 흔들 듯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호언장담 하지만 그 말은 계집 앞에서 기죽기 싫어 허언(虛言)을 했음이 날이 새면 드러나지 않는 사내는 진이는 지금껏 몇 명보지 못하였다.

송도는 여성적 도시이고 한양은 남성적 도시임을 진이는 눈으로 직접 보고 왔다. 한양의 사대부들이 평양을 색향(色香)이라 함도 진이는 한양 살이 3년 동안에 터득한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지피지기(知彼知己)하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았던가! 진이는 자신의 자유영혼이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데 소세양과 이사종의 계약결혼이 산지식이 되었다.

사내가 이젠 무섭지가 않은 것이다. 자신이 품으면 조선팔도 어느 사내도 어린아이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진이는 한양에선 미처 몰랐던 것을 송도에 와서 삼봉(정도전의 호)의 《한양찬가》가 얼마나 사내다운 시(詩)인가 새삼 느꼈다. 익제(이제현의 자)의 《송도팔경》은 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화(詩化)했으나 《한양찬가》는 왕업(王業)의 위대함을 노래 불렀다.

진이는 어느새 삼봉의 팬이 되었다. ‘줄지어선 관청은 우뚝하게 서로 마주서서/ 마치 별이 북두칠성을 끼고 있는 듯/ 새벽달에 관가는 물과 같으니/명가(鳴珂:말굴레 장식품)는 먼지 하나  일지 않누나.’ 《한양찬가》중 《열서성공》(列署星珙)이다. 진이는 거문고에 두 도시의 찬가를 동시에 실었다.

이번엔 《송도팔경》중 《자동심승》(紫洞尋僧)이다. ‘바위 옆을 돌아 냇물 건너가며/ 숲을 헤치고 봉우리 밑을 올라가네./ 사람을 만나 절을 물어보니/ 종소리 나고 연기 나는 데로 향해 가라하네./ 풀에 맺힌 이슬은 짚신을 적시고/ 송화가루는 중의 적삼에 점찍어 놓네./ 탑 앞에 앉아 세상만사 잊고 있으니/ 산새는 어서 돌아가라 재촉하네.’ 그랬다.

거문고를 가슴에 품은 진이의 두 눈엔 눈물이 가득하다. 옆에 있던 이생이 입을 열었다. “왜 그리 슬픈 표정이요? 금방 울 듯하오!” 진이의 거문고 소리가 끝나자 옥섬이모가 술상을 들고 들어왔다.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우선 목부터 축이세요... 이 진이가 소문으로만 듣던 이생 선비님을 모시려고요...” 이생은 벙벙한 표정이다.

조선 사내치고 명월을 품고 싶어 하지 않는 사내가 없는데 자신을 명월이 스스로 모시고 싶다는 말을 들으니 꿈만 같기 때문이다. “자 어서 한잔 드세요!” 진이가 손수 잔 하나 가득 따라 권한다. 이생은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하인이 하듯 진이의 말에 따랐다. 태상주는 독한 술이다. 주거니 받거니 태상주 몇 병이 삽시간에 비워졌다.

해는 어느새 땅거미로 변했다. “이제 그만 잡시다.” 진이가 잠자리에 앞장섰다. 진이는 잠자리에 들면 늘 옥섬이모의 말이 떠올라 꽃잠을 연출하였다. 사내들은 누구나 여자는 자기가 처음이기를 바라는 심리를 알고 있어서다.

진이는 술상을 뒤로 밀어내고 스스로 옷을 벗었다. 농익은 복숭아 빛의 한 쌍의 유방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생은 안절부절 못하였다. 진이의 도발에 남성성이 삽시간에 고개 숙였다. 기가 죽었다. 창문으로 아직 석양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서 이리 오세요! 나를 품으려고 허겁지겁 오신 것이 아닌가요? 자 이 진이를 마음껏 보시고 즐기세요!” 진이가 홀라당 벌거숭이가 되었다.

그런데 이생이 누구인가! 어엿한 사대부 집 헌헌장부인데 지금 시기(詩妓) 진이 앞에서 눈 둘 곳을 찾고 있다. “어서 오늘 저녁은 이 명월을 마음껏 즐기세요! 그리고 팔도강산 유람 할 때는 제가 상전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동창이 밝을 때까지 내일이면 영원히 다시는 못 볼 연인처럼 연리지로 떨어지지 않았다.

기사공유   트위터   페이스북   싸이공감   구글
독자 의견남기기

독자의견쓰기   운영원칙보기

(0/500자) 로그인

리플달기

댓글   숨기기

독자의견(댓글)을 달아주세요.

뉴스홈으로    이전페이지로    맨위로

팜다이제스트 (Pharm Digest)

인기기사    댓글달린기사    공감기사

실시간 댓글 더보기

구인    구직   매매

사람들 interview

"의료·제약산업 불합리한 제도 개선 및 정책지원 촉구할 것"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2017년 국정감사 임하는 각오 ...

더보기

오피니언 더보기

의약정보 더보기

만성 B형 간염 치료의 최신지견

만성 B형 간염의 치료 / 김지훈 / 약물요법/ 손지애 / 약품정보/ 도현정 / 핵심복약지도/ 정경혜

약업북몰    신간안내

2017 한국제약기업총람

2017 한국제약기업총람

코스피, 코스닥, 코넥스, 비상장 제약사 114곳 기업정...

이시각 주요기사 더보기